박금선 시인의 말하는 수필 14

수필, 소설

박금선 시인의 말하는 수필 14

소하 0 20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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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금선 시인



가출


      박금선


"야,

오늘 우리 집에 들어가지 말자."


보리가

노릇노릇 익어 가고

올된 보리는 일부는 베어 자빠트린 논도 있었다.


중학교 2학년쯤 되었을까.


내가

집에 가면

혼이 나거나  꾸중을 들을 일이 있었나 보다.


올케랑 싸웠을까.


도시락을 집어 던지고

안 가져갔을까.


보리밥과

허연 신 김치가

친구들 보기 부끄러워

도시락

뚜껑을 가려 먹는 게 싫어

집으로 가져와

소 죽통에 퍼부었을까.


도저히

집에 가기가 싫었다.

학교 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친구들을 부추 컸다.


친구들도 내 말에 좋다고 따랐다.


"죽어도 집에 가기 없기다

집에 들어가는 사람은 벌금 내기다."


총 9명이었다.


가출을

하면  다른 동네나 먼 곳으로

몸을 숨겨야 하는데

간이 작아

먼 데는 못 가고

동네에서

가까운 산비알 보리밭

으로 갔다

우리

마을에서 제일 죽은 깨가 많고 순하다고 소문 난

저암 아지매 밭

한가운데에

옹기종기 모여앉아

머리를 수그리고 앉았다.


왜냐면

보리가 부러져도 꾸중을 듣거나

배상을 해 줄 때

뒷일이 수월하기 때문이고

어머니와 가장 친하기

때문이다.


보리논

가운데로 들어가면

아무도 우리 모습을 찾을 수가 없었다.


1시간쯤 지나니 배가 고팠다

보리를 꺾어 손바닥에 비벼 후후 불어먹기도 했다.


친구 덕자는

할머니가 꾸려나가는  점빵에 가서

꽈배기와 건빵을 훔쳐 왔다.


논바닥에 퍼질러 앉아 건빵을 교복 치마에 펼쳐놓고 나눠 먹었다.


친구들

꼬드기는 것도

내가 했고

건빵을 골고루 나누는 것도

내가 했고

숨는 장소도 내가 정했다.


어둠 서리가

내리자 친구들은 겁이 났는지 찰떡같이 한 약속은

개떡같이

모두 저버리고

하나둘 가방을 들고

헌 고쟁이  방귀 새듯이

빠져나갔다.


간이 소간보다 큰

악바리 옥순이와

털털 배기 나, 둘만 남았다.


5분쯤

지나니 옥순이도 교복 치마 궁둥이에 보리 까시래기를 털털 털더니 가 버렸다.


혼자 있으니 겁이 났다.


3시간쯤

지났나 보다 회관 쪽에서

어머니들 목소리가

웅성웅성 들려왔다.


"우리 집

가수나가 학죠로 가더니 집을 아직 안 들어오고 있소. "


난리가 났다.

학교로 찾으러 가시는 어머니들도 계셨다.


나는 간이 콩닥콩닥 뛰고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부러진 보리를 대충 쓰다듬어

일으켜 세우고

툭툭 틀고 일어나 철수를 했다.


집으로 가니

8시 정도 되었을까?

조선이 생기고 난 후부터 욕이라고 생긴 욕은 다 들었다.

그래도 생각보다는 좀 나았다.


집에

들어오니 올케의

짙은

쌍커풀  눈이 환하게 웃었다.


식구들이 걱정을 많이 했는지

반가워하는 눈빛도 읽을 수가 있었다.


3시간의

가출이었지만 겁이 나고 무서웠다.

그날 저녁

어머니가 차려 준 밥을 코를 훌쩍거리며 다 먹었다.


평소에는

입안에서 뱅뱅 따로 도는 보리밥 알과

지겨운 시래깃국이

그날따라 더

맛이 있고 따뜻했다.


천덕꾸러기인 줄 알았던

나에게

소중하고 따뜻한 가족이 있다는걸

느끼게 해 준 가출이었다.


보리 문둥이

내 친구들아


허리 디스크는 다 나았나

무릎 인공 수술은

잘 되었나?


자야

순아

옥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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