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완식 연재 詩소설 - 달맞이꽃(5)

수필, 소설

정완식 연재 詩소설 - 달맞이꽃(5)

방아 1 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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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해파랑길



이른 봄의 해운대는 해가 중천에 머물러 있어도, 아직 물러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버티고 있는 찬 바람이 어디에 숨어 있다가 갑자기 나타나는지 가끔 해변의 모래 위를 스치며 날아와 화수의 얼굴을 때리고 도망갔다.


꽃을 좋아하는 그의 엄마가 그의 이름 앞글자에 남자 이름에는 좀처럼 쓰지 않는 꽃자를 넣어주어서 그런지, 그런 엄마를 닮아서 그런지 어쨌든 화수도 꽃을 좋아했다.


추운 겨울이 싫어 휴일이면 밖에 나갈 엄두를 내지 못하고 종일 그의 방안에 틀어박혀 책을 읽거나 그렇지 않으면 작은 싱글침대 위에서 뒹굴뒹굴 누워지내는 겨우살이 생활을 하다가


남녘에 꽃소식이 있다는 뉴스를 보고는 꽃구경을 가야겠다고 속으로 벼르고 맞은 첫 주말 휴일 아침에 화수는 부산행 열차에 몸을 실었다.



내가 기다리는 꽃은

멀리서부터 피어나고

내가 다가가지 않으면

내게로 오지는 않아


마음 속에 담아두기만 하면

꺼내주지 않으면

관심을 주지 않으면

끝내 얼굴을 내밀지 않지


내가 기다리는 꽃은

내가 다가와 주기를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를 바래


- 기다리는 꽃 -



꽃구경을 위해 화수가 부산행을 택한 이유는 그가 꽃 못지않게 좋아하는 것이 바다 구경이었으므로 어쩌면 당연하다고 할 수 있었다.


화수는 인터넷의 한 포토뉴스에서 본 홍매화가 있는 유엔공원으로 먼저 달려가 두 그루 매실나무 중 처음으로 꽃을 피워낸 기특한 큰 나무를 마음으로 쓰다듬어 주며 핸드폰 사진첩에 담고, 그 옆에 서 있는 또 다른 작은 매실나무에서 막 피어오르는 꽃망울도 같이 사진첩에 담았다.


나중에 고고한 그 자태가 생각날 때마다 꺼내서 다시 보고 싶어서였다.


그리고는 서둘러 공원을 빠져나와 버스를 타고 오륙도가 바로 보이는 해맞이공원으로 이동했다.


화수가 부산에 올 때마다 걷는 해파랑길 1코스를 오늘도 걸어서 해운대 달맞이길까지 가기 위해서였다.


해안선을 따라 걷는 길은 비교적 조성을 잘해놓아서 험한 바윗길을 걸으면서도 정돈되고 편안한 기분을 만들어 주었다.


주말이면 지역 주민뿐만 아니라 타지에서 온 사람들에게도 입소문이 많이 나서 꽤 많은 사람이 걷는 코스인데 다행히 이른 봄의 쌀쌀한 날씨 때문인지 아직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았고, 화수는 빠른 걸음을 이용해 앞서가던 사람들을 앞지르며 정강이가 뻐근해지는 기분 좋은 속보를 유지하며 앞으로 나아갔다.


멀리 오늘의 목적지 주변이기도 한 건너편 해운대 쪽에는 기라성처럼 고층빌딩이 서서 위용을 드러내고 있고, 오후의 산뜻한 공기와 찬 바람이 빠른 걸음을 걷고 있는 화수의 얼굴에 차오르는 숨과 열기를 시원하게 가라앉혀주고 있었다.


화수는 이기대 수변공원길과 용호만 유람선터미널을 지나 광안리해수욕장까지 약 두 시간을 쉬지 않고 걸어와, 해변의 모래 위를 맨발로 걸어 끝까지 간 뒤,

해변이 끝나는 지점에 이르러서야 해변의 스탠드로 올라가 그곳에 걸터앉아 모래를 털어내고 배낭에서 생수 한 통을 꺼내 목을 축인 뒤 나머지를 양발에 붓고 발을 씻어냈다.


이제 남은 구간은 민락수변공원과 동백섬, 해운대를 지나 달맞이고개까지 약 두 시간 남짓의 거리만 남아 있었지만,


이른 아침에 집에서 나와 부산역에 도착해 거기서 간단히 국수 한 그릇으로 요기를 때우고 생수를 한 통 사서 배낭에 집어넣고 길을 걸었으니 걷기를 좋아하는 화수도 조금은 지친 기색이 도는 듯했지만, 그는 다시 일어나 방향을 잡았다.


시간은 벌써 네 시에 가까워지고 있고, 제주도의 카멜리아 힐이나 거제의 지심도, 여수의 오동도 등과 더불어 대표적인 동백꽃 감상지라고 할 수 있는 동백섬을 보지 않을 수가 없어 동백섬을 한 바퀴 돌고 가려면 목적지에 도착해 허기를 채울 저녁 식사를 할 시간까지 빠듯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물론 저녁 식사시간이 따로 정해진 것이 없는 나그네 도보 여행객이기 때문에 시간이 늦어도 상관은 없었지만, 일찍 저녁 식사를 마치고 해운대 근처의 달맞이 언덕에서 산책도 하고 일몰이나 달맞이 명소를 찾아 구경도 하다가 소화가 될 때쯤에 예약해 둔 숙소로 들어가 하룻밤을 자고, 다음날 오전에 느긋하게 집으로 돌아가려는 화수 자신의 시간 계획은 지키고 싶었다.


다시 걷기 시작한 지 한 시간이 채 되지 않아 동백섬 입구에 들어선 화수는 유엔공원에서 두 그루밖에 되지 않는 매실나무로 인해 무언가 아쉬웠던 홍매화 구경을 보상이라도 받으려는 듯 동백섬 구석구석을 훑으며 동백꽃 탐색에 열을 올린 덕에 진홍의 동백꽃뿐만 아니라 홑동백과 겹동백, 그리고 백동백까지 고루 핸드폰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다.



찬 서리 흐르는 가슴에

진홍의 동백 한 그루 생겨 나와

가슴이 시린 날에

꽃 한 송이를 피운다


그리움이 넘쳐

가슴에 스며드는 눈물은

비릿한 바다 내음을 닮아

가슴에 피는 동백은 더 붉나 보다


햇살 좋은 날에는

널 향한 단심을 꺼내어

가슴에 훈장 하나 달고

동백섬으로 가 내 마음을 심으련다


ㅡ 동백섬 ㅡ



한참을 동백꽃 촬영에 몰두하다가 꽤 많은 사진을 찍었다는 생각이 든 화수는 발걸음을 돌려 누리마루 APEC하우스를 지나고, 등대와 인어 동상이 세워진 곳을 지나 수중 방파제 등표가 바로 앞에 보이는 곳에서부터 이어진 해운대 백사장을 만났다.


이제 저 멀리 모래 해변이 끝나는 곳이자 해파랑길 1코스의 끝이 보이고 화수는 해안에 조성된 산책로를 따라 걸음을 이어갔고,


마침내 미포항에 도착한 뒤 화수는 걷기의 마침표를 찍은 것을 자축하며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근처의 횟집 한 곳을 골라 들어갔다. 




1 Comments
l인디고l 2021.09.10 09:55  
화수님이 여행한 코스 그대로 부산 여행을 하고 싶어지네요~~오늘도 즐독하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