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현 시인의 마음이 걷는 수필 1

수필, 소설

조용현 시인의 마음이 걷는 수필 1

소하 0 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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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용현 사진 作


일장춘몽을 꾸었네


             조용현


오뉴월 뙤약볕이 까까머리가 벗겨져라 내리쬐던 날

산자락 아래 보리밭에서는 노랗게 고개를 숙인 보리 수확이 한참이었습니다.


얼추 5월 하순이나 유월 초순 이때가 되면

남녘 내 고향에서는 긴 겨울을 이겨 낸

봄 농작물의 대표적인 보리를 거두어들이는 아주 바쁜 시기였습니다.

여름 장마철이 오기 전에 뜨거운 봄볕을 받으면서 잘 자란 농작물을 수확하는 계절입니다.

그래서 어린아이부터 나이가 많은 할아버지 할머니까지 누구를 막론하고 일을 같이 거들어야 했지요.


열여섯 나이에 * 깔담사리, 즉 꼴 베는 머슴살이를 하고 있던 아이도

밭에서 그날도 어김없이 보리를 열심히 베고 있었지요.

동네 아저씨나 아주머니들 여러 명과 같이 어울려서

** 품앗이하거나 품삯을 받고 일했는데, 그때가 되면 연례적으로 해야 하는 보리 베기였습니다.

어른들 사이에 끼어서 아이도 낫을 들고 부지런히 보리를 베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이의 눈에 보리밭의 고랑 사이에 다소곳이 놓인 꿩알이보였습니다.

보리가 익어가는 계절은 우리나라 전역에 텃새로 서식하는 때이기도 하거든요.

꿩이 알을 낳아서 세끼를 부화하는 시기여서 꿩이 보리밭에 산란했던 것이지요.


어린아이 때부터 농촌에서 자란 아이도

꿩알 낳아 놓은 것을 직접 눈으로 보는 일은

처음 보는 모습이어서 놀라면서도 매우 즐거운 일이었지요.

꿩알을 발견하고, 아이는 이내 흥분하여 꿩알이 있다고 외쳤습니다.

주변에서 같이 일을 하고 있던 아저씨,

아주머니들께서 우르르 몰려와서 본인들이 꿩알을 발견한 것처럼 덩달아 즐거워했습니다.


마른 풀로 만든 옴팍한 보금자리에 소복이 낳아 놓은 꿩알은 자그마치 7개나 되었는데,

마치 바구니에 달걀을 담아놓은 것처럼 정겹게 보이면서 별안간에 횡재를 한 기분이었습니다.

밭 주변에서 일하고 계시던 주인아주머니 께서는 소식을 듣고 오셨는지 꿩알을 보시더니

손주에게 삶아 주겠다고 하시면서 바람처럼 휑하니 가지고 가버렸습니다.

삽시간에 꿩알이 없어졌으니 잠시 정신이 나간 아이는 마음을 추스르면서

언제 그랬냐는 듯 열심히 하던 일을 마치고 집으로 발걸음을 향했습니다.


보리밭에서 꿩알을 보는 순간 아이의 눈에서는 집에 계시는

할머니의 얼굴이 떠올라 알을 집으로 가져가서 할머니와 동생들하고 나눠 먹으려고 했었거든요.

그런데 그 알을 아주머니께서 가져갔으니 크게 실망을 하고 말았습니다.

꿩알을 가져갔던 아주머니댁은 아이 집안하고는 가깝지 않지만 그래도 친척관계였습니다.

그래서 그랬는지 평소에는 아이에게 그래서 그랬는지 평소에는 아이에게 아주 친절하고 자상한 분이었지요.


하지만 눈앞에 보이는 귀한 물건을 보면서

 별안간 재물에 눈이 멀어지는 아주머니를 보면서 아이는

어른이 되면 아주머니를 닮지 말아야겠다고 다짐을 했답니다.

어린 나이에 처음으로 보았던 꿩알을 당연히 할머니에게 드렸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애석한 아쉬움이 서러움으로 밀려오면서

올바르지 못한 어른들의 행위를 이해하기는 참으로 어려웠지요.

없어져 버린 꿩알 몇 개의 충격이 너무 커서 많은 생각을 하는데

밭에서 발견했던 꿩알 몇 개도 가질 수 없는 안타까운 현실을 절실히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어른이 되면 기필코 힘없는 사람의 재물을 탐내지 않고 살겠다는 마음을 다짐하고 또 했답니다.


요즘에 산에 올라가 꿩알을 보면 자연보호 차원에서 잘 보존하거나 보호합니다. 

그렇지만 예전에 먹고 살기 힘든 시절에는 귀한 식량이라도

얻어 온 듯 이것저것 생각 할 겨를도 없이 우선 귀한 먹거리로 생각을 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오늘따라 설날이 코앞으로 다가와서 그런지

문득 고향 생각이 떠올라서 먼 옛날이야기를 잠시 소환해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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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깔담사리 : 소먹이를 전담하는 어린 머슴

** 품앗이 : 여러 사람이 어울려

    돌아가면서 일거리를 도와주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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