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병식의 사랑 에세이 5

수필, 소설

민병식의 사랑 에세이 5

제임스 0 276

2021 제주국제감귤꽃박람회 공모전 최우수상 수상작 


[에세이] 감귤꽃 필 무렵
민병식

화사함과 예쁨으로 세상을 장식하는 꽃 잎이 팔랑 팔랑 봄을 키움하는 계절, 오늘도 무거운 눈꺼풀 들어올려 아침을 시작한다. 코로나 19의 불안감과 흩날리는 꽃가루, 황사까지 겹쳐 마스크를 더 단단히 쓰게하지만 그럼에도 밤새 칼칼함으로 찼던 뿌연 마음을 향긋한 꽃향기로 가득 채우고 싶은 날이다. 세상의 모든 꽃들은 저마다의 향기로 사람 들을 유혹하고 우리는 그 향기에 매료되어 집에서 회사에서, 거리의 꽃 앞에서 심호흡을 하며 한껏 즐기려고 할 것인데, 일상적으로 언제 어느 곳에서나 맡을 수 없는 아주 귀중한 향기가 있으니 바로 제주도의 감귤꽃 향기이다.

해마다 4, 5월의 제주는 감귤꽃 천지이다. 감귤꽃이 주는 향기는 감미로운 과일 향수를 온 세상에 뿌린다고 할까, 내음이 어찌나 달콤한지 이 맘 때 제주 땅을 밟는 순간 그 어디서도 느낄 수 없는 최고의 황홀함이 코를 찌른다. 마치 나무에 하얀 눈꽃송이가 피듯이 주렁주렁 감귤꽃들이 달리고 그 향연이 끝나면 꽃들이 떨어지면서 파란 감귤열매로 변신하고 가을이면 온통 황금색으로 변하여 또다른 계절의 선물을 선사하는 모습은 제주의 사계절을 말해주는 듯하다. 벌써 봄의 한가운데, 내가 감귤꽃의 아름다움에 반하게 된것은 작년 5월 제주도 여행 때였다. 그때까지는 감귤꽃이 있는지도 몰랐었는데 그 아름다운 모습을 빨리 감추는 속성이 있음에도 운좋게 대면할 수 있었다. 무슨 밭인지도 모르고 지나 가던 중 알싸하고 새콤달콤한 냄새에 취해 물어봤더니 바로 감귤밭이란다. 


감귤꽃은 하얀 드레스를 입은 순백의 신부같은 모습으로 은은하면서도 강렬하게 살랑살랑 부는 바람에 향기를 실어 온 몸을 휘감으면 그 자리에서 옴짝달싹할 수 없는 매력이 있다. 지나가다가 우연히 마주친 마음 속에 그리던 이상형인 여인의 아름다움이랄까. 쿵쾅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킬 수 없다. 많은 사람들이 감귤은 알아도 감귤꽃은 잘 모른다. 노랗게 익은 감귤만 보다가 꽃을 보면 생소한 기분이 들 정도로 감귤꽃은 누가 볼세라 어느 순간 살짝 왔다가 빠르게 사라지는 귀하디 귀한 꽃이다.

감귤꽃은 꽃이 너무 많이 열리면 열매를 많이 맺질 못해서 솎아줘아한다고 한다. 딴 꽃으로는 꽂차를 만들어 그 향과 맛을 즐기니 버릴 것이 없는 어찌 보면 너무 과하지 않은 중용의 덕을 아는 꽃이라고 하겠다. 한 해에 꽃이 많이 피면 그 다음에는 꽃이 피지 않는 쉼을 아는 욕심이 없는 나무, 매일 일상에 시달리는 인간과는 다르게 여유가 느껴진다. 꽃이 지면 나무는 어미가 아이를 품듯 정성스레 잉태한 초록의 알갱이를 품고 인고의 시간이 지나면 황금열매인 감귤을 탄생시킨다. 5월의 제주는 감귤꽃의 진한 향기로 많은 사람 들을 행복하게 한다. 차를 타고달리다 창문을 살짝만 열어도 그 향기가 코를 찌른다. 벌이나 나비가 없어도 꽃가루가 바람에 날려 열매가 맺히는 당당한 나무다. 화사하게 핀 꽃 위로 벌들이 날아다니고 감귤 꿀을 만든다. 벌의 날개짓이 엉성한 것을 보니 벌도 감귤꽃 향기에 취한듯 어질어질 한가보다.

언제부터인가 제주도 한 달살기가 유행이었던적이 있었고 지금도 한창 진행 중이지만 코로나 19로 인해 모두가 어색해진 지금, 탁한 공간을 떠나 나무도 하얀색, 꽃잎 떨어진 땅도 하얀색, 이렇게 꽃 눈 내리는 풍경 속에 빠져 돌담길을 따라 걸으며 제주의 봄이 주는 선물을 만끽하다보면 어느새 해가 저물고 내 가슴에도 조롱조롱 행복의 열매로 가득할것이다. 눈을 감는다. 내 앞에 감귤 나무는 없지만 꽃향기를 맡으며 걸었던 황토색 흙길과 한없이 따스함을 내리쬐던 제주의 햇살, 빛을 받아 반짝거리는 바다의 잔잔한 물결처럼 더없이 조용하고 평화로운 시간 속으로 빠져든다. 영화의 한 장면처럼 천천히 날리는 감귤꽃의 파노라마를 상상하는 지금, 그곳에 가고 싶다. 감귤꽃향 코를 찌르는 평화의 땅, 마음은 이미 제주로 달려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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