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병식의 사랑 에세이 3

수필, 소설

민병식의 사랑 에세이 3

제임스 0 263

2021 제26회 청하백일장 일반문 산문 부문 차하 수상작


[에세이] 빗방울

민병식


정적을 깨며 떨어지는 빗소리가 사방 팔방 세상 모든 것을 깨우고 있다. 비를 싫어하는 것은 나를 비롯한 특정의 사람 들일 수도 있고 반면에 비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어둠 속에 깊이 잠들어 있다가 투덜거리는 빗소리에 깨어나 밖을 바라보는 순간 '웬 비가 이리도 와, 오늘도 질척거리게 생겼네'라고 불평부터 하는 내 마음과는 반대로 세상은 비를 반기며 새로운 출발 준비를 하고 있다. 


비는 나무를 깨우고, 마른 풀 잎을 촉촉하게 적시며 낮은 곳을 찾아 땅 속 깊이 스며든다. 저 멀리 산은 자욱한 안개를  빗소리로 흘려보내고 있다. 잠이 덜 깬  나뭇잎 들이 차가운 빗방울을 털어내려 날개를 펄럭이는 비오는 봄 날 아침의 얼굴은 자못 신선함이다.  살아있는 것들은 햇살과 바람과 빗방울을 받아 모든 힘을 기울여 꽃과 열매를 맺으려고 노력을 기울이는데 오늘은 충분히 수분을 공급 받는 날인가 보다.  물 받이에서 '도르르'  구르는  소리가 흡사 아침 인사를 하는 듯하다. 하루를 여는 생명의 모습 들이다.


회사에 출근하니 잔디밭에 산철쭉이 피었다. 꽃들이 활짝 옷을 풀어 헤치고 온전히 비를 받아들이는 모습이 찬란하다. 영원히 지속되지 않는 다시 만날 수 없는  순간임을 깨닫게 하는 순간이다. 도시의 탁하고 마른 세상에서는 자주 볼 수 없는

나뭇잎은 더욱 싱싱해지고 잎 새에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가 음악처럼 들리는 시간이다. 나뭇가지 사이를  빼곡히 채운 푸른 잎새들이 빗물과 섞여 은은한   숲 속의 향을 뿜는 조촐한  신록의 잔치를 벌이고 비를 피해 숨어 있던 박 새가 금방 이라도 날아오를 듯한 이 청량감은 비를 좋아하지 않는 나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광경이다. 비 오는 날만 볼 수 있는 특권, 비록 깊은 숲 속이나 울창한 산속이 아니더라도 이보다 더 청명한 자연의 활력소가 어디 있을까. 


매일 만나는 화단의  꽃과 나무들이지만 오늘은 더욱 살아서 움직이는 듯하다.점심을 먹고 회사 처마 밑으로 손을 뻗어 툭툭 나를 건드리는 빗방울과 티격태격하며 이야기를  나눈다. 어느 새 산철쭉에 맺힌 분홍색 물에 이끌리어 가까이 다가가니 분홍은 더 진해지고 초록은  더 푸르다.  이때가 아니면 볼 수 없는 봄의 선물을 마음껏 감상하면서 새로운 의미의 색깔과  율동과 빗소리를 가까이에 둔다.  나뭇가지 끝에 매달린 물방울이 유리 구슬 같이 빛난다. 손가락으로 건드리니  톡 터지며 내민 손가락 사이로 빗물이 흘러내리고 내 머리카락 끝에도 올올히이구슬이 맺혀 떨어지고 있는 즈음 어느 새 꽃과 비와 내가 하나가 됨을 느낀다.


매일매일의 일상이 똑같이 다가오는 하루가 아니라 매일 다른 하루 하루를 맞이하며 살아가는 것이 생임을 깨닫는 순간이다. 또 다른 생명을 얻기 위해  꽃이 비를 맞이하듯 매일 아침마다 새 출발선에 서서 하루하루의 소중함을 기쁨으로 맞이해야겠구나 싶다. 떠오르는 아침 해가 아니라 싱그럽게 내리는 비를  바라보는 지금 세상을 향해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에 비를 싫어하는 나지만 나 또한 결국 비를 맞고 생명력을 얻어야 하는 자연의 일부임을 깨닫게 되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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