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덕은 시인의 문학 세계 대상 수상작 동화 -들개의 길

수필, 소설

박덕은 시인의 문학 세계 대상 수상작 동화 -들개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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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세계 문학상 동화 대상 수상작


[들개의 길] - 박덕은(낭만대통령:한실문예창작 지도 교수)


나는 들개의 생활을 관찰해 오라는 방학 숙제를 받고 꽤 여러 날 망설였어요.

내가 누구냐구요? 나는요, 산골 까치학교에서 꽤나 인기 있는 2학년 까치랍니다.

왜 인기가 있냐구요? 그건 나도 모르죠. 나를 잘 따르는 친구들 수가 꽤나 많기 때문이겠죠 뭐.

새로운 정보를 자주 물어다 주니, 그런가 봐요. 나는 유달리 호기심이 많은 까치이거든요.

그나저나, 방학 숙제하러 나가봐야겠어요.

내가 관찰하기로 한 들개는 꼬르 동산에 살고 있어요. 꼬르 동산은 금산 자락에 자리하고 있어요.

이 금산 자락 아래에서는 호수가 하나 있는데, 이 호수는 마을 변두리에 있구요.

호수 주변에는 신작로가 쭉 에둘러 놓여 있어요.

자, 출발!

나는 활기찬 나래짓으로 꼬르 동산으로 향했어요. 친구들과 같이 가려 했지만, 다들 바쁘다네요.

꼬르 동산에 이르렀을 때, 운좋게 들개 '샤미'가 팽나무 밑에 서 있었어요.

무슨 고민이 있는 듯 한참이나 호수를 멍하니 바라보고 서 있네요.

내가 팽나무 우듬지에 앉았을 때, 샤미는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하더군요.

그러다, 뛰기 시작한 샤미 뒤를 따라 나도 바삐 날아갔죠.

 샤미는 호수를 빙 둘러 있는 신작로로 달리기 시작했어요. 차들이 휙휙 달리는 도로라서 좀 위험해 보였지만,

샤미는 망설임 없이 쭉쭉 내달리더군요. 호수를 반쯤 돌더니, 호수 안쪽으로 굽어 있는 작은 동산(나마 동산)에 올라,

한참이나 마을 쪽을 넋놓고 바라보고 있네요. 무슨 일일까요.

바라보는 곳을 자세히 살펴보니, 어느 종이박스 공장 창고 앞에 하얀 개 한 마리가 묶어져 있네요. 조금 있으니,

개집 안에서 낑낑거리는 강아지 한 마리가 기어나오네요.

공장 주인인 듯한 사람이 나와 개밥을 주는군요.

"인덕아, 밥 먹자. 순돌아, 어서 와."

그러고 보니, 줄에 매인 큰 개 이름은 '인덕', 강아지 이름은 '순돌'이군요. 그저 평범한 정경인데,

한 가지 이상한 것은 지금 저 호수 안 나마 동산에 앉아 있는 '샤미'의 태도예요.

순돌이를 보자마자 샤미는 안절부절못하고 있다는 거죠.

샤미와 순돌이는 무슨 관계죠? 혹시 엄마와 아들의 관계? 이 까치의 호기심이 드디어 발동되기 시작했어요.

둘의 사이를 좀더 구체적으로 알아봐야겠네요.

샤미는 선뜻 순돌이에게 다가가지 못한 채, 눈물만 글썽이며 그저 하염없이 바라보고만 있네요.

인덕에 대한 주인의 자랑이 공장에 찾아온 손님들에게 계속 통통거리네요.

"우리 인덕이는 진돗개 중에 최고로 잘생긴 녀석이지요. 족보도 있어요."

그때 나는 공장 입구에 있는 은행나무로 날아가 앉아 보다 더 자세한 정보를 얻고 싶었어요.

"햐 글쎄, 요상한 건, 이 인덕이가 아들을 하나 얻었지 뭐예요. 숫놈인데도 말이죠. 어느 날,

개집 안에 이 강아지가 놓여 있는 거예요. '순돌이'. 참 요상하죠. 숫놈이 강아지를 낳다니! 어쨌든 행운이 덩굴째 굴어들어온 거죠 뭐."

나는 그 순간, 번뜩 머리에 스치는 게 있었어요.

어쩜 저기 호수 안 나마 동산에서 인덕이랑 순돌이를 애틋한 표정으로 내려다보고 있는

저 들개 샤미랑 무슨 인연이 있지 않을까, 그런 막연한 예감?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샤미가 들개인 처지에

이렇게 마을 입구까지 내려와 강아지 순돌이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겠어요. 분명, 둘의 사이가 보통은 아닌 거지요.

내 촉감은 항상 잘 들어맞는 편이니까요.

오늘 관찰은 여기까지네요. 그 이후에는 별일 없었어요.

두세 시간 그렇게 동산에 넋놓고 앉아 있던 샤미가 불쑥 일어나더니, 아주 빠른 걸음으로 다시 호수 둘레길을 돌아,

산자락에 있는 꼬르 동산으로 되돌아갔으니까요.

그런데, 이런 일과를 들개 샤미는 여러 날 반복했어요. 무슨 뚜렷한 사건이 생긴 것도 아니었구요.

하루는 낮이 아닌 밤중에 들개 샤미의 행동을 관찰해 보기로 했어요.

공장 직원들이 다 퇴근하고, 밤 10시경 수위 아저씨마저 잠들 무렵,

샤미는 놀랍게도 종이박스 공장 앞까지 선선히 내려가더군요.

그때 진돗개 인덕이가 아주 반갑게 꼬리를 마구 흔들며 맞아 주었고,

강아지 순돌이도 살갑게 다가와 마구 몸을 비벼대는 게 아니겠어요.

뿐만 아니라 순돌이는 망설임 없이 들개의 젖을 물고 빨아댔어요.

그때 인덕이는 자기 잠자리를 샤미에게 선뜻 내주는 게 아니겠어요.

그러고 보니, 낮에는 이 세 식구가 공장을 오가는 사람들 때문에 만나지 못하지만,

밤에는 그동안 이렇게 함께 어우러져 지냈나 봐요.

내가 낮에만 관찰했기 때문에, 밤에 일어난 이런 정경을 목격하지 못했던 거지요. 

그렇다면, 저 진돗개와 들개는 부부인 것 같구요, 저 강아지 순돌이는 샤미의 아들인 게 분명하네요.

그런데, 왜 서로 함께 살아가지 못하는 거죠?

그 궁금증이 계속 나를 괴롭혔어요.

내가 누굽니까? '호기심 천재', '호기심돌이'가 아닙니까.

나는 밤마다 함께하는 세 마리 개에 대해 보다 밀착 탐구를 하기 시작했어요.

개집 위까지 늘어져 있는 감나무 위에 앉아 이들의 얘기를 좀더 세세히 귀담아들어 보기로 했지요.

진돗개 인덕이는 늘 양보하는 듯한 말만 하더군요.

"순돌이를 내게만 맡기고 산으로 가 버리면 어떡해?"

그러자, 묵묵히 고개를 숙이고 있던 샤미가 한마디 하네요.

"계곡에 사는 울 엄마가 그렇게 하래. 산에는 먹거리가 부족하니까,

점점 줄어드는 쥐나 개구리만으로는 순돌이를 키울 수 없데."

그때 인덕이는 자기 고개를 앞발 사이에 집어넣으며 힘없이 말했어요.

"그렇다고, 순돌이를 돌보지 않을 수는 없잖아."

샤미도 힘빠진 목소리로 대꾸했어요.

"여긴 개밥도 풍성하구! 그래서, 내가 기르는 것보다, 자기가 기르는 게 순돌이겐 행복할 것 같애."

그리고는 다시 고개를 떨구더니 바구니 같은 보금자리에 넙쭉 엎드려 잠을 청했어요.

여기까지 관찰한 뒤, 나는 집으로 돌아갔어요. 귀갓길에 오르면서, 나는 여러 생각을 해야 했답니다.

"단순히 먹거리 때문일까?"

그건 아닌 것 같았어요. 어쩌면, 저 개목걸이 때문은 아닐까? 그런 의문이 불쑥 들었어요.

인덕이는 늘 개목걸이로 묶여 있고, 샤미는 아직 자유로운 몸이지 않은가.

혹시 그것 때문은 아닐까? 역시, 촉이 빠른 나, 까치 '국자'! 이 국자의 눈은 못 속이지.

저리 먹거리 탓만 하는 들개의 말이 사실일까? 셋이 함께 살고 싶지만,

저 개목걸이에 묶여 평생 살고 싶지 않아서, 들개는 자꾸 딴소리를 하는 건 아닐까?

일단 집으로 가서, 오늘 상황을 기록해 두고,

남은 여백은 내일 또 생각해서, 아니 면밀히 관찰해서 써 넣기로 했어요.

다음날도, 들개 샤미는 여전히 호수의 둘레길을 돌아가고 있었어요.

새벽에는 종이공장에서 나와 일단 야산으로 올라갔다가,

다시 정오 무렵엔 공장이 보이는 호수 안에 있는 나마 동산에 앉아 있다가,

다시 잠시 꼬르 동산으로 올라가 기다리다,

밤중에 다시 공장으로 내려가는 이 반복된 일상이 샤미의 하루 하루가 되어가고 있었어요.

그런데, 하루는 그 일상이 왕창 깨져 버렸어요.

들개 샤미가 호수의 나마 동산에 앉아 있을 바로 그때였어요.

갑자기 사람들의 119구급차가 왱왱거리며 호수 안으로 직진했어요.

구급차의 문이 열리자마자 구급대원들이 우루루 쏟아져 나와,

나마 동산에 앉아 있는 들개 샤미를 향해 냅다 달리기 시작하더군요.

큰 잠자리채를 들고서 말이죠. 화들짝 놀란 샤미는 마구 달아났구요.

구급대원들의 들개 추격전은 호수 반 바퀴 돌 때까지 이어졌어요.

워낙 빨리 달리는 샤미를 도저히 잡을 수 없었던 구급대원들이 다시 공장 앞으로 모여들었어요.

나는 그때까지 은행나무 가지에 앉아, 밑에서 벌어지고 있는 여러 긴박한 상황을 면밀히 지켜보고 있었지요.

"워낙 빨라 도저히 잡을 수 없군요."

"낮에 실패하면, 밤에 잡도록 하지요."

"cctv에 보면, 밤중에는 이곳에 내려와 잠을 자고, 새벽에 이곳을 빠져 나가더군요."

"그러니, 밤중에 저 들개가 개방석에 쪼그리고 앉아 잠들 때를 노려야겠어요."

"아까 저리 놀랬으니, 오늘밤 산에서 안 내려올지도 모르니까, 교대로 보초를 서지요."

사람들의 주고받은 대화를 통해, 나는 뭔가 모를 두려움을 느껴야 했지요.

들개 샤미가 잡혀도 걱정, 안 잡혀도 걱정, 이래도 저래도 걱정이 되니까요.

안 잡힌다면, 들개의 지금 일상이 지속될 테지만,

만약 잡힌다면 샤미가 원하지 않은 개목걸이 차고 사는 그런 답답한 일상이 될 테니까요.

좀더 지켜봐야겠네요.

하루는 꼬르 동산의 동백꽃 아래 엎드려 있는 샤미를 만날 수 있었어요.

내가 날아서 동백 나뭇가지에 앉자, 샤미는 나를 힐끗 쳐다보더군요.

"야, 까치, 넌 왜 자꾸 날 따라다니는 거지?"

머쓱해진 나는 한마디 했어요.

"난 그냥 까치가 아냐, '국자'야. 내 어엿한 이름이 '국자'라구."

"국자? 그것도 이름이냐?"

"왜? 국자가 어때서? 정보를 가득 담아 자주 실어 나르는 국자, 멋지잖아?"

"그래, 국자야, 왜 날 따라다니며 관찰하는 거지?"

"눈치챘어? 난 모를 줄 알았는데... 실은 나의 방학 숙제가 '들개의 관찰'이야."

"뭐라구? 들개의 관찰?"

"응!"

이렇게 첫 대화를 시작한 우리 사이에 그날 여러 얘기들이 오갔어요.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 어떻게 진돗개 인덕이를 만난 거야?"

나의 질문에 한참이나 침묵을 지키던 샤미는 이렇게 말을 꺼냈어요.

"올겨울은 몹시 추웠잖아. 산골짜기에는 먹을 것도 없구,

나이 든 울 엄마 '촉사'의 신경질은 자꾸만 거칠어지고, 그래서 마음이 무거워,

하루는 산 너머 이곳 호수 쪽으로 내려왔지. 한밤중에 말이야.

나마 동산에 이르렀을 때, 인덕이가 도로 건너가는 날 부르더라구.

멍멍멍. 배고픈 내게 배불리 먹게 해준 그날밤, 나도 모르게 인덕에게 끌리고 말았지.

엄마에게 혼날 줄 뻔히 알면서도, 금기 사항을 깨 버렸던 거야.

마을에 있는 개밥은 절대로 먹지 않기로 한 약속을 말이야! 그로부터 딱 63일 후에 저 '순돌'이를 낳게 된 거지."

샤미는 슬며시 일어나, 곁에 있던 옹달샘에서 물 한 모금 깔짝거리더니, 다시 돌아와 앉아 얘기를 이어 나갔어요.

"인덕이의 개집 안에 순돌이 낳아놓고, 이른새벽에 이 꼬르 동산으로 돌아오는 내 심정이 어떠했겠니?

그때부터 고민이 많아진 거야. 순돌이를 내가 키우자니, 이곳 형편은 너도 잘 알잖아.

계곡에서 배고픈 나날을 보내는 울 엄마 '촉사'만 봐도 뻔하지. 요즘 들고양이, 도둑고양이,

길고양이, 산고양이 이놈들 때문에, 꼬르 동산뿐만 아니라 이 산골짜기 쥐, 개구리 완전 동나 버렸어.

우리 주 먹거리가 없어진 지금, 내가 어떻게 순돌이를 홀로 키울 수 있겠어.

그렇다고, 공원 안에 있는 토끼들이나 닭장에 갇혀 사는 닭들을 사냥할 수도 없는 노릇이구..."

그 순간 내가 슬쩍 끼어 들었어요.

"인덕이랑 순돌이랑 셋이서 같이 오순도순 살면 되잖아."

그 말에, 샤미는 고개를 잠시 들어 서쪽에 서 있는 팽나무를 올려다보더니, 이렇게 말했어요.

"마음 한켠엔 솔직히 그러고 싶어. 근데, 난 늑대의 후손이잖아.

울 엄마는 늑대와 들개의 후손이고, 난 들개와 유기견의 후손이고.

하지만, 지금까지 개목걸이가 아닌 자유를 목에 걸고 살아왔잖아.

그게 어쩜 우리 늑대 가문의 마지막 자존심이기도 하구."

"배고픈데, 그따위 자존심 버려 버리면 되잖아."

"그따위?"

샤미는 그 대목에 약간 기분이 언짢은 듯 나를 노려봤어요.

"미안해, 하지만, 사실이잖아."

"물론 내 마음도 내 아들 순돌이 때문에 많이 약해졌어.

하지만, 의외로 순돌이 아빠가 반대야."

"뭐라구? 순돌이 아빠가? 인덕이가 반대한다구?"

"놀랍지? 자기는 이왕 개목걸이에 묶여 지내는 신세가 되었지만,

나랑 순돌이는 자유로운 세상에서 살기를 바란다고 했어."

"......"

그 대목에 이르러, 나는 할 말을 잃고 말았어요.

이제까지는 샤미의 마음 때문에 결정을 못하고 있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오히려 개목걸이 삶을 말리는 쪽이 진돗개 인덕 쪽이었다니, 참 신기했어요.

그날밤 나는 내 둥지에 돌아와서도 오래도록 잠을 이루지 못했어요.

물론 들개 샤미의 미래에 대한 걱정 때문이었지요. 사실 따져 보면,

우리 까치의 미래도 걱정 태산이지만요. 갈수록 먹을 게 없어서,

배고픈 나날이 많아지니까요. 요즘 부쩍 늘어난 비둘기들 때문에,

신경이 곧두설 지경이라니까요. 비둘기들은 도무지 염치가 없는 것 같아요.

먹을 게 생기면, 체면도 자존심도 없이 마구잡이로 달려들 거든요.

그런데도, 샤미가 더 걱정이 되니, 나의 오지랖도 꽤나 너른 편인가 봐요. 

이튿날 아침 일찍 샤미를 찾아나섰어요.

샤미는 옹달샘터에 나와 동백꽃을 무심코 바라보고 있더군요.

"어떡할 거야?"

내가 묻자, 샤미는 오히려 내게 물었어요.

"어떡해야 하지?"

그 순간 나는 샤미가 아직도 결정을 못 내리고 있다는 걸 눈치챘어요.

"그냥 모른 척하고, 사람들에게 붙잡혀,

그곳 종이박스 공장에서 순돌이랑 인덕이랑 함께 사는 게 어때?"

내 말에 그 어떤 대꾸도 하지 않은 채 샤미의 눈길은 허공에 붙박힌 듯 그대로 떠 있었어요.

한참 후에야 샤미는 이렇게 말했어요.

"개목걸이 차고?"

"......"

"국자야, 오늘 저 산 너머 울 엄마한테 함께 가 볼까?"

"왜? 엄마를 만나서 여쭤 보게?"

"응! 아무래도 내 스스로 결정은 못 하겠고,

엄마에게 물어봐야겠어. 엄마 하라는 대로 하면 되지 뭐."

"그것도 좋은 방향이네! 좋아, 함께 갈게."

이때부터 우리는 리듬에 맞춰 골짜기로 내려갔다가, 다시 산자락을 거쳐 작은 산 하나를 넘어갔어요.

도중에 가시덤불이 많아, 샤미가 걸어가는 시간이 생각보다 더 걸렸어요.

나야 뭐, 훨훨 날아 공중으로 나아가니 불편할 게 없지만,

걸어서 산 넘어 가야 하는 샤미에게는 그리 쉽지 않은 산길이었어요. 그런데도,

샤미는 마치 길이 익숙한 듯 검불 속을 잘도 헤쳐 걸어나가더군요.

작은 산을 애써 넘어 졸졸 물 흐르는 개울에 이르렀을 때, 아주 요란스런 소리가 들려왔어요.

들개 한 마리가 농부에게 쫓겨 허겁지겁 달아나고 있었어요.

"저놈의 들깨, 이번에는 우리 닭장을 노렸어. 가만두지 않겠다."

우리 앞을 스쳐 황급히 도망가는 들개를 따라, 우리도 덩달아 같이 달아날 수밖에 없었어요.

우리 뒤로 몇 발의 총소리가 들렸지만, 우리를 위협할 정도는 아니었어요. 그냥 겁주는 총소리였을 뿐이었어요.

농부가 뒤쫓아오지 않은 걸 확인한 뒤에야, 앞서 가던 들개가 바위 곁에 드뎌 멈춰섰어요.

그 뒤로 바짝 달려간 샤미가 헐떡이는 숨소리를 애써 죽이며 나지막이 말했어요.

"엄마, 마을에 있는 닭장은 절대 손대지 않기로 했잖아."

"그랬지."

"맨날 내게 주의를 줬잖아. 농부가 기르는 가축만은 손대지 않기로..."

"그랬지."

"근데, 이게 뭐야? 총소리 못 들었어? 그러다, 엄마 죽어. 늑대의 후예답지 않게 왜 그래?"

촉사는 서글픈 눈시울로 힘없이 말했어요.

"벌써 사흘째 난 아무 것도 못 먹었어. 쫄딱 굶었다구!"

"엄마, 그렇다고 농부의 가축을 공격하면 어떡해? 평소 내게는 그러지 말라고 신신당부 해놓고선..."

"......"

이때 촉사는 고개를 떨군 채 아무 말이 없었어요. 바위를 덮고 있는 이끼들만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어요.

"엄마, 엄마의 이런 모습을 보면, 내가 들개로서, 또 늑대 후예로서, 어떻게 꿋꿋이 살아갈 수 있겠어?"

촉사는 서글픈 눈망울로 샤미를 내려다보며 한마디 했어요.

"그러니까, 내가 말했잖아. 넌 마을로 내려가. 아들 순돌이가 생겼으니,

진돗개 인덕이랑 행복하게 살아. 제발 고집부리지 말고. 다시는 엄마 곁으로 와서 같이 살 생각 말고."

이때 샤미는 무슨 말을 하려다 말고, 그냥 바위 뒤로 가더니, 침울한 표정으로 납짝 엎드렸어요.

나는 둘 사이에 끼어들 수 없어, 그냥 솔방울만 째려보고 있었어요.

배고픈 엄마 촉사를 뒤로하고 떠나와야 했던 샤미의 심정이 조금은 이해가 되더군요.

그날 다시 산을 넘어 오던 길에 나는 산열매들을 더러 발견했지만,

배고픈 샤미 때문에 그냥 못 본 채 날아 돌아왔어요.

오던 길에, 샤미는 큰다리 밑으로 들어갔더군요.

의아해서 따라간 내 눈앞에 노인이 한 사람 앉아 있었어요.

"샤미 왔니?"

"네!"

샤미는 그 노인 앞에 다가가 얌전히 엎드렸어요. 그러자,

그 노인이 샤미의 등을 쓰다듬어 주며 말했어요.

"우리 샤미가 많이 배고픈가 보구나. 이거 소시지 먹을래?"

그때 샤미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소시지를 입에 물었어요.

그리고는 곧장 일어나 다리 밑에서 빠져 나왔어요.

"오늘은 바쁜가 보구나. 나랑 놀아주지도 않고 가는 거야?

그럼 잘 가, 한가할 때 놀러와."

노인은 연신 손을 흔들어 주었어요.

한길로 올라온 샤미는 갑자기 냅다 뛰기 시작했어요.

나도 덩달아 심장이 발딱발딱 뛰더군요.

"무슨 일이지? 무슨 일이야?"

내가 물어도, 아무 대답도 없이, 쏜살같이 달려가는 샤미의 뒷모습이 마치 야생마처럼 아주 근사해 보였어요.

한참 후에야 나는 눈치챘지요. 그 소시지가 가야 할 방향을요.

샤미는 그 소시지를 엄마 들개 촉사 앞에 내려놓고는 아무 말 없이 몸을 돌려 뛰어갔어요.

어쩜 샤미는 배고픈 엄마 촉사의 모습 때문에 마을행을 택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그때 슬며시 들더군요.

산자락을 내려온 샤미는 아까 그 다리 밑으로 다시 내려갔어요.

그때 다리 밑에선 기타 치는 소리가 들려왔어요. 가까이 가 보니,

그 노인이 허름한 기타를 품에 안고 허밍으로 노래하면서 기타를 치고 있었어요.

우리를 발견하자, 그 노인은 눈인사로 우릴 반겨 주었어요.

"샤미 또 왔니?"

"네!"

샤미는 그 사람 앞에 넙쭉 엎드린 채 음악 감상을 하는 듯 눈감아 버렸어요.

작은 편상 끝에 앉아 있던 나도 덩달아 눈이 감기더군요.

잠시 후에 노래가 끝나고, 그 노인이 물었어요.

"아깐 불러도 대답도 없이 가 버리더니..."

샤미가 고개를 들더니, 대답 대신 이런 말을 던졌어요.

"노숙자 아저씨, 그때 하다만 얘기 이어서 해주세요. 오늘은 다 듣고 갈게요."

그 말에 노인은 환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어요.

"진짜? 오늘은 내 과거, 이 노숙자,

아니 자유인의  추억을 다 들어줄 거야? 웬일이니? 샤미가 인심 썼네."

"네! 오늘만큼은!"

"좋아! 내가 어디까지 얘기했지?"

노숙자, 아니 자유인은 기타를 편상 위에 내려놓더니,

그동안 못다 한 얘기를 술술 풀어놓기 시작했어요.

"아, 맞다! 6.25전쟁 때 무작정 남쪽으로 피란길을 떠났다는 대목까지 말했지?

오늘은 그 뒷얘기를 해줄게."

말하던 중, 곁에 있는 나를 힐끗 쳐다보더니, 물었어요.

"넌 샤미 친구니?"

갑작스런 물음에 나는 얼떨결에 한마디 했지요.

"친구라기보다는 조언자인 까치 '국자'입니다."

내 말에 아저씨는 씨익 웃더니, 추억 보따리를 풀어놓기 시작했어요.

"전쟁이 끝나고, 38선이 가로막혀, 고향으로 못 돌아간 나는 여러 모로 살려고 발버둥쳤지.

이것 저것 안 해 본 거 없이 대들었지. 내가 도전한 직장만도 아마 서른 데가 더 넘었을 거야.

근데 결국 직장을 잡지 못했어. 그러던 어느 날 결심을 단단히 굳혔지. 차라리 평생 노숙자로 살자.

그래서 찾아든 곳이 바로 이곳 다리 밑이야. 이곳에서 무려 60여 년을 산 거야. 노숙자로 말이야.

집도 없이, 돈도 없이, 욕심도 없이 그냥 그렇게 살아온 거지. 마음 편하게 말이야. 그렇다고 후회하진 않아.

대신 내겐 자유가 있었으니까. 한 가지 꿈이 있다면,

이 자유를 맘껏 누리다가 죽기 바로 직전에 북녘땅 내 고향에 가고 싶어. 거기서 죽고 싶어.

그곳에 묻히고 싶을 뿐, 그 외 다른 꿈도 욕심도 없어."

말하는 자유인의 모습이 너무나 진지해서, 우리가 좀처럼 그 속으로 끼어들 틈이 없었어요.

샤미는 아저씨의 말을 들으면서, 연신 고개를 끄덕이더군요.

나는 몇 가지 질문을 하고 싶었지만, 샤미의 굳은 표정 때문에 꾹 참았어요.

다시 자유인은 기타를 집어들었어요. 그리고, 이렇게 말하더군요.

"용돈이 필요하면, 오일장 입구로 가서 기타를 쳐 주는 거야. 그러면 먹을 건 생기니까.

그걸로 대만족이지 뭐. 죽지 않을 만큼만 먹을 게 있으면 돼. 아마 죽을 때까지 나는 이러고 살겠지, 아마도."

그때까지도 샤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요. 그냥 고개만 몇 번 끄덕일 뿐, 묵묵히 듣고 있다가, 슬며시 일어나 그 자리를 뜨더군요.

우리가 다리 밑에서 나와 신작로에 올라설 때까지 자유인은 여전히 기타를 치고 있더군요.

꼬르 동산에 돌아온 우리 둘은 다음날 다시 만나기로 하고, 헤어져 각자 자기 보금자리로 돌아갔어요.

며칠 후, 나와 들개는 나마 동산에서 다시 만났어요. 오늘은 어떻게든 방향을 잡고야 말겠다며

샤미가 굳은 표정을 지은 날이라서, 나도 잔뜩 긴장하고 있었어요.

하지만, 시간이 흘러도 어쩐지 샤미의 방향은 좀처럼 정해지지 않았어요.

그 길로 호숫가를 돌아 꼬르 동산으로 돌아왔지만, 마음은 여전히 무겁기만 했어요.

그러던 샤미가 다시 한밤중에 나마 동산으로 가자고 하더군요. 아마도 결심을 굳힌 것 같아요.

이번만큼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전진할 생각인가 봐요. 우리 둘이는 종이박스 공장까지 곧장 나아갔어요.

물론 119 구급대원들이 그때까지 몰래 잠복 근무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어요. 근데 말이죠,

인덕이가 묶어져 있는 개집 앞으로 샤미가 다가갔을 때였어요.

인덕이가 살래살래 꼬리를 흔들며 반갑게 맞아 주었고,

철없는 순돌이는 샤미를 보자마자 젖꼭지부터 찾으며 마구 어리광을 부렸어요.

셋이서 이렇게 반갑고 달콤한 시간을 가질 때, 나는 공장 처마까지 뻗어 있는 감나무 가지에 앉아 있었지요.

잠시 평화로운 정경이 펼쳐지고 있었는데, 그 분위기가 갑자기 와장창 깨지고 말았어요.

119구급대원들이 느닷없이 들이닥쳐 현관문 입구를 꽈당 막아 버렸구요.

그와 동시에 큰 잠자리채가 다가와 눈 깜짝할 사이에 샤미의 몸뚱이를 감싸 버렸어요.

내가 미리 눈치채고, 까악까악 조심하라고 경고를 던져 주었지만, 이미 때는 늦은 뒤였어요.

물론 샤미는 그런 위급 상황이 닥쳐 올 것을 미리 알았다 해도 그날 도망치지는 않았을 거예요.

이미 마음의 결심을 굳힌 뒤였기 때문이죠. 샤미는 사람들에게 기꺼이 붙잡혀,

이후부터는 개목걸이 삶을 살아가기로 이미 작정한 뒤였으니까요.

예상했던 대로, 샤미에게 개목걸이가 채워졌고, 한동안 동물병원으로 옮겨져 여러 건강 검진을 받았어요.

샤미가 동물병원에서 진단 받는 동안, 나는 병원 창가 나무에 앉아 차분히 기다려 주었지요.

샤미의 건강에는 이상이 없는 걸로 진단 결과가 나와, 나도 기분이 아주 좋았어요.

인덕이와 순돌이 곁으로 돌아온 샤미에게 선물로 주워진 개목걸이, 은빛 도는 그 개목걸이가 유난히 반짝거리더군요.

나의 방학 숙제인 들개 관찰기는 여기서 끝내야 할 것 같았어요.

아무튼 샤미가 들개의 삶을 마감하고, 집개의 삶을 인덕이랑 아들 순돌이랑 평화롭게 지내길 바라며,

나는 꼬르 동산의 내 보금자리로 돌아왔지요.

하지만, 나의 관찰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답니다.

하루는 샤미의 개목걸이가 궁금하여, 산책을 나갔어요.

꼬르 동산을 벗어나 호수 위를 날아가 나마 동산에 이르렀어요. 멀리서도 종이박스 공장 앞의 정경이 눈앞에 쏘옥 들어오더군요.

거기서 인덕이, 순돌이, 샤미가 개사료를 먹고 있었어요. 나는 반가워, 감나무까지 날아가 말을 걸었지요.

"샤미, 기분은 어때?"

이때 샤미는 아주 반갑게 나를 맞아 주었어요. 순돌이는 여전히 장난기 가득한 채 여기 저기 뛰어다니느라 여념이 없었구요.

샤미는 그동안 있었던 에피소드들을 내게 몇 개 들려 주었어요.

"그런 일들이 있었어도, 나는 여기 머물러 있을 생각인데, 인덕이는 자꾸 나더러 여기를 떠나래. 그것도 순돌이까지 데리고 말이야."

샤미의 말에 나는 놀라 물었어요.

"개목걸이는 어떡하구?"

"글쎄, 이 개목걸이 때문에, 늘 말다툼을 하게 돼."

"왜?"

샤미는 인덕의 눈치를 힐끗 힐끗 살피면서 말을 이어나갔어요.

"며칠 편하게 개밥 얻어먹는 게 그리 좋냐고 자꾸 되물어. 기분 나쁘게.

그때마다 내가 대들었지. 그러면 왜 자기는 개목걸이 신세에서 벗어나지 못하냐구?"

"그러면, 인덕이는 무슨 변명을 했어?"

"자기는 개목걸이와 함께 가야 하는 운명이래."

"왜?"

"자기도 자유가 좋긴 하지만, 강아지 때부터 자기를 길러준 주인의 은혜를 져버릴 순 없다나 뭐라나..."

그때 인덕이가 불쑥 우리 대화 속으로 끼어들었어요.

"집개는 말이야, 자유보다는 의리야. 그게 주어진 숙명이라구. 하지만, 샤미 너는 달라.

샤미의 핏속에는 야생의 자유가 꿈틀대고 있다구. 저 철없는 순돌이에게도 살아 꿈틀 꿈틀거리고 있구.

그 야생의 자유가 결국 이 개목걸이를 원망하게 만들 거야. 그 원망이 더 커지기 전에 산으로 돌아가야 해.

야생의 터, 야산으로 가서 살아야 해. 그래야 비록 굶주릴지라도,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 수가 있는 거야. 제발 내 말 좀 들어."

이 대목에서 샤미가 불쑥 끼어들었어요.

"자기랑 나랑 순돌이랑 여기서 이렇게 행복하게 살면 되잖아. 먹을 것도 풍족하구. 왜 자꾸 날더러 떠나라 하는 거야?"

여기서 인덕이의 언성이 약간 높아졌어요.

"이 바보야, 멍멍, 들개는 야생의 자유 없이는 불행하거든. 제발 여길 떠나. 멍멍."

"만약 떠난다면, 난 자기랑 같이 갈래. 우어엉."

샤미의 마지막 발악에 인덕이는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어요.

"나도 너랑 같이 가고 싶어. 진심이야. 하지만,

내 몸속에는 자유보다는 은혜를 갚아야 하는 의리의 피가 돌고 있다구.

이게 진돗개의 마지막 자존심이라구. 더이상 날 괴롭히지 마."

샤미도 지지 않고 한마디 가세했어요.

"지금 누가 누굴 괴롭힌다는 거야?"

나는 감나무 우듬지까지 올라갔다 내려오기를 수없이 반복했건만,

샤미와 인덕이의 말다툼은 좀처럼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았어요.

일단 오늘 방문은 여기서 마쳐야 하겠네요. 덕분에 이 들개 관찰기는 언제 끝날지 나도 잘 모르겠어요.

이튿날 아침 나는 까치들과 팽나무에서 시끌벅쩍 놀았어요. 다들 방학 숙제 하느라 아주 바빴지만,

까치들은 이렇게 틈만 나면 놀기를 참 좋아해요. 나는 방학 숙제를 마치려면, 들개의 관찰기를 마무리해야 해요.

그래서 오늘도 정오 무렵, 나는 나마 동산에 들렀다가, 종이박스 공장 마당에 서 있는 감나무 가지로 날아가 앉았어요.

아주 즐거운 시간이 공장 마당에서 펼쳐지고 있더군요. 주인공은 단연 순돌이.

샤미와 인덕이는 순돌이의 재롱에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었구요.

공장 사장님이 직접 나와 순돌이 재롱 잔치를 지켜보고 있었어요.

직원 한 사람이 시키는 대로 따라하는 반복 훈련 중이었어요.

첫 번째 훈련; 사람이 하이파이브 하면, 앞발을 들어 상대의 손바닥과 마주치기

두 번째 훈련; 사람이 걸으면 그 걸음 사이를 끼어다니기.

세 번째 훈련; '빵야' 하면, 총 맞은 듯 발라당 나뒹굴기

네 번째 훈련; '밥 먹고 싶어' 이렇게 물으면 뛰어가 밥그릇 물고 오기

다섯 번째 훈련; '싫어'라는 말이 떨어지면 고개를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황급히 꺾기

여섯 번째 훈련; 여러 종이쪽지 중에 '순돌이'라 적힌 것 찾아오기

일곱 번째 훈련; '물 먹고 싶어' 하고 물어 보면 그 즉시 물그릇 가져오기

여덟 번째 훈련; 사람이 노래할 때 '우우웅' 소리로 따라하기

아홉 번째 훈련; 바구니 하나 들고 사람들 사이로 돌아다니기

열 번째 훈련; '아빠 팔아 버릴까' 하자마자 인덕이에게 달려가 앞발로 감싸기

열한 번째 훈련; 간식을 놓아둔 긴 철망을 빙 돌아서 가져오기

열두 번째 훈련; 간식을 앞에 두고 '기다려' 하면 기다리고, '먹어' 하면 그때서야 먹기

이외에도 몇 가지 훈련이 더 있었지만, 놀랍게도 순돌이는 이 모든 훈련을 완벽히 수행해 내더군요.

내려다보고 있는 나로서도 매우 놀라운 머리를 가진 순돌이가 솔직히 부러웠어요.

수많은 새들 중에는 솔직히 우리 까치의 머리를 넘보는 조류가 없다고 자부해 왔는데,

순돌이의 머리는 우리 까치들보다 한 수 위인 것 같아, 부럽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좀 시샘이 나기도 했어요.

그날 이후로 순돌이는 아주 천재견으로 불리면서, 더 강도 높은 훈련이 지속되었어요.

무려 33가지나 되는 훈련을 거뜬히 마치고, 다음 훈련에 대비할 만큼 뛰어난 재능을 발휘했어요.

거의 일주일 동안 매일 와서 그 훈련하는 모습을 지켜봤는데, 마지막 33번째 훈련이 뭐였는지 아세요?

그건 말이죠, 바구니에다 용돈 1만원을 넣어 주고 사거리에 있는 마트까지 가서 '시장 봐 오기'였는데,

그걸 순돌이가 거뜬히 해내더라구요. 그때 내가 따라가 내 두 눈으로 똑똑히 지켜봤거든요.

순돌이는 슈퍼 안으로 들어가, 세상에나 만상에나, 우유팩을 직접 물고 와 바구니에 담더니,

소시지도 골라 와서 계산대에 올려놓더라구요. 이 장면이 가장 인상 깊었어요.

이 까치 머리로는 도저히 따라할 수 없는 재능 앞에, 나도 몰래 고개가 저절로 숙여지더군요.

우리 까치 학교에서는 그래도 내가 꽤나 재치있는 재능꾼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순돌이 앞에서는 왠지 더 작아져 보이고 초라하게 느껴지더군요.

며칠 동안, 나는 까치집 수리 때문에 바빴어요. 엊그제 내린 소낙비와 왁자지껄 스쳐간 비바람 때문에,

보금자리를 보강하지 않으면 안 될 지경에 이르렀지요. 까치집 수리를 끝내고, 꼬르 동산으로 가 보았지요.

그런데, 놀랍게도 거기에 샤미가 와 있었어요. 그것도 순돌이랑 함께 말이죠. 너무나 놀라 내가 다가가 물었지요.

"어쩐 일이야? 왜 여기 있어?"

내 말에 샤미는 무표정으로 대꾸했어요.

"어젯밤 인덕이랑 크게 다퉜어."

"무슨 소리야? 그 동안 사이 좋았잖아."

내 말에 샤미는 고개를 설레 설레 흔들며 말했어요. 순돌이는 피곤한지 엄마 샤미 곁에서 졸고 있었구요.

"순돌이 때문이기도 해. 순돌이가 여러 재주를 부릴수록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을 더 받게 되니까, 걱정이 됐나 봐."

"무슨 걱정?"

"아예 사람들 손에 길들여질까 봐."

"누구? 순돌이가?"

"응! 순돌이가 평생 사람들의 꼭두각시로 살아갈 게 뻔하다는 거야."

샤미의 목소리가 약간 떨리고 있었어요.

"꼭두각시?"

"응? 꼭두각시! 자기 의지로 살아가지 못하고, 사람의 눈치나 실실 보면서,

겨우 먹거리 구걸하면서, 평생 그렇게 구질구질하게 살아가는 게 싫은가 봐.

자유롭게 살아가래, 아들과 내가 말이야."

"자유? 그게 좋긴 해. 나더러 택하라면, 구속보다는 자유이겠지."

"그래도 난 인덕이랑 순돌이랑 셋이 함께 오붓하게 사는 게 좋은데..."

"개목걸이 때문인 것 같은데?"

"맞아, 개목걸이에 묶여 지내는 자기 삶이 몹시 싫은가 봐. 그래서,

나랑 순돌이를 거의 내쫓다시피 하는 거겠지. 내 개목걸이의 가죽끈을 밤새 물어뜯더라구.

개목걸이가 풀리자마자, 나더러 어서 빨리 공장 터를 떠나래.

그래서 오늘 새벽에 그곳을 떠나 이곳 꼬르 동산으로 온 거야."

잠시 잠을 청하려는 듯, 샤미는 두 눈을 조용히 감더군요.

샤미와 순돌이가 잠든 걸 보고서야 나는 팽나무 우듬지로 높이 올라가 앉아, 잠시 사색에 잠겼어요.

아침 햇살을 받으며 잠시 눈을 붙이던 샤미와 순돌이가 깨어났어요.

순돌이는 변화된 환경에 어리둥절해 하다가,

금방 친숙해진 듯 꼬르 동산을 여기 저기 마구 뛰어다니며 놀았어요.

나비들이 신기한 듯, 나비가 앉아 있는 꽃나무를 향해 돌진하기도 했구요.

이윽고 샤미는 결심을 굳힌 듯, 순돌이를 향해 말했어요.

"가자."

순돌이가 뛰어와 물었어요.

"어딜 가, 엄마?"

이때 샤미가 아주 속삭이듯 말했어요.

"네 할머니한테! 가서 인사해야지."

"할머니? 촉사 할머니?"

"응!"

앞장서 걷는 샤미 뒤를 순돌이가 쫄랑쫄랑 따라갔어요.

나는 순돌이와 말을 주고받으며 함께 갔어요.

"순돌이, 괜찮아?"

"난 괜찮아, 엄마와 함께라면 어디든 좋아."

"진짜?"

"엄마가 아주 많이 많이 좋아."

샤미를 잘 따르는 순돌이가 기특해 보이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걱정되기도 했어요.

숲길 가시밭도 잘 헤쳐나가는 순돌이를 보면서, 미소가 저절도 지어지더군요.

우리 일행이 작은 산 하나를 넘었을 때, 아주 요란한 소리가 들렸어요.

멧돼지 한 마리가 전속력으로 우리 쪽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어요.

놀랍게도 그 뒤를 샤미의 엄마 촉사가 쫓고 있었어요.

촉사는 우리를 힐끗 쳐다봤지만, 아주 빠른 발걸음으로 우리 곁을 스쳐지나갔어요.

그때 샤미가 소리쳤어요.

"엄마, 멧돼지 사냥 중이야?"

"보면 모르냐?"

그 뒤를 샤미가 본능적으로 뒤따라갔어요.

"순돌이 너는 여기 꼼짝 말고 있어. 알았지?"

이 한마디를 남기고 샤미는 촉사 뒤를 따라 질주했어요.

나는 높이 날아올라 촉사보다 더 빨리 나아갔어요.

속력을 점점 높이면 달아나는 멧돼지가 계곡으로 치달려가는 모습을 보며 소리쳤어요.

"지금 멧돼지가 작은 개울쪽으로 가고 있어."

촉사는 가다가 힐끗 나를 쳐다보더니, 다시 추격해 나갔어요.

촉사가 작은 물웅덩이에 이르렀을 때, 아주 놀라운 광경이 전개됐어요.

물웅덩이 안 바위 밑에 웅크리고 있던 멧돼지가 갑자기 스프링처럼 튀어나와 촉사를 향해 돌진했기 때문이죠.

이에 기겁한 촉사는 '엄마야!' 하는 소리와 함께 뒤따라오던 샤미 쪽을 향해 거꾸로 달리기 시작했어요.

다행히 멧돼지는 달리던 방향을 바꿔 다시 개울쪽으로 도망치기 시작했어요.

다시 추격전이 벌어질 거라 예상했지만, 실제로는 그러질 않았어요. 샤미가 촉사의 앞길을 막아섰기 때문이죠.

"엄마, 이제 그만해."

그런데도, 호흡이 거칠어진 촉사는 샤미의 말을 무시하며 개울쪽으로 자꾸 내려가려 했어요.

"나 말리지 마."

그러자, 샤미가 목소리를 빽 높였어요.

"엄마, 혼자서는 멧돼지 쫓지 않기로 했잖아. 아주 위험하다구.

지금 엄마의 몸 상태를 좀 봐. 아주 말라 있잖아.

이런 허약한 몸으로 어떻게 멧돼지 공격을 할 생각을 하냐구."

샤미는 어두운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며 말했어요.

"난 아직 팔팔해. 혼자서도 얼마든지 멧돼지 사냥을 할 수 있다구."

촉사의 말에, 샤미는 그만 고개를 돌리고 말았어요.

"엄마, 지금 순돌이 혼자 산자락에 있거든. 지금 거기로 가 봐야 해."

"순돌이가 왔다구? 그럼 나도 가 봐야지."

그때서야 촉사는 멧돼지 추격을 포기하고, 다시 오던 길로 되돌아갔어요.

순돌이가 걱정이 되어, 나도 아주 빠르게 날아서 산자락으로 갔어요.

순돌이는 묘지 근처에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할미꽃 구경에 여념이 없더군요.

다시 합류한 샤미와 촉사, 그리고 순돌이는 잠시 그늘에 앉아 쉬다가, 옹달샘터로 가서 물을 마셨어요.

그리고는 잠시 담소를 나누다가, 여기까지 온 김에 산정상에 살고 있는 늑대 할아버지를 찾아뵙기로 방향을 잡았어요. 

촉사, 샤미, 순돌이 이렇게 셋이서, 할아버지 늑대를 찾아가는 모습은 참으로 감동이었어요.

나는 이 나무 저 나무로 옮겨 날아다니며, 길 안내 겸 소풍을 즐기며 앞서갔어요.

늑대 할아버지를 만나려면, 산 하나를 넘어 산정상까지 올라가야 했어요.

순돌이가 걱정되었지만, 의외에도 순돌이는 아주 촐랑촐랑 잘도 따라갔어요.

한나절이 걸려 다다른 산정상, 소나무숲이 끝나는 지점에 편벽나무숲이 이어져 있었어요.

편벽나무숲길을 지나면 폭포수가 보이고, 폭포수 위쪽에는 바위 절벽이 병풍처럼 늘어서 있었어요.

우리가 도착할 무렵 바위 절벽 위에서 아주 요란한 포효 소리가 들렸어요.

"어, 저거 봐?"

샤미가 놀라 소리쳤어요.

"아니, 저건?"

촉사도 동시에 외마디 내뱉었어요.

"늑대 할아버지 '왕우'다! 지금 곰과 싸우고 있나 봐."

그 말과 동시에 촉사와 샤미가 바위 절벽 위쪽으로 뛰기 시작했어요.

나는 순돌이를 안내하며 뒤따라갔어요.

우리가 바위 위쪽에 다다를 무렵, 촉사가 먼저 소리쳤어요.

"아빠, 나 왔어요, 촉사!"

곰과 싸우고 있던 늑대가 힐끗 뒤돌아보며 크게 소리쳤어요.

"거기 멈춰라. 여기 싸움에 끼어들지 마라."

늑대 '왕우'는 아주 비수 같이 날카롭고도 우렁찬 목소리로 소리 질렀어요.

그때 곰이 앞발을 높이 들며 달려들더니, 늑대의 목덜미를 한 대 후려쳤어요.

그 순간 왕우는 촛대 바위에 몸뚱이를 부딪히며 나가떨어졌어요.

그러자, 성질 급한 촉사가 내리달려가더니, 머리로 곰의 등허리를 들이받았어요.

샤미도 달려가 곰 뒷다리를 물어뜯었구요.

이에 깜짝 놀란 곰이 뒷걸음질치다가 그만 바위 아래 절벽으로 굴러떨어졌어요.

다행히 절벽 중간에 뻗어 있는 소나무 가지에 몸뚱이가 걸려 목숨은 겨우 건졌지만,

아주 혼쭐이 난 곰은 슬슬 도망치기 시작했어요.

곰이 절벽 아래로 도망치는 모습을 확인한 샤미와 촉사는 왕우 앞으로 달려갔어요.

늑대 왕우는 촛대 바위에 등을 기대고 비스듬히 앉아 있었어요.

"이 왕우가 곰과 일대일로 싸울 때는 절대 끼어들면 안 되느니라. 알겠느냐?"

"......"

이 말에 어느 누구도 대꾸하지 않았어요. 왕우의 몸 상태가 좋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왕우의 목덜미에서 가슴쪽으로 큰 상처가 나 있었어요.

곰의 발톱이 아주 깊숙이 흔적을 남겨 놓았던 거예요.

왕우가 그 어떤 말을 해도, 촉사는 그저 울기만 했어요.

"아빠, 아빠....."

촉사는 늑대 아빠를 보며, 샤미는 늑대 할아버지를 쳐다보며, 마냥 눈시울만 적시고 있었어요.

"너희들 지금 내가 곧 죽을 거라 여기는 거지? 이 고얀놈들!"

"......."

"그래, 잘 봤다! 늑대는 이렇게 큰 상처가 나면, 곧바로 죽을 준비를 해야 해.

이렇게 바위에 느슨하게 몸을 기대고 서서히 죽어 가는 거야. 그게 늑대의 마지막 운명인 거지.

그래도 이렇게 너희들을 보면서, 내 자랑스런 핏줄을 보면서

마지막 숨을 거둘 수 있다니, 행복하구나! 바로 저 녀석이 샤미의 아들이냐?"

"네! 할아버지! 순돌이예요!"

샤미가 한 걸음 앞으로 나서며 머리를 숙였어요.

"흠! 야무지게 생겼구나! 과연 내 혈통답다!"

촉사도 한 걸음 앞으로 다가서며 나지막이 읊조렸어요.

"아빠, 아빠 말대로 산정상에 머물지 못하고, 내 고집대로 산자락으로 내려가 살아서 미안해."

"괜찮다! 이제 와서 그런 것 따져서 뭐하겠냐. 나는 늑대지만, 너는 들개이잖니. 다 이해한다. 그리고 용서하마."

이후에도 여러 대화를 주고받았지만, 결국 왕우는 조용히 자신이 죽게 해달라고 부탁했어요.

샤미와 촉사와 순돌이는 울면서 그 자리를 떠나기를 거부했지만,

왕우의 단호하고도 간곡한 부탁으로 결국 다들 산정상을 내려와야 했어요.

우리 일행을 떠나보내면서 해준 왕우의 마지막 한마디가 가슴 아프게 했어요.

"늑대는 죽어 그 몸을 독수리에게 다 내주고 가는 거야. 그래야 늑대의 몸이 다시 살아나는 거지.

이게 수만 년 전부터 내려온 늑대의 전설이고 숙명인 거지. 부디 잘 살 거라. 한 마디 조언을 해주자면,

되도록 사람과 어우러져 살 길을 찾도록 하거라. 알겠느냐?"

이 한마디가 산정상을 내려오면서도 내내 웅얼웅얼 귓가에 맴돌았어요.

우리 일행이 산모롱이를 아주 천천히 내려오고 있었어요. 촉사, 샤미, 순돌이, 그리고 나 까치 순으로.

그런데, 솔숲으로 접어들 즈음, 샤미가 갑자기 방향을 틀었어요.

아주 빠른 속도로 내달리는 샤미의 뒤를 우리는 영문도 모른 채 반사적으로 따라갔어요.

샤미는 할아버지 늑대 왕우가 몸을 느슨히 기대고 있는 바위 앞까지 한달음에 치달려 갔어요.

바위 아래 왕우 곁에는 독수리 몇 마리가 어슬렁대고 있었어요. 그 속으로 뛰어든 샤미 때문에,

독수리들은 영문도 모른 채 엉거주춤거리다가 하르륵 소나마 가지 위로 날아올랐어요.

샤미가 바위 곁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왕우는 숨을 거둔 뒤였어요.

샤미는 잠시 숨을 멈추고 뚫어져라 왕우를 쳐다보더니,

저 먼 산 아래를 바라보며, 글썽이는 눈시울로 긴 목을 늘이더니 울부짖었어요.

"우우어엉엉!"

전설 속에서나 들려오던 바로 그 늑대 울음소리였어요. 그러자 촉사도 함께 소리를 내질렀어요.

"우우우우엉!"

순돌이도 덩달아 따라 울었어요.

"우우엉, 우어엉!"

그 울음소리가 골짜기 아래로 길게 퍼져 나가더니, 굽이 굽이 산봉우리 타고 아스라이 뻗어나갔어요.

산모롱이를 내려올 때까지 그 울음 소리의 메아리가 내 귓가에 잔영으로 은은히 남아 흐느꼈어요.

산자락으로 내려와, 촉사와 헤어졌어요. 샤미는 촉사를 살짝 껴안은 뒤 뒤도 돌아보지 않고 꼬르 동산 쪽으로 걸어갔고,

순돌이는 잠시 촉사 주위를 맴돌며 어리광 부리더니, 이내 샤미 뒤를 허겁지겁 따라갔어요.

그날 나는 모처럼 내 보금자리에 돌아와 곤히 잠들었구요.

요 며칠 사이에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하루 하루가 스쳐갔어요.

꼬르 동산 주위에는 크고 작은 동산과 언덕이 수십 개 둘러싸여 있는데,

사고가 하나 발생했어요. 어느 한 들개가 그만 산행하는 사람의 다리를 물어 버렸던 거예요.

이게 도화선이 되어, 난리가 났어요.

"들개를 소탕해 버려야 한다."

"들개의 씨를 말려야 한다."

"공포스런 산행길을 방치해선 안 된다."

"산책하는 데 방해거리는 당장 제거해야 한다."

심지어 사냥총 등장까지 거론되었어요. 총으로 쏴서 일망타진해야 한다는 의견이 속속 올라왔어요.

위기 팽팽, 숨도 못 쉴 정도로 목을 꽉 조여 왔어요.

다행히 동물보호협회에서 들고 일어나서 촘촘히 방어벽을 치기 시작했어요.

"불필요한 동물 학대를 당장 멈춰야 한다."

"만물의 영장인 인간답게 들개를 보호해 줘야 한다."

"들개보다는 유기견이 더 문제다."

"애완견을 길가에 버리는 건 윤리 문제다."

"들개와 사람은 어우러져 살아가야 한다."

"들짐승을 무조건 죽이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위대한 인간답게 우아하게 행동해야 한다."

"동물을 적절하게 관리할 책임이 인간에게 있다."

"구석기 시대부터 내려온 인간과 동물의 유대관계를 보다 돈독히 해야 한다."

"동물에 대한 인간의 우월성은 이제 그만 내려놔야 한다."

"다른 짐승에게도 인간은 윤리적인 대우를 동등하게 적용해야 한다."

"인간은 동물의 동료로서, 동물의 생명과 복지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어느 누구도 합리적인 이유 없이 동물에게 고통이나 상해를 주어서는 안 된다."

"동물이 불쾌감이나 고통을 느끼게 해서는 안 된다."

"동물의 생명권에 대한 인식을 재고해야 한다."

이런 주장과 견해가 여기 저기에서 마구 솟구쳐 동물 학대에 팽팽히 맞섰어요.

그 덕분에, 들개를 총으로 쏴 씨를 말려야 한다는 주장은 슬그머니 뒤로 밀려났어요.

그런데도, 동산이나 언덕이나 산행길에서의 팽팽한 긴장감은 쉽사리 사그라들 줄 몰랐어요.

하루는 샤미와 순돌이랑 나 까치 '국자'랑 다리 밑에 살고 있는 노숙자 '자유인'에게 놀러 갔어요.

우리는 만난 김에 앞으로의 갈 길에 대해 서로 진지하게 토론했어요.

'앞으로 어떻게 먹고 살아갈 것인가.'

'들개로 살면서도 배고프지 않은 길은 없을까.'

'들개의 자유로운 삶을 유지해 나가는 길은 뭘까?'

얘기를 나누던 중, 자유인이 불쑥 이런 제안을 했어요.

"우리 한데 뭉칠까?"

이때 샤미가 되물었어요.

"뭉쳐요? 어떻게요?"

자유인은 덥수룩한 수염을 손바닥으로 쓸어올리더니, 이렇게 말했어요.

"잘 생각해 봐. 배고프지 않으려면, 우리도 벌어야 해."

"들개인 주제에 어떻게?"

샤미의 말에 자유인은 빙그레 웃으며 말했어요.

"오일장 바닥에서 내가 기타를 치며 용돈을 벌잖아. 그때 너희들이 재주를 부리는 거야.

순돌이의 다양한 재주는 사람들의 눈길을 끌 게 틀림없어.

샤미는 바구니 하나 목에 걸고 사람들 사이를 돌아다니면 돼."

이때 내가 끼어들었어요.

"용돈을 벌어, 개사료를 사자는 거네요."

"맞아, 까치 너도 짬나면 와서 도와 주구."

"내가 어떻게?"

"그거야 간단하지! '국자' 너는 재주 부리는 순돌이 머리에 앉아 있기만 하면 돼,

바구니 들고 다니는 샤미의 머리 위에 앉아 있든지. 사람들이 그 모습을 보고 아주 재미있어 할 거야."

자유인의 이 말에, 샤미가 고개를 끄덕였어요.

"그렇게 해서 번 돈으로 우리 개사료를 사주겠다는 거네요?"

"그렇지! 너희들은 사나흘 동안은 야산에서 지내다가, 오일장 때만 내려와 나랑 함께 저잣거리 공연을 하는 거지.

즐겁게 용돈 벌어 먹거리도 해결하구, 어때, 좋잖아?"

"좋은 생각이네요. 그렇잖아도, 앞으로 순돌이랑 야산에서 살아갈 생각을 하니, 머리가 찌끈찌끈 아팠거든요.

야산에는 점점 먹거리가... 쥐도 개구리도... 아무튼 살아갈 길이 막막했거든요."

"그러니까, 우리가 뭉치는 거야. 너희들은 먹거리 해결해서 좋고, 나는 외롭지 않아서 좋고."

"좋아요, 그렇게 할게요. 오일장 전날밤 내려와서 이튿날 공연까지 함께한 뒤, 우리는 다시 야산으로 올라갈게요."

이런 토론이 있은 후로, 자유인의 코치로 순돌이의 온갖 재주가 빛나기 시작했어요.

종이공장의 직원이 이미 훈련시켜 준 재주 외에도 여러 재주를 반복해서 익혔어요.

'담요 가져와 아저씨 덮어 주기.'

'오줌 싸고 물티슈 가져다 주기.'

'똥 싼 척한 뒤 배변 봉투 물고 오기.'

'간식 꺼내 와서 그릇 위에 놓아 두기.'

'싫은 것 시키면 도리 도리 하기.'

'너 살 쪘지 하면 저울 위로 올라서기.'

'샤미가 누워 있으면 심폐소생술 하기.'

'아저씨가 훌쩍이면 다가가 달래 주기.'

이후 오일장마다 펼쳐지는 이러한 순돌이의 재주가 인기를 끌었어요.

까치 학교가 끝나자마자, 나 까치 '국자'도 휭 날아가 순돌이의 재주에 박수를 쳐주었지요.

"까악 까악 까까깍."

때로는 순돌이의 머리 위에 앉아 따라다니며 응원해 주기도 했구요.

그때마다 사람들이 아주 좋아라 하며 샤미가 들고 다니는 바구니에 용돈을 넣어 주곤 했어요.

날이 갈수록 자유인의 기타 솜씨도 늘어갔구요. 그만큼 사람들의 박수 소리가 더 커져 갔어요.

어느덧 들개 공연단은 오일장 시장 바닥에서 없어서는 안 될 진풍경 거리가 되어 버렸어요.

이러다 어쩌면 공중파 방송에 출연하게 될지도 몰라요. 사람들이 그렇게 말했거든요.

"TV방송국에서 곧 섭외가 들어오겠구먼."

"허허허, 천재견이 있다더니, 진짜네, 진짜야."

시장터에서 사람들의 박수 소리가 점점 커질수록,

들개 공연단은 오일장이 들어서는 날에는 배불리 먹을 수 있었어요.

나머지 서너 날은 야산에서 자유를 만끽하며 생활할 수 있어서 행복했구요.

이제 이것으로 '들개의 길' 방학 숙제를 마쳐도 될 것 같네요.

아 참, 어느 날 들개 공연단은 종이박스 공장 마당으로 가서 특별 출연을 했어요.

진돗개 인덕이와 공장 직원들이 보는 앞에서 멋진 공연을 펼쳤거든요.

물론 자유인이 기타를 들고 와 찬조 출연 해주었구요.

흐뭇한 정경이라서 마지막에 언급하지 않을 수 없네요.

그리고, 촉사! 촉사는 끝끝내 오일장 공연단에 합류하지 않았어요.

고집 불통, 절대로 사람이 살고 있는 마을로는 내려오지 않겠다는 거예요.

이따금 늑대 '왕우'의 터로 가서 며칠 밤 지내다 내려오곤 했어요.

물론 소시지는 샤미와 순돌이가 이따금 야산까지 물어다 주고 오곤 했어요.

차마 그것만큼은 거절하지 못하더군요.

이상, 까치 학교의 방학 숙제인 들개 관찰기 '들개의 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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