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금선의 말하는 수필 11
박금선 시인
내 고향 석담을 다녀와
박금선
웃골의
천일 농장 발발이 짖는 소리
구릉 들판이 들썩거린다
올 된
나락은 고개를 숙일까 말까 고민 중에 서 있다
혼자
석담에 앉았다
배둔 쪽에서 건들바람이 분다
아직은 덥다
기분이
나쁜지 입이 서너 발이나
튀어나와 끈적끈적하다
배둔 장날
어머니의 박하엿을 목이 빠지게 기다리다
노랑머리 여자아이가
돌무덤에 코를 박고 잠이 들었던
그 석담이다
우리들의 단골 사랑방이었다
삼백 살이 넘었다
추억의 냄새들이 코앞에 줄을 선다
보리쌀 삶는 냄새
숯불 위의 창자 터진
꼼꼼한 갈치 굽는 냄새
온 동네를 진동한다
구릉 들판을 둘러본다
베트남
마누라는 도망가고
대출 융자금
빚에 찌들어 술병을 다리에
끼고 살다 술병으로 작년에
별이 된 동열이의 소 농장만
덩그러니 서 있다
그렇게
많던 소들은 세상을 떠나기 전에 다 팔았을까
엉덩이에
소똥 칠갑을 한 소 한 마리
남아있다
눈물이 고인 희멀건 눈으로
지푸라기를 질겅질겅 십고 있다
늙어서일까
영양이 부족할까
척추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석담은 이제 늙었나 보다
내가
가는지 오는지
반겨 주지도 않는다
헝클어진 허연 수염만
늘어 드린 채
턱을 괴고 머리만 긁적인다
내가
어릴 때 석담은 경주 불국사의
석가탑이나 다보탑보다
더
웅장하고 우러러 보였다
아기를
못 낫거나 집안에 우환이 들면
어른들은 꼭 석담을 찾았다
느릅나무 허리에는
고운 짚으로 왼쪽으로
꼰 팔뚝만 한 굵은 새끼에
오색천
참나무 숯
빨간 고추를 달았다
부처님 예수님보다
한 수 위가 석담이었다
무엇이든
다 들어 주는 우리 마을의
유일한 수호신이었다
내 친구
석규 현욱이
봉연이 희곤이 형수
다섯 명이나
왜 죽게 내 버려뒀냐고
생떼를 써 본다
이제
힘이 없나 보다
내가 묻는 말에 답이 없다
거무튀튀
붉은빛을 잃어 가는
팔월의 장미꽃 이마에는
상처 난 붉은 그리움이 묻어 있다
계단을 내려온다
하얀
수건을 눌러 쓴
참나무 껍질 같은
어머니의 손 비비는 소리가
간간이 들려 온다
사그락사그락.
사진 정윤칠 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