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금선 시인의 말하는 수필 3

수필, 소설

박금선 시인의 말하는 수필 3

소하 0 2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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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마임 포토 친구


봉연이 엄마


            박금선


신랑 잡아먹고

아들 셋 잡아먹고

딸 봉연이 잡아먹고

다섯 명을 잡아먹고

저래 오래 산다

길다 길어 명줄도 길다

쯧쯧,


봉연이 엄마가 지나가면

뒷골 여우 지나간다고

동네 사람들이 머리를 흔들고 수군거리며

흉을 보고 혀를 찬다


젊었을 때

가족이 몰살했다

지병이 없었는데도 시름시름

앓다가 죽어 갔다

사람들은 할머니가 무당이었는데 묘를 잘 못 써

산바람이 불어 다 잡아갔다고 했다


그러나

나중에 알고 보니

가족 모두가

간이 안 좋았다고 한다

엄마 혼자만 살아남았다

논 서 마지기에 나무를 해 팔아 먹고살았다

키가 작고 야윈 봉연이 엄마 등에는 지게가 떨어질 날이

없었다. 엄마 키보다

지게 키가 훨씬 컸다


어릴 때

술만 마시며 봉연이 아버지가 마당에 밥상 던지는 소리를 많이 듣고 자랐다

지게 작대기를 들고 온 동네를 엄마를 찾아다녔다

엄마는 무서워

우리 집 뒤꼍에 숨는 날이 참 많았다


올해 99살이다

거동이 불편하니

작년에 정부에서 운영하는 요양원에 들어갔다


얼마 전에 면회하러 갔다

"금선아  니가 올 줄 몰랐다. 고맙다.

제발 저승사자가 내 좀 데려가게 해 주라."


목소리가 찰랑찰랑

똑똑했다

나를 알아보고 한탄을 하며

부둥켜안고 놓아 주질 않았다

옆에 있던 돌보미 아주머니가 고맙다고 더 많이 울었다

세 사람은 요양원이 터지도록

한참을 안고 울었다


우리 집 바로 앞이 봉연이 집이다

찌그러진 대문은 녹색 빛을 잃은 지 오래되었다

쇳가루가 철철 삭아 내린다

구멍 난 대문 사이로 고양이가

수월케 왔다 갔다 한다

고양이의 기숙사다

바람이 부는 날은

삐거덕삐거덕 사람 뼈

부딪히는 소리가 난다

비가 오는 날은 싸한 느낌에

어깨가 움츠러든다


그래도 마당에는

구절초와 쑥부쟁이가

온종일 목이 빠지도록 대문을 바라본다

봉연이 엄마를 기다린다

이제는 돌아오지 못할 거 같다


잘 살아야 한다

봉연이 엄마가 부자였더라면

온갖 흉도

다 사라지고

덮어졌을 것이다


축 늘어진 뒤뜰의

땡감 나무 위로 까마귀 두 마리 빙빙 돈다

까만 배로 앙칼지게  울어 재낀다

불길한 예감이 든다

오늘 밤 봉연이 엄마가 돌아가시려나 보다

깍 깍 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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