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금선 시인의 말하는 수필 3
김마임 포토 친구
봉연이 엄마
박금선
신랑 잡아먹고
아들 셋 잡아먹고
딸 봉연이 잡아먹고
다섯 명을 잡아먹고
저래 오래 산다
길다 길어 명줄도 길다
쯧쯧,
봉연이 엄마가 지나가면
뒷골 여우 지나간다고
동네 사람들이 머리를 흔들고 수군거리며
흉을 보고 혀를 찬다
젊었을 때
가족이 몰살했다
지병이 없었는데도 시름시름
앓다가 죽어 갔다
사람들은 할머니가 무당이었는데 묘를 잘 못 써
산바람이 불어 다 잡아갔다고 했다
그러나
나중에 알고 보니
가족 모두가
간이 안 좋았다고 한다
엄마 혼자만 살아남았다
논 서 마지기에 나무를 해 팔아 먹고살았다
키가 작고 야윈 봉연이 엄마 등에는 지게가 떨어질 날이
없었다. 엄마 키보다
지게 키가 훨씬 컸다
어릴 때
술만 마시며 봉연이 아버지가 마당에 밥상 던지는 소리를 많이 듣고 자랐다
지게 작대기를 들고 온 동네를 엄마를 찾아다녔다
엄마는 무서워
우리 집 뒤꼍에 숨는 날이 참 많았다
올해 99살이다
거동이 불편하니
작년에 정부에서 운영하는 요양원에 들어갔다
얼마 전에 면회하러 갔다
"금선아 니가 올 줄 몰랐다. 고맙다.
제발 저승사자가 내 좀 데려가게 해 주라."
목소리가 찰랑찰랑
똑똑했다
나를 알아보고 한탄을 하며
부둥켜안고 놓아 주질 않았다
옆에 있던 돌보미 아주머니가 고맙다고 더 많이 울었다
세 사람은 요양원이 터지도록
한참을 안고 울었다
우리 집 바로 앞이 봉연이 집이다
찌그러진 대문은 녹색 빛을 잃은 지 오래되었다
쇳가루가 철철 삭아 내린다
구멍 난 대문 사이로 고양이가
수월케 왔다 갔다 한다
고양이의 기숙사다
바람이 부는 날은
삐거덕삐거덕 사람 뼈
부딪히는 소리가 난다
비가 오는 날은 싸한 느낌에
어깨가 움츠러든다
그래도 마당에는
구절초와 쑥부쟁이가
온종일 목이 빠지도록 대문을 바라본다
봉연이 엄마를 기다린다
이제는 돌아오지 못할 거 같다
잘 살아야 한다
봉연이 엄마가 부자였더라면
온갖 흉도
다 사라지고
덮어졌을 것이다
축 늘어진 뒤뜰의
땡감 나무 위로 까마귀 두 마리 빙빙 돈다
까만 배로 앙칼지게 울어 재낀다
불길한 예감이 든다
오늘 밤 봉연이 엄마가 돌아가시려나 보다
깍 깍 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