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 동행 * 이 달의 Artem * 부싯돌 문학상 * 마리아칼라스 * 권영심 작가
포랜컬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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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02 16:08
#최고상
#수필 부문
마리아칼라스
권영심( 2025. 2. 2 )
나는 어렵고 고통스런 삶 속에서 위안을 얻은 몇 가지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클래식이라고 할수있다.
이렇게 말하 면 클래식에 대해 조예가 깊은 줄 아는 데 그야말로 착각이다.
나는 차이코프 스키와 베토벤. 그외 몇 곡만, 들으면
아! 그거구나 라고 아는 정도이지 하나도 제대로 아는 것이 없다.
그럼에도 듣는 귀엔 전혀 문제가 없다.
몰라도 감상하 고 즐기는 것에 방해가 되지않고
나는 그저 그런 음악이 내 주변에서 들리는 것이 너무 좋을 뿐이다.
어렸을때 아버지의 손을 잡고 따라 다닌 곳에서 들은
판소리와 국악 연주가 나의 듣는 귀를 열어 주었음을 알고있다.
오선지를 볼 줄 몰라도 나는 내 귀에 좋은 음률을 구별한다.
악기와 가수를 불문하고 그런 선율이 주는 위로와 느낌은 오롯이 나의 것이고,
나는 완벽하게 동화되어 그 시간을 행복으로 채운다.
내가 진정으로 좋아하는 것은 내 귀에 들려서 내 심장을 물들이는 음률이다.
대금에 대해 전혀 모르지만 그 음색의 변화를 구별하고,
연주자의 감정을 느끼며 마음을 물들이는 연주에 몰입할 수 있는 내가 너무나 좋다.
장르를 불문하 고 내게 영감과 기쁨을 주는 그런 음악 은 참으로 많다.
어쩌면 20세기는 천 재들이 사라지는 시기였는지도 모른다.
나는 선율에 감흥을 가질 뿐이지, 연주가 나 작곡가엔 그닥 관심이 없다.
그런 나에게도 지금도 잊지 못 하고 가을 밤 하늘을 보면서 그리워하는 가수들이 있다.
20세기에 사라진 수많은 천재들 사이에서 찬란히 빛나는 마리아칼라스.
마리아칼라스를 그리워하는 내 마음은 언제나 한결같다.
요즘 젊은이들은 이 이름의 여인이 누군지 모를 수도 있다.
그러나 성악가나 음악을 하는 사람이 아닐지라도
우리 세대에서 이 이름은 별이고 전설이며 신화이다.
나는 얼마 전까지도 마리아칼라스의 하나 남은 시디를 신주모시듯 가지고
가끔 들으며 홀로 감격하고 눈물짓곤 했었다.
시디의 수명이 다 되었는지 이젠 들을 수 없고 어디 가서 구하지도 못 한다.
마리아칼라스는 노래와 함께
한 줄기 불꽃의 생을 꽃피우고 다른 곳으로 홀연히 떠났다.
1923년 12월 2일 미국의 뉴욕에서 출생해서 죽을 때까지
단 한 하루도 편안한 날이 없었다는 마리아칼라스는,
개인사나 불세출의 소프라노 가수라는 공인의 삶에서도 절대 평탄하지 않았다.
그녀는 그리스 이민자의 가난한 삶 에서 오나시스의 내연녀라는
극도의 호화로운 생활까지 극과 극을 달리는 삶을 살았다.
그런 와중에서도 그녀는 자신의 노래에 완벽했고,
나비부인을 연기하기 위해 몸무게를 40키로 감량하는 극단의 노력을 한 가수이다.
여러 성격의 주인공들을,한 가수가 노래할 수 는 있으나
그녀와 같이 폭 넓은 음역의 가수는 전무후무했다.
스폰티니나 케루비니 스타일의 고전오페라에서
푸치니의 베리스모까지 소화해내는 가수 는 거의 없다고 할수있다.
성악적 기교는 또 어떤가?
콜로라투라의 완벽한 기교를 필요로 하는 루치아를 시작으로,
소프라노가 노래할 수 있는 가장 무거운 역할인 바그너의 부른힐데와 쿤드리를 연기했다.
연약한 나비부인에서 메데아까지, 마치 여러 사람인듯 그녀는 부를 수 있었다.
말년에 한국으로 공연도 왔지만 내가 들은 것은 음반을 통해서였다.
나는 예전에 힘써서 마리아칼라스의 음반들을 여러 장 구했고 그 판들이 닳도록 들었다.
마리아칼라스의 무엇이 그렇게 나를 사로잡았을까?
그것은 여러가지 이지만 나는 그녀의 모든 노래에서
깊고 깊은,슬픈 웅장함을 느꼈던 것 같다.
슬픈 웅장함이란 표현이 맞는지도 솔직 히 모르겠다.
나는 어떤 가수, 어떤 장르 의 음악에서라도
기교나 기술만 뛰어난 것은 한 번 듣고 다시는 듣지 않는다.
기악이나 현악은 내가 문외한이어서, 그저 내 귀에 좋으면 다 좋지만 성악에서,
모든 가수의 노래에서 나는 나만이 알아듣는 무언가가 있다.
화려한 몸짓 과 능수능란한 기교가 주는 그 무엇에도 나는 움직이지 않는다.
그러나 마리아 칼라스는 완벽한 기교를 뛰어 넘는 심연의 호소력으로
나에게 더할 수 없는 감동을 주었다. 고통스런 삶의 질주에서
그녀의 노래는 언제나 진통제와도 같은 위로를 주었음을 나는 선명하게 기억한다.
그녀의 불행한 삶조차도 나에겐 아픔으로 느껴졌다.
그녀가 행복 하고 찬란한 삶을 살았더라면 나의 느낌 이 달라졌을까?
이 나이가 되어보니 누군가의 삶은 누군가에게 영향력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진짜의 영향력말 이다.
닮고싶은 삶도 있겠으나 그 삶이 존재했던 것만으로도 위안이 되는 삶이 있다.
마치 나의 또 다른 모습인듯...
마리아칼라스는 내게 그런 존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