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권의 이령 이야기, 대의며 모의에서 만난 허목 선생

수필, 소설

김정권의 이령 이야기, 대의며 모의에서 만난 허목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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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권 수필가, 신정문학 수필 부문 등단 -제17. 18대 국회의원



오늘도 목적 없이 길을 나선다. 애초에 정해 놓은 일정이나 기한이 없으니 길을 나서는 것도 돌아오는 것도 내 맘이다. 오늘은 며칠 전부 터 마음에 두었던 서원(書院)을 돌아볼 생각이다. 지금과 비교한다면 성균관은 서울의 국립대학 정도일 테고 향교는 지방의 국립대학, 서원은 지방의 사립대학 정도로 보면 무난할 텐데 서원은 학문 연구와 선현제향(先賢祭享)을 위해 사림이 설립한 사설 교육기관인 동시에 향촌 자치 운영기구라 할 것이다. 서원의 효시는 조선 중종 때 풍기군수 주세붕이 고려 말 학자 안향 (安珦)을 배향하고 유생을 가르치기 위해 경상도 순흥에 창건한 백운 동서원이다. 이후 사림계는 학문적 우위성과 정치 입장을 강화하는 동시에 향촌민에 대한 교화라는 명분을 가지고 서원을 확대해 나갔는 데 영조 초기에는 조선 8도에 서원이 400곳을 훌쩍 넘을 정도였다. 서 56_김정권의 의령이야기 원이 이렇게 전국적인 확산을 보게 된 것은 사림의 향촌 활동이 보다 자유로워진 정세의 변화라든가 특정 유학자의 서원 보급운동에 의한 결과이기도 하지만 보다 깊은 요인은 붕당정치(朋黨政治)의 전개에 있었다. 사림의 집권과 함께 비롯된 이 붕당은 그 정쟁(政爭)의 방식이 학문 에 바탕을 둔 명분론과 의리(義理)를 중심으로 전개되었으므로 당파 형성에 학연(學緣)이 작용하는 바는 거의 절대적이었고 학연의 매개 체인 서원이 그 조직과 확장에 중심적인 몫을 담당하게 된 것이다. 따 라서 각 당파에서는 당세 확장의 방법으로 지방별로 서원을 세워 그 지역 사림과 연결을 맺고 이를 자기 당파의 우익으로 확보하려 하였 다. 반면에 향촌 사림으로서는 서원을 통하여 중앙관료와의 연결을 대의면 미연서원 1부 김정권의 의령이야기_57 맺어 의사 전달과 입신출 세의 발판으로 삼고자 하 였기에 서원 건립을 놓고 양자의 이해관계가 서로 일치하였고 이는 곧 서원 의 급격한 증가로 이어진 것이다. 그러나 당쟁의 격화로 서원의 정치적 비중이 커 지는 만큼 사회적 폐단도 늘어나 인조 이후로는 서 원에 대한 대책과 통제가 조정에서 자주 논의되기 시작하였고 영조 17년 결 국 서원철폐가 단행된다. 영조는 서원이 노론·소론·남인 사이의 분쟁을 유발하고 정국을 혼란 시키는 요인이 된다고 판단하여 탕평책 실시와 함께 서원철폐를 단행 하였다. 이후 흥선대원군에 이르러서는 서원의 일대 정리가 시행되는 데 이는 실추된 왕권의 권위를 높이고 강력한 중앙 집권하에 국가체 제를 정비하고자 했던 그의 정치적 목적과 닿아 있다 할 것이다. 덕곡서원의 가을 58_김정권의 의령이야기 흥선대원군은 1864년(고종 1)에 민폐를 끼치는 서원에 대한 훼철을 명령하였고 이어 1871년에 1인 1원(一人一院) 이외의 모든 첩설서원 을 일시에 훼철하여 전국에 27개소의 서원과 20개소의 사(祠)만 남게 된 것이다. 오늘 목적지는 대의면 중촌리에 있는 미연서원(嵋淵書院)이다. 미 연서원은 조선 숙종 때 우의정을 지낸 미수(眉叟) 허목(許穆) 선생을 추모하기 위해 후손들이 세운 서원이다. 오늘이 허목 선생의 기일이 라 후손들이 제사를 준비하는 모습을 덤으로 볼 수 있다. 예전에는 자굴산 쪽으로 보아서 상촌(上村; 지금의 신전, 곡소, 암 하, 행정), 그 밑을 중촌(中村; 중땀), 그 아랫마을을 하촌(下村; 아랫 땀)이라 불렀는데 지금은 7개 마을로 나뉘어져 있다. 중촌리는 대의면 소재지에서 십 리 정도 거리의 전형적인 산촌으로 <모오중촌>이라 하 기도 하는데 <모오>는 예전의 모의면을 가리킨다. 동쪽으로는 험준하 면서도 정기가 높은 자굴산이 우뚝 서 있고 남북도 높은 산줄기가 십 리로 뻗어 있으며 서쪽만 트여 있는데 직접 들어가 보면 경관이 좋고 답답한 느낌이 들지 않는 아늑하고 따스한 골이다. 1825년 건립 당시 서원의 위치는 대의면 행정리였다. 그 후 1868년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가 1901년 후손들과 후학들이 추모의 뜻 을 모아 중촌리에 이의정(二宜亭)을 지었으며 1975년에 복원하였다. 1부 김정권의 의령이야기_59 인지문(仁智門)이라 쓰인 대문채를 지나면 정면에 강당인 이의정이 있고 뒤로는 위패가 봉안된 사당인 숭정사(崇正祠)를 두고 앞쪽에 장 판각과 재, 우측 담장 밖에 관리동인 고직사가 있다. 장판각에는 선생 의 시문집을 간행하기 위해 제작된 <미수기언(眉叟記言)> 책판을 보 관해 왔으나 지금은 의령박물관에 기탁되어 보관되고 있다. 의령을 대표하는 덕곡서원에 비하면 미연서원은 규모 면에서는 비 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작고 초라하기까지 하다. 안내문도, 연락처도 없고 알아서 빗장 열고 들어가면 되는 미연서원은 무심하지만 정감 있고 허술하지만 단아하다. 툇마루에 앉아 뒷산 대숲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맞고 있으면 학동들의 책 읽는 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의령에는 이외에도 용덕면에 태암서원, 어강서원이 있고 지정면에 기강서원, 묘강서원, 유곡면에 예동서원, 의양서원, 그리고 부림면에 신계서원과 낙산서원이 있다. 하나같이 선조들의 정신과 의령의 정기가 담긴 곳들이다. 역사는 현재와 과거의 대화다. 바람 좋은 날 가까운 서원에 들러 과거와 대화해 보기를 권한다. 서원은 현재와 과거의 대 화를 위한 최고의 장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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