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라지 수필, 하명호 수필가편

수필, 소설

도라지 수필, 하명호 수필가편

소하 0 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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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명호 수필가


아버지의 소풍 날


            松淸  하명호


저 멀리 앞산에 아지랑이 아물거리고 참꽃 향기는 코끝을 자극하고 

느티나무에 내려앉은 뻐꾹새 소리 더하여져 온다.


"오늘은 학교 봄 소풍 가는 날이다"


이마에 땀이 송글거려 이른 아침부터 부엌에 엄마는 도시락 준비하느라 부산을 떨며 

바삐 움직이고 마당에 울 아버지 오늘따라 하릴없어 뒷짐 지고서 왔다 갔다 

졸졸 따라다니던 애꿎은 누렁이 강아지 코끝에다 코 찜을 넣으며 엄마 얼굴만 쳐다보고서 있었다.


이윽고 엄마 정지문 밖에 고개 내밀어 매동이 아부지 오늘 얘들 소풍날이니 

농사일도 마땅찮아 그렇고 하니 이참에 얘들 따라서 봄 소풍이나 한번 다녀오시지요.


  "그래도 되어요!"


아버지는 의미 있는 웃음을 날리고서 기다렸다는 듯이 하고는 이내 방으로 들어가기가 

무섭게 중절모에다 외출용 빳빳하게 다려진 옥양목 두루마기 걸치고는 이내 마당으로 내려선다.


이 모습을 보신 엄마가 마치 기다렸다 는듯이 하고는 얘들보다 더 신이 난 표정 

아버지를 향해  오늘 소풍 같이 다녀오시고 대신 일찍 돌아오시고 

집에 가축들 먹이는 제가 알아서 줄 테니 잘 다녀들 오시지요 하신다.


이 광경을 바라보던 얘들도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는 우리들 소풍인데 

아버지가 더 신이나 있으니 우스워 죽는다고 표정들이다.


골목길 돌아서는 아버지 어깨에 두 개의 보따리 하나는 얘들 점심 도시락이고 

하나는 소리가 찰랑거리는데 영 의심이 가는 아버지 몫이라 나중에 알았는데 

소풍을 빌미로 이미 오래전에 어머니 몰래 호리병에다 그동안 뒷간 땔감용 

소나무단 속에 감추어 두어 담가둔 밀조 막소주 정제하여 뒤에 쳐져 오면서 

홀짝거리며 마셔대고자 그것도 식구들 몰래 담가뒀던 모양이다.


학교 가는 길 골짜기 돌아 야산에 할아버지 할머니 산소가 보이고는 

산을 넘고 큰 개울을 건너야 하니 개울 치콘 넓고 길어서 물속에다가는 

돌멩이들 깔아 놓았으니 징검다리가 되어 있었다.


올해 들어 이른 봄비가 잦아 물이 불어난 돌다리라고는 겨우 보일듯하여 

물 밖으로 빼꼼하니 돌출이 되어 그나마 흔적만 보여 아직은 찬물이래도 

양말 벗어 맨발로 얘들은 능숙하니 이내 저만치서 건너가 버린다.


아침부터 취하셨는 지 자칭 원기소(?) 해장술이 이미 과 헤져버린 

우리 아버지는 돌다리를 더듬다시피 헤매고서는 오늘따라 물 밖으로 

고개 내민 돌다리가 아버지에게는 유난히도 작게 보였던 모양이다.


그나마 손에 들어 도시락은 얘들이 이미 저쪽으로 갖고 가버린지라 

조심해서 건너는데 순간 물 복판까지 와서 분명 조금 전까지 보이던 

돌다리가 시야를 벗어났는가 했는데 기우뚱하여 몸은 그대로 차가운 

물에다 헛다리 짚어버려 내팽겨쳐버리고 흐르는 물에 그대로 직행해버린다.


오늘따라 냇물이 더욱 불어나 있어 게다가 찬 바람까지 불어대고서 

허겁지겁 가던 길 되돌아 나와버렸으니 건너편에 얘들보고는 손짓을 헤데이고 

얼른 너희들 먼저 가라고 하고는 뒤돌아 오는 수밖에는 아직은 

추위가 완전히 가시지 않은 아침에 물에 빠진 늙은 생쥐가 되어 있었다.


이런 꼴을 혹시라도 아는 사람이라도 만날까 봐 바삐 걸음 옮기는데 

취기마저 더해져 오고는 이윽고 골짜기 들어서 할아버지 산소를 찾아들어 

물에 젖은 옷들 훌훌 벗어 물기 짜내고서는 돗자리 하고 

바닥에다 깔아두고는 하늘 향해 드러누워 버린다.


따스한 날 얘들 소풍 따라나섰다가 집에도 못 들어가고 게다가 

아침부터 물에 빠져 할아버지 할머니 산소 봉 아래 복판에다 

자리하고는 드러누워 버리고서 이내 봄의 꿈나라로 빠져들어 가버린다.


얼마나 잤는가 술도 깨는 가 산새들 짖어대고 깨우는 통에 잠에서 깨어나 

주위를 둘러보고는 주변 정리 마치고서는 

집으로 향하는데 배에서 꼬르륵 소리 들리는데 어느새 집이다.


안 식구 오랜 한 집 살이라 이미 사태 파악이 끝났는 가 차림새 몰골이 

말이 아니라 집 식구는 한번 쳐다보고는 이내 고개 돌려버린다.


비싼 명절에 입을 한복 두루마기 통째로 버리고, 엉망인데도 

그래도 핀잔 없이 집안에서는 하늘같은 가장으로 바깥 양반이라 

어디 동리 사람들에 알까봐서 안쓰러운 가 나즈막히 한 마디 건네온다.


  "오늘 소풍 잘 다녀오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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