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정佳野井수필

수필, 소설

가야정佳野井수필

소하 0 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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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권(제17.18대 국회의원)

 

가야문화와 김해의 얼


수로왕릉에서 좀 더 북쪽을 가면 우리나라 고대사에서 가장 모험적인 여성 일대난세의 여걸인 허왕후(허황옥}

능이 있고 그 옆에는 구지봉이 있다. 이 구지봉에 얽힌 사연은 너무도 유명하여 모르는 사람이 없다할 정도로

오늘의 우리들에게도 서사시적인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설화를 2천여 년 동안이나 간직한 채 이 지역과

가야문화권에서 하나의 정신적 구심점으로 의 위치를 갖고 지금도 그 늠름한 모습을 자랑하고 있다.

김해패총(조개무지)도 있다. 역사시대 초기에 이 조개무지에서 중국 신나라의 화패인 왕망전이 발견 되었다.

 

그 시대에 가락국의 해상활동이 대단히 활발했을 것이라는 이야기와 더불어 상당한 자료에 근거하여 역사해석을

새롭게 하는 어느 학자는 수로왕이 왕망의 후예로서 왕망과 그 일족이 변란으로 주살당하고 살아남은 일부가

남하하여 낙동강 하류에 이르러서 가락국을 세웠는데 그가 김수로왕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견해는 물론 뚜렷한

문헌 자료가 절대적으로 빈약한 가락국의 모습 속에서 사람들 사이에 회자되기고 했지만 다수의 학자들과

가락종친회 등에서 이를 강하게 부인하여 지금은 거의 없어진 것이다.

 

김해의 곳곳에 많은 전설이 남아 전해오고 있으며 또 그것과 관련되는 역사 문화적 흔적이 곳곳에 산재하고 있다.

김해지역인은 일어나는 시간에서 잠자리에 드는 시간까지 가야문화의 혼이 꿈틀거리는 분위기 속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이곳 지역인들은 자신들이 천혜의 고장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을 잊고 사는 듯하다. 일부 사람들은 이 지역의

깊은 내력과 문화전통을 잘 알지 못하고 표류 하는듯한 분위기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김해시는 옛날 문헌인 가락국기에 의하면 여뀌 잎과도 같다고 하였다. 수로왕이 도읍으로 정하면서 이곳의 지형이

여뀌와 같다고 하면서 당시의 신답평을 개간하여 새 나라의 경제적 토대를 확충하는 등 김해를 왕국의 도성으로

만드는데 개국초기부터 큰 관심을 갖고 임했다는 내용으로 보아 우리나라 고대에 있어서 김해만큼 도시건설의

내용이 상세히 전하는 곳도 드물다고 할 수 있다.

 

김해는 2천년의 역사를 가진 고대 도시이다. 시대와 사회적 혼란기마다 전통은 단절되고 문화는 혼돈 속에서

허우적거려 왔다. 이러한 과정에서 고대도시 김해도 엄청난 시련과 퇴폐의 과정을 반복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러한 실정 속에서 시민들 사이에서 역사문화의식을 재고하는 흐트러지고 파괴되고 있는 이 지역 향토문화를

발굴 보존한다는 취지로 가야문화연구모임이 구성되어 활발히 활동을 전개하여 수십 년 채 이어오고 있다.

이 모임에서 구지가를 보급하고 2~3백여 년 전의 김해 옛 지도를 찾아 인쇄 보급하였다.

 

그간에 문화방송 TV에 수회에 걸쳐 <가야>라는 프로를 기획 방여한바 있고 KBS에서는 이지역의 특이한 전설처럼

전해져 오는 <가야불교>를 현지 촬영하여 40분간 방영하는 등 우리 역사 속에서 희미한 존재로 취급당해 온 가락국의

문명과 문화를 조명하기 위해 민간 쪽에서 관심을 갖고 노력 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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