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병식의 사랑 에세이 24

수필, 소설

민병식의 사랑 에세이 24

제임스 0 243

2022 박경리 문학축전 백일장 일반부 산문 장려상 수상작


[에세이] 비진도
민병식

오늘도 어김없이 사무실 내 자리에서 편의점 도시락으로 점심을 먹는다. 그러고 보니 도시락으로 점심을 먹은 지 오늘이 벌써 1년째 되는 날이다. 동료의 가족이 코로나 확진을 받고 동료가 감염이 된 것을 시작으로 같은 사무실을 쓰는 동료들은 순차적으로 코로나에 감염되어 업무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했고, 코로나에 대한 지식도 부족하고 백신도 도입이 안 되었던 초기부터 ‘위드 코로나’인 지금까지도 우린 각자 칸막이가 있는 자기 자리에서 여전히 혼 밥을 먹는다. 1인 가구가 대세가 된 현대의 인간들을 '홀로 족' 또는 '혼 족' 이라고 부른다. 물을 사 먹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상상도 못한 시절이 있었는데 지금은 생수를 사먹는 것이 대중화되었듯 이제 '혼 밥'은 현대인을 상징하는 특징으로 진화를 이루었다.

예전에는 혼 밥 손님을 식당에서 반기지 않았다. 여러 명이 들어와야 매상이 오르는데 여러 사람이 앉을 식탁을 혼자 차지하고 있으니 눈치가 보이고 거기에 괜히 주위 사람들에게 신경이 쓰인다. 친구도 없고 같이 밥 먹을 사람도 없는 혼자 외롭게 앉아 꾸역꾸역 밥을 넘기는 모습은 보는 이로 하여금 불쌍하게 느낄 정도의 시선을 받는다. 그러나 지금은 어느 식당을 가도 혼자를 위한 자리가 있다. 칸막이가 설치된 다닥다닥 벌집처럼 생긴 일인용 좌석은 남들 눈에 뜨이지 않는 혼자만의 식탁에서 텔레비전을 보거나 친구나 동료 대신에 휴대폰과 손가락으로 대화하면서 밥을 먹는다. 거기에 더하여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두려움으로 꼭 필요치 않은 만남은 자제를 하게 되면서 인간이 인간을 멀리하는 환경이 더욱 가속화 되었다. 누가 코로나 바이러스를 지니고 있는지 알 수 없기에 가까이 있는 인간 자체가 코로나 폭탄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으로 사람 만나기가 여간 조심스럽지 않다. 어쩌면 혼자가 오히려 안전하고 편한 것이다. 결국 사람과 사람 사이가 멀리 떨어져 있는 왕래가 없는 섬처럼 되어버렸다.

얼마 전 부모님이 심하게 아프셨다. 두 분 다 이미 팔십을 넘긴 연세에 수술도 몇 번이나 하셨고 건강이 좋지 않으시다. 팔에 마비가 와서 아버지가 병원에 두 달 입원하시고 퇴원하시더니 어머니가 뒤를 이어 한 달, 결국 한 분이 병원에 가실 때는 다른 한 분은 혼자 생활을 하신다. 항해 중 배가 난파당해 혼자 무인도 생활을 해야 했던 소설 속의 '로빈슨 크루소'는 아무도 살지 않는 외딴 섬에서 나이라도 젊어 버티었지 둘 중 하나가 혼자 있어야 할 상황에 놓인 부모님은 사람이 절박하다. 아니 사랑이 절박할 것이다. 두 분 다 혼자 지내야 했던 밤을 밤새도록 텔레비전을 켜 놓고 주무셨다고 하니 혼자라는 것이 자유로움이나 홀가분함이 아닌 엄청난 공포가 되었을 듯하다. 두 분이 함께 계신 지금, 아침에 일어나 서로의 안부부터 챙긴다고 하는 부모님을 보면서 사람들과 부딪히면서 살아온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는다. 수 천 수 만 개가 넘는 인연 중 하나의 끈이 이어져 친구를 만들고 연인을 만나고 가족이 이루고 이웃이 되어 공동체 안에서 때론 기뻐하고 슬퍼하고 티격태격하기도 하며 삶의 희로애락을 느껴왔던 사람 사는 세상은 서로 위안과 격려를 주고받을 수 있는 소통의 길을 더 절실하게 요구하기 마련이다. 인생은 빈손으로 태어나 빈손으로 간다. 좋은 집에 살고 높은 지위를 갖고 모든 것을 누려도 결국에는 가져갈 것이 없이 버릴 것만 남는다. 무덤 속에 들어갈 때에 어차피 혼자가 되는 삶인데 그것도 모자라 살아 있는 시간에도 사람과 사람 사이를 애써 외면하는 세상이 되어가고 있다. 군중 속에 있지만 외로운 섬에 갇힌 각각의 '로빈슨 크루소'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참으로 오랜만의 여행이다. 코로나 19의 소용돌이 속에 아주 특별한 용무가 아니면 여행은커녕 외출조차 자제해왔다. 금요일 오후, 햇살이 너무 좋아 창으로만 햇살만을 받기엔 너무 아까운 날 이 번 주말에는 기필코 여행을 떠나기로 마음먹는다. 행선지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바다가 있는 곳, 그 중에서도 우리나라에서 섬이 가장 많은 바로 통영이다. 통영의 바다는 40여개의 유인도와 500여개의 무인도로 유명하며 한국의 나폴리라 불리는 곳이기도 하다. 또한, 뛰어난 아름다움으로 한려수도라는 명칭을 가진 것 이외에도 성웅 이순신 장군의 애국정신, 아름다운 섬들의 절경, 해산물을 포함한 세상 최고의 음식 문화 등 여행의 3대 조건을 갖춘 천혜의 아름다움을 가진 곳이다. 이 번에는 몇 년 전 여름에 갔었던 통영을 대표하는 섬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비진도이다. 비진도 해수욕장을 거닐며 바다 전경을 꼭 다시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외항 에서 내항마을로 이어지는 해수욕장의 길은 대한민국에서 최고 일품이다. 파란색의 에머럴드가 햇빛을 받아 반짝거리고 해수욕장과 돌이 가득한 해변은 그야말로 때 묻지 않은 순수한 자연을 자랑하고 있다. 


미인도 전망대를 가기 위해 천천히 걸음을 옮긴다. 회사에서처럼 일에 쫓기지 않고 도시에서처럼 분주한 발자국 소리도 없다. 지금 내 눈 앞에는 푸르른 쪽빛 바다와 초록의 세상, 너무 높아서 가늠할 수 없는 하늘만 있을 뿐 아마 파라다이스가 실제로 있다면 이곳이 아닐까라는 생각뿐이다. 중간에 망부석 전망대에서 한숨 돌린 것을 합쳐서 한 시간 정도 걸으니 미인도 해발 299m의 미인도 전망대가 나타난다. 정상은 선유봉 이지만 정상 못지않게 풍경이 아름답다. 외항과 내항 사이의 바다가 바라다 보이고 난 바로 바다 멍에 빠져든다. 나를 위한 멍의 시간은 얼마든지 있다. 그 멍은 게으름이 아닌 나를 살리는 시간이다. 가끔은 지칠 대로 지친 우리의 가슴에 멍을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 어떤 멍이라도 좋다. 우린 멍이 필요한 세상에 살고 있으니까. 내가 행복해야 가족이 행복하고 회사도 행복하다. 나에게 꼭 필요한 멍을 찾아 쉼을 통해 일상을 찾는 것이 진정한 ‘힐링’이 아닐까. 삶은 뒤돌아보면 휙 지나가 버린 바람과도 같다. 고개를 돌리면 저만치 멀어져간 찰나들의 집합체, 스스로에게 물어보라. 내게 그동안 진정한 멍이 있었는지 없었는지를 말이다. 


공기가 참 좋다. 바람이 나무를 흔들면 연하고 진한 초록이 살랑살랑 바람을 타고 그 사이로 비추는 햇살을 받아 반짝거리는 모습이 운치를 더한다. 햇살로 온몸을 샤워하듯 따뜻함이 몸을 감싸니 행복해진다. 햇살은 사람의 마음을 만져주는 효과가 있는 듯하다. 하늘을 본다. 거울 같은 맑음, 청명한 하늘 위로 휴일의 조각조각 시간들이 새 털 구름을 타고 흘러가는 모습을 보면서 안락함이 주는 시간 위에 나를 맡긴다. 구름을 안는 상상을 하며 눈을 감는다. 잠시 후 나는 모래사장에 누워 두 팔을 벌리고 누워있다. 몸을 뒤척일 때마다 비릿한 바다 향기가 폴 폴 솟는다. 나는 하늘과 바다 사이를 새처럼 날아다니며 향연을 즐기다 어느 순간 부드럽고 봄날의 어느 한 곳에 내려앉아 떨어진 꽃잎과 소곤소곤 이야기를 나눈다. 햇살, 바람과 함께 한참 수다를 떨다가 어디서부터 인지 모르게 이야기의 꼬리를 놓치고 스르르 잠에 빠져든다. 하루가 다르게 푸르러지는 바다를 거닐며 분주한 일상에서 벗어나 잠시라도 마음의 여백을 찾기 위해서 근육통 같은 삶의 고단함을 일부러 내려놓고 계절이 주는 한가로움에 빠져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다. 오늘이 지나자마자 바로 내일로 들어가야 하는 삶을 사는 시대, 문이 열리면 승객들이 우수수 쏟아져 나오는 출근길의 무표정한 지하철 출입문 같은 삶에 밀리지 않고 가끔은 의도적으로 느림에 빠져볼 수 있는 여유를 가질 수 있다면 딱딱한 마음도 조금은 더 부드러워질 수 있을 것이다. 


누구나 살다 보면 불현듯 여행을 떠나고 싶은 날이 있다. 조금은 가벼워지고 싶은 마음, 반복 되는 삶의 고착은 답답함을 동반하고 탈출구가 필요할 때 이렇게 좋은 날을 핑계 삼아 짜여 진 틀을 찌그러뜨리고 무작정 떠나고 싶은 마음에 더해 누군가 편안한 상대가 곁에 있어도 좋겠다. 행복한 시간은 늘 아쉬움을 남기듯 내가 살아왔던 삶의 궤적도 늘 미련을 남긴다. 모든 것이 자연의 이치이니 삶과 죽음, 계절의 순환 이런 모든 것들이 생성과 소멸의 당연한 자연스러움일 것이다. 늘 나와 함께 있는 기쁨과 슬픔, 즐거움과 분노, 희망과 절망 모든 것 들은 흐르는 것이다. 봄이 오고 여름, 가을, 겨울을 지나 또 봄이 오듯이 우리 삶의 날씨 또한 계속 가고 올 것이다. 날마다 구름이 낀 날씨, 비 오는 마음이어서는 삶이 얼마나 우중충할까. 세상은 넓디넓은 바다와 같고 우리 개개인은 각각의 섬이다. 그 홀로 떨어져 있는 섬과 세상을 연결해주는 것이 다리인데 세상 모두가 이해하고 다가가려는 마음으로 서로를 소통 한다면 코로나 19같이 우리를 위협하는 거친 풍랑과 해일도 거뜬히 이겨내고 비진도의 외항과 내항을 잇는 길처럼 아름다운 화합의 세상을 만들 것임을 확신한다. 비진도, 이 평화의 섬에서 세상의 때로 덥힌 메마른 내 가슴을 관용과 포용, 사랑의 마음으로 채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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