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병식의 사랑 에세이 21

수필, 소설

민병식의 사랑 에세이 21

제임스 0 212

2022 제2회 신정문학상 수필 부문 최우수상 수상작

[에세이] 마음의 불씨
민병식
 
누구나 꼭 간직하고 싶은 기억이 있다. 이를테면 첫 사랑, 대학 합격, 취업이 되었을 때, 연인이 생겼을 때 등 좋은 일 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반면에 두 번 다시 생각하고 싶지 않은 기억도 있을 텐데이 경우는 대부분 좋지 않은 경험이겠다. 그러나 좋든 싫든 모두가끈처럼 이어져있는 자기 삶의 흔적들이다.
 
'레테'라는 단어를 생각한다. 그리스 신화속의 망각의 여신이자 강이다. 망자가 저승의신 하데스가 지배하는 명계로 가면서 건너야 하는 다섯 개의 강 중 하나, 그 중 레테의 강은 망각의 강이라고 불린다. 망자는 명계로 가면서 레테의 강물을 한 모금 마시게 되는데, 강물을 마신 망자는 과거의 모든 기억을 지우고 전생의 번뇌를 잊게 된다고 한다. 


누구의 삶일지라도 망각의 강을 지날 수 밖에 없다. 모든 기억을 다 지우고 떠날 생각을 하면 인생은 한 편의 드라마같은 꿈이 아닐까 생각하게 되는데 망각의 강을 건너면서 이승의 기억을 지우지못하는 망자들이 있단다. 그렇다. 어찌 지우고 싶은 기억만 있을까. 지우고 싶지 않은 기억이 분명히 있을 터 인연의 끈, 미련이라고 단정짓기는 어려운 그 무엇이다. 사랑했던 연인일 수도 있고 가족일 수도 있고 사무친 아픔일 수도 있다. 누구라도 불행했던 기억은잊고 싶겠지만 행복했던 기억은 결코 잊고 싶지 않으니 망각의 강물을 앞 에 두고 수많은 갈등을 느끼고 주저할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현대의 삶은 헤아릴 수 없는 시절인연이 거미줄처럼  얽혀
있어서 레테의 강물을 마시지 않아도  기억을 재생하지 못한 정도로 바쁘다. 변화무쌍한 일들이 고속도로에서 자동차 달리듯 쌩쌩 지나가는데 어찌 일일이 기억을 할 수 있을까. 끊임없는 희로
애락으로 점철된 순간 순간은 죽어도 잊고 싶지 않을 정도의 기억조차도 잊게 만드는 바쁨과 급함의 시대를 통과한다. 더군다나 인간 중심의  휴머니즘은 점점 퇴색되어 가고 살기에 바쁜 나머지 나룻배를 타고 천천히 레테의 강을 건너며 잊기 싫은 것,  잊고 싶은 것을 구분하고 고민하는 것은 사치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중요한 것은 세상을 떠나며 떠올릴 좋은 기억, 나쁜 기억이 아닐 것이다. 코로나 19시대를 살아가는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마음일 듯하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닫기’를 누르기 전 누군가 급하게 달려오는 사람을 위해 몇 초간  기다려 주는 배려, 누가 보지 않아도 페트병 상표를 깨끗이 떼어내어 분리수거하는 양심, 좌우에서 달려오는 차가 보이지 않아도 파란 불이 켜질 때 건너는 질서, 내가 많이 없어도 조금을 떼어 나누고자하는 나눔의 마음이다. 순수의 마음을 지니고 살아가는 것,  누군가 어렵고 힘들 때 안쓰러워하고 도우려는 마음, 함께 살아가려고 하는 공동체의 마음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생각한다. 
 
언젠가 레테의 강을 지날 때 과거의 기억을 모두 지워 내 삶에 대한 기억을 아예 못한다 할지라도 내가 떠난 후에 이승을 살아가는 누군가가 나를 따뜻하게 기억한다면 세상에 온기를 남겼다는 그것 하나로 내 삶은 가치가 있지 않을까. 아궁이에 불을 지필 때 처음부터 불이 활활 타오르지는 않는다. 작은 불씨 하나로 시작해 후후 불면서 부채질을 하여 불을 살리고 그 불이 타올라 구들장을 데우듯 우리의 마음 불씨 하나 하나가 모여 코로나 19로 인해  더 춥게 살아가는 어려운 이들에게 작은 온기라도 되기를 바라는 겨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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