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완식 연재 詩소설 - 달맞이꽃(20)

수필, 소설

정완식 연재 詩소설 - 달맞이꽃(20)

방아 1 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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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민현숙과의 만남

쏟아지는 별

꿈틀대는 바다

별이 다 쏟아져 내린 뒤

하늘은 바다가 되었다

어디가 끝이고

어디가 시작인지

정처 없이 흐르는 마음이

향하는 곳은 너인데

너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고

침전하는 별들조차

말없이 어둠이 되었다

- 침전 -

민현숙과 만나기로 한 곳은 강남의 고속버스터미널과 화수가 입원해 있는 종합병원의 중간쯤에 있었다.

수연은 버스에서 내려 7, 8분 정도를 걸어 약속 장소에 도착하기까지 참으로 많은 생각을 했다.

부산에서 화수와 헤어진 뒤  3주 동안 화수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화수가 병원에 입원할 정도로 아팠던 이유가 무엇인지?

화수의 누나, 민현숙은 자신에게 어떤 도움을 요청하려고 하는 건지?

오늘 화수를 만나야 할지, 아니면 민현숙만 만나고 다시 부산으로 돌아가야 할지?

화수를 만나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별의별 생각을 하는 동안 수연은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제법 규모가 큰 쇼핑몰 안에 있는 퓨전 중화요리 레스토랑이었다.

수연은 레스토랑 안으로 들어가 예약 시간과 예약자의 이름을 대고 안내를 받아 민현숙이 기다리고 있는 자리로 갔다.

아직 이른 점심 식사시간이라 그런지 다른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다.

스탠드형 칸막이가 서 있어서 입구에서는 보이지 않았지만 안내해주는 종업원을 따라가니 거기에는 수연이 생각했던 것보다는 훨씬 젊어 보이는 여성 한 명이 검정 계통의 원피스를 입고 바른 자세로 앉아있다가 수연이 다가오자, 벌떡 일어나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던 친한 친구라도 만난 것처럼 다가와서 수연의 손을 맞잡으며 인사를 했다.

"어서 와요. 수연씨! 수연씨, 맞죠?

내가 상상했던 수연씨 모습이랑 너무 비슷해서 금방 알아볼 수 있을 것 같아요. 먼길 오느라고 고생했죠? 와줘서 고마워요!"

민현숙은 수연이 채 대답을 하기도 전에 반가워하는 그녀의 표정을 얼굴에 그대로 드러내며 수연에게 몇 마디 말을 쉬지도 않고 했다.

". 언니! 서수연이라고 합니다.

언니에게 이런 식으로 인사드리게 되어서 미안하기만 한데, 언니가 이토록 반갑고 기쁘게 맞아주셔서 정말 고마워요."

"우리 앉아서 얘기해요. 이쪽으로 앉아요.

그리고 여기 오느라 아침 일찍부터 서두르고 아침도 제대로 못 먹을 것 같아서 일부러 여기 식사할 수 있는 곳에서 보자고 했는데, 우리 우선 식사 주문부터 해요."

민현숙은 수연에게 자리를 권하며 자신은 수연의 맞은편 의자로 가 앉으며 메뉴판을 집어 수연에게 건네주었다.

"내가 미리 좀 알아봤는데 여기 이곳의 런치 세트가 가격도 비싸지 않고 양도 적당하고 먹을 만 하다니까 한 번 살펴보세요."

민현숙은 수연에게 약속 장소를 선정해서 알려주기 위하여 부산에서 오는 시간을 고려하고 식사까지 감안해 장소를 잡고, 또 메뉴까지도 미리 알아본 모양이었다.

수연은 그런 민현숙을 꼼꼼하고 배려심이 많은 화수와 많이 닮았다고 느꼈다.

"그게 좋을 것 같아요. 그럼 이 세트 메뉴로 주문할게요."

민현숙이 동의하자 수연은 벨을 눌러 종업원을 호출하고 음식을 주문했다.

그런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묘한 표정을 짓던 민현숙은 종업원이 돌아간 뒤 수연에게 대뜸 물었다.

"혹시 우리 화수가 수연씨에게 수연씨가 누군가와 닮은 것 같다는 얘기를 한 적이 있었나요?"

"?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수연이 영문을 몰라 민현숙에게 재차 질문하자 민현숙이 다시 같은 질문을 했다.

"아녜요. 화수씨가 그런 얘기를 한 적은 없었던 것 같은데...

제가 언니가 아는 누군가를 많이 닮았나요?"

"나도 딱히 누구라고 콕 집어 얘기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수연씨를 보고 있으니 오래전, 그러니까 내가 고등학생이고 화수가 초등학교에 갓 입학했을 때 교통사고로 돌아가신 우리 엄마가 연상돼서..."

"! ..."

수연은 민현숙의 얘기를 듣고 묘한 기분을 느꼈지만, 딱히 더 이상 할 말이 없었고, 돌아가셨다는 화수 엄마에 대한 예라도 갖추듯 앉은 자세를 바로 했다.

두 사람 사이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지난번 전화 통화할 때도 그랬지만, 우리 화수가 왜 수연씨를 그토록 좋아했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아요.

수연씨는 태도가 바르고 표정이나 목소리도 밝고 참 예뻐요."

"아니에요. 저도 제가 그렇게 예쁜 얼굴이 아니란 것은 알아요. 언니가 이쁘게 봐주시니까 그렇죠.

제가 보기엔 언니도 그렇고 화수씨도 그렇고 오히려 두 분이 정도 많으시고 예쁘시고 잘생겼어요."

"그런가요? 그러고 보니 서로가 칭찬 일색인 것을 보면 민망하기는 하지만, 예의가 있다는 말은 맞는 것 같고, 좀 구식 표현이긴 하지만 우리 모두 선남선녀가 맞는  것으로 치죠. . 호호."

". 맞아요. 호호호."

언제 둘 사이에 침묵이 있었냐는 듯이 민현숙과 수연은 서로를 마주 보며 유쾌하게 웃었고, 그러는 사이 종업원이 다가와서 에피타이저 메뉴로 나오는 냉채를 두 사람의 앞에 내려놓고 갔다.

"점심시간이 이르긴 하지만, 아침 식사도 제대로 못 해서 시장할 테니 우선 식사부터 해요."

". 언니도 같이 드세요.

, 그리고 나이도 한참 어린데 제게 자꾸 존대하시니 제가 불편해요.

그냥 편하게 말씀하셔도 되어요."

"그래도 될까요?

수연씨가 불편하다니 그럼, 내가 편한 대로 얘기할게요."

"."

두 사람은 마치 오래된 사이인 듯 다정스레 말을 주고받으며 식사를 했고, 런치 세트의 마지막 코스인 후식 음료가 나오자 본격적인 본론 얘기를 해야 할 때가 되었다는 것을 느끼며 두 사람은 다시 조금씩 긴장하고 있었다.

"수연씨가 바쁜 시간을 틈내 이렇게 멀리 나를 만나러 온 것은 나랑 식사하며 수다를 떨려고 온 것은 아닐 텐데, 내가 너무 말이 많았지?

내가 수연씨를 보니 좋기도 하고, 수연씨에게 관심이 많은 만큼 궁금한 것도 많고 그래서 그런 거니 이해해 줘.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다 이렇게 궁금한 게 많아지지는 않을 텐데, 나는 왜 그런지 모든 게 다 궁금하고 알고 싶은 것도 많고 그래.

특히 수연씨에 관해서는 더."

"아니에요. 괜찮아요.

그만큼 언니가 정이 많으셔서 그러신 거고, 제게 살갑게 대해 주셔서 오히려 고마운 걸요."

"그렇게 얘기해줘서 고마워.

그럼, 지난번 전화 통화하면서 수연씨가 물었던, 화수의 현재 몸 상태에 대해서, 그리고 내가 수연씨에게 부탁하고 싶었던 것을 이야기할게요."

민현숙이 이제는 수연에게 화수에 관한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하려고 하자 수연은 허리를 꼿꼿이 세우며 자세를 바르게 했고, 민현숙은 긴장한 수연과는 달리 차분하고 낮은 목소리로 얘기를 꺼냈다.

"혹시 우리 화수가 수연씨한테 우리 엄마에 관해 얘기한 적이 있는지 모르겠는데, 먼저 그 얘기부터 시작해야 할 것 같아."

". 다른 것은 듣지 못했고 화수씨가 저와 대화를 하면서 지나가는 얘기로 어릴 적 어머님이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는 한 적이 있어요."

수연이 간단히 대답하자 민현숙은 화수가 어릴 적 엄마와 함께 등교하다가 자신으로 인해 엄마가 사고를 당했던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그간 화수가 어떻게 지내왔는지,

그리고 어릴 적 충격으로 인한 해리성 기억상실 증후군으로 엄마에 대한 기억을 대부분 잊고 있다가 이번에 수연과의 이별이 있고 난 후, 그 충격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에서인지 엄마의 사고 당시 기억을 떠올린 것 같고,

현재는 기력을 회복해서 생명에는 지장은 없지만, 민현숙 외에는 대화를 기피 하는 등 약간의 대인 기피증세를 보여 정신과 심리치료를 받기 위해 당분간 입원해 있는 거고, 다음 주에는 퇴원 예정이라는 것을 비교적 소상하게 수연에게 설명해 주었다.

수연은 민현숙의 설명을 조용히 듣고 있다가 화수 자신으로 인해 그의 엄마가 사고를 당했다는 얘기를 들을 때는 그녀도 눈물을 글썽였고,

수연 자신과의 이별 후에 화수가 충격을 너무 크게 받아 입원까지 했다는 얘기를 들을 때는 그 모든 것이 자신 때문인 것 같아서 죄책감에 어찌할 줄 몰라, 당황하기도 했다.

미지근하고

배고프고 쓰디쓴 사랑은

사랑이 아닌가

누구는 사랑이 달콤하다 하고

휴식과 같은 것이 사랑이라지만

내겐 왜 이다지 힘든 것인지

힘든 사랑은

정녕 사랑이 아닌가

- 힘든 사랑




1 Comments
l인디고l 2022.01.19 10:09  
오늘도 즐독하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