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병식의 사랑 에세이 15

수필, 소설

민병식의 사랑 에세이 15

제임스 0 2847

2021 제60회 대현이율곡제 전국백일장 산문 부문 차하 수상작 


[에세이] 그림자
민병식

아침에 할일이 있어 일찍 출근을 했는데 업무시간도 되지 않은 시간에 K에게서 전화가 왔다. 무슨 일인가 했더니 계단에서 굴러서 허리를 다쳤단다. 묻지도 않았는데 굳이 35,000원의 가격을 강조하며 허리보호대를 차고 방에 누워있단다.
 
“형님! 나 허리를 다쳐서 며칠 동안 꼼짝도 못하고 누워있어요! 계단 내려가다가 굴렀어요!”

“아니, 얼마 전에 넘어지면서 다리 다쳐서 깁스 했었는데 또 다치셨어요? 술 좀 그만 먹고 다니세요. 그리고 좀 제게 형님이라고 하지 좀 마셔요.”

장애인이면서 알코올 중독인 그는 사회복지관련 일을 하는 친구의 소개를 받아 알게된 사람인데 언젠가 친구와 함께 만났을 때 다짜고짜 내게 차비 만원을 빌려달라고 하면서 특별한 인연이 
되었다. 그 후로도 나만 보면 꼭 차비를 달란다. 또 나보다 10살이나 많음에도 꼭 나를 형님이라 부른다. 기초생활수급자로 부둣가 허름한 골목 싸구려 3층 여인숙이 그의 보금자리이다. 아파서 매일 누워있기만 하고 못 움직인다고 하면서 막상 그의 집을 방문하면 거의 외출 중이다. 전화를 하면 어디서 나타나는지 번개같이 나타난다. 지난 번 집에 찾아가보니 진짜로 다리에 깁스를 하고 있었는데 아파서 죽겠다고 하면서 이발을 하러 다녀왔단다.
 
“조만간 찾아뵐테니 술 드시지 말고 집에 좀 계셔요”
 
“아파서 어디 나가지도 못해요 형님!”

믿어지지도 않는 늘 같은 답변을 듣고 전화를 끊었다.

며칠이 지났다.

“또 왜요? 며칠 전에 전화 했었잖아요. 어디가 또 아파요?”

“형님 나 아침에 만원 벌었어요. 식당에서 청소해주고 만원 벌었습니다.”
 
“허리가 아프다면서 무슨 아르바이트를 해요. 일어나지도 못한다더니 다 거짓말이네”

“ 아픈데 참고 했어요. 그리고 형님한테 보고하려고 전화 했어요”

“ 굳이 그것을 왜 저한테 보고를 하세요. 그런 것은 보고 안해도 되니 얼른 집으로 가서 쉬셔요!”

그는 잔뜩 신이 나 있었다. 매일같이 술로 사는데 누가 써주지도 않을 뿐더러 육체노동이나 힘든 일은 엄두도 못 내고 국가에서 지원받는 돈으로 연명하는 형편으로 스스로 돈을 벌어본 지가 아마 꽤 오래 전이지 싶었다.
 
“형님 언제 오십니까?”
“아! 진짜 ! 형님이라고 하지 말라니까요”

K는 자신이 정당하게 번 돈을 자랑하고 싶었던지, 만날 때 내게 가끔 도시락이며 사발면을 얻어 먹은 것이 미안해서인지 내가 가면 차 한잔이라도 대접하려고 했을지 모를 일이다. 대접한다고 해서 그의 어려운 형편을 아니 거절하겠지만 그래도 내 형편이 그 보다
는 나으니, 그나마 나는 먹고 살만하니까, 내가 가진 것 중 아주 
조금을 나누고 좋은 마음을  K가 배우면 될 것이다. K의 집으로 향했다. 진짜 일을 했는지 술에 취해 떠드는 것인지 확인을 하고 싶었다. 3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음산했다. 옛날 식 건물에 
간판은 여인숙이었으나 월세를 내는 방식의 달방으로  외관부터가너무 초췌하다. 집 앞에 도착하여 문을 두드리니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누구세요?”라고 하며 문을 열어준다. 허름한 집안 풍경, 언제 깔았는지 모를 이불과 요, 쾌쾌한 냄새가 코를 찌른다. 식사는 하였느냐고 물으니 아직 못 먹었다고 하여 근처 편의점에서 도시락과 음료수를 사왔다.

“굶지 말고 꼭 식사 챙겨 드세요, 청소도 좀 하시구요. 함께 식사하면 좋은데 다른 곳 가볼 때가 있어서 도시락 사왔어요. 술 드시지 마시구요, 또 병원에 입원하고 싶지 않으면요” 절대로 술 마시지 말라고 주의를 주고 단단히 약속받고는  돌아서는 순간 K의 목소리가 쩌렁 쩌렁 울린다.
 
“고맙습니다. 조심히 가세요!”

그래도 K는 형편이 그나마 나은 편이다. 기초생활수급자로 혜택을받고 있고, 추운 겨울 동안 버틸 곳이 있기 때문이다. 이마저도 형편이 되지 않는 사람 들은 전철역 주변, 광장, 공원, 도서관에, 심지어 산으로 올라가 토굴에서 지내는 노숙자로 생활한다. 이는 곧 범죄로 이어질 확률이 높다는 뜻이다. 어떤 사람도 처음부터 나쁜 사람은 없다. 어떤 이는 사업실패로, 어떤 이는 불의의 사고로 가정이 해체되고 하루 아침에 알거지가 되어 신용 불량자가 된 사람들도 있다. 정신적으로 피폐해져 어떤 의욕도 없이 술에 의지하여 하루하루 보내는 사람, 국가에서 제공하는 시설이 싫어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질병과 위험에 노출되어 건강상태가 좋지 않은 사람, 한때는 그들에게도 사랑하는 가족이 있었을 것이다. 휘황찬란한 도시의 밤, 커다란 빌딩 숲과 수없이 굴러가는 자동차, 번쩍거리는 네온사인 뒤에는 삶의 어두운 그림자가 있다. 갈수록 어려워지는 불경기 여파로 취약계층의 삶은 계속 열악해져가고 있는 즈음 우리의 역할이 무엇인지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본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란 무엇인가? 프랑스어로 '고귀한 신분' 이라는 노블레스와 '책임이 있다'는 오블리주가 합해진 이 말은 '높은 사회적 신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를 뜻한다고 하는데 바로 지도층으로서 보통 사람들보다 더 많은 의무를 지니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면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실천은 꼭 지도자 급만 가능한가, 실천에는 무엇이 필요할까, 생각해보면 제일 먼저 스스로가 감사의 조건이 많아져야하고 작은 것에 만족하고 고마워하는 중심이 있어야만 조금이라도 남에게 베풀 수 있는 마음이 생길 것이다. 내가 조금 더 손해 보겠다는 희생의 미덕은 감사의 마음에서 부터 출발하고 나보다 못한 사람에게 작고 따뜻한 마음을 전달하려는 조각들이 모여서 더불어 잘사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라고 본다면 콩 한 쪽을 나누더라도 진심이 있다면 그 누구도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을 실천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조선시대 최고의 학자이며 정치가이셨던 율곡 이이 선생께서는 황해도 관찰사로 부임하면서 한국적으로 가장 완성도가 높은 해주향약을 만들어  어려울 때 서로 돕는 환난상휼의 정신을 실천하셨다. 내가 이분과 인연을 맺게 된것도 사회적 약자 들에게 도움을 주고 그들이 필요할 때 곁에 있어주라는 뜻이 
아닐까 생각한다. 세상은 더불어 사는 세상이다. 비록 가진 것은 별로 없지만 가진 것에서 조금이라도 나누는 삶을 살라고 하는 뜻으로 생각하니 행복해진다. 

코로나 19로 요즘은 식당을 찾지 않고 회사에서 점심으로 도시락 을 시켜먹는다. 점심시간이 다 되어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날 때
따뜻한 밥과 국이 도착하는 순간의 반가움은 배고프지 않을 
때는 모를 것이다. 이 땅의 어려운사람 들에게, 힘들게 살고 있는
단 몇 사람이라도 내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사람이 있다면 그곳이 어디든 찾아가 웃음과 위로를 건네주는 행복 그림자의 역할을  힘 닿 곳까지 하겠다는 결심을 하며 돌아오는 차에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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