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완식 연재 詩소설 - 달맞이꽃(12)

수필, 소설

정완식 연재 詩소설 - 달맞이꽃(12)

방아 1 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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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세 번째 만남

 

 

"우와!

이렇게 큰 차를 운전하고 다니는 거여요?

찻길에서 멀리 지나다니는 이런 차를 본 것 같기는 한데, 이렇게 가까이에서 보니 엄청 커다랗게 느껴지네요. 운전하시기 힘들겠다."


수연이 그녀의 코앞에 떡 하니 서 있는 화수의 탁송 장비차를 보더니 대뜸 소리를 질렀다.


화수는 그녀의 하이톤 목소리가 생각보다 크다 싶어 주위를 눈치 보듯 두리번거렸지만, 태화강 둔치 공영주차장은 적지 않은 차들이 주차되어 있긴 했어도 사람들 모습은 보이지 않고 비교적 한산한 편이었다.


화수와 수연이 두 번째 만남을 가졌던 때가 지지난 주 목요일이었으니 헤어진 지 딱 보름만이었다.


이번에는 그 새를 참지 못하고 수연을 또 보고 싶은 화수가 수연에게 만나줄 수 있는지를 카톡으로 연락해 물어보았었다.


업무상으로는 화수가 울산에 올 일은 거의 없었다.


울산 출고센터에서 화성으로 올려보내야 할 신차들은 많으나 올려보낼 수 있는 장비 차량이 부족해서 가끔 울산에서 화성으로 지원요청을 하고, 화성 사무실에서 화성 물류센터 소속의 기사들에게 지원자 모집을 할 경우가 있긴 하였지만, 이제껏 화수는 지원을 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다.

수연을 볼 요량으로 본인이 자진해서 울산과 화성을 오가는 대형 장비차의 부족을 위해 자신이 지원해주겠다며 사무실에 자원했다.


그 지원 일이란 것이 금요일 자신에게 할당된 배차물량을 수도권 지정된 곳에 다 배송해주고 나서, 오후에 울산으로 내려가 금요일 야간이나 토요일 아침에 울산에 있는 출고사무실에 가서 배차를 받아 차를 상차하고, 다시 화성으로 올라와 하차해야 하는 일이었다.


다녀야 하는 길도 장거리일 뿐만 아니라, 화수가 운전하는 차는 대형 장비차가 아닌, 소형 장비차여서 울산까지 왔다 갔다 왕복을 하다 보면, 기름값에다가 톨게이트 통행료, 그리고 숙식비까지 합치면 받게 될 탁송료보다 더 많은 지출을 해야 해서 오히려 더 손해였고,


장거리 운전이나 야간 운전으로 인해 몸만 축나고 피곤해서 다음 주의 업무에도 영향을 주는 일이었다.


그래서 부득이하게 울산에 지원을 나간다고 하더라도 숙식은 하지 않고, 밤새 야간 운전을 하고 올라와 새벽녘에 화성 물류센터에 도착해서 하차를 해주고, 남은 주말의 하루 반나절을 온전히 쉬어야 그나마 다음 주의 고된 일을 버텨낼 수 있고 금전적으로도 수지를 맞출 수가 있었다.


그러나 화수는 금전적인 수지 문제가 아닌지라 사무실에서 울산 출고센터로의 지원 기사를 모집한다는 오랜만의 공지에 수연에게 울산에서 볼 수 있는 지를 카톡으로 물어보았고, 수연에게서 가능하다는 회신을 받자 무작정 지원을 해서 울산으로 내려왔다.


화수가 울산 지리에 익숙하지도 않고, 시내 도심에는 커다란 장비차량을 주차해놓을 수 있는 곳이 많지 않아서 서로 찾기가 쉬운 태화강 둔치의 공영주차장에서 만나기로 한 것이다.


게다가 그 공영주차장 근처에는 구도심에 조성된 문화의 거리가 있어 젊은 청년들이 좋아할 만한 공연이나 전시가 이루어지기도 하고, 카페도 많아서 데이트코스로도 손색이 없었던 터라 수연이 추천을 해줬었다.


화수는 상의 유니폼을 벗고 차 안에 걸어두었던 자켓을 걸치고 나서, 반 발자국 정도를 앞장서서 걷고 있는 수연을 뒤따랐다.


수연은 오늘 화수를 만나기 위해 오후에 반차 휴가를 내었다.

그렇지않아도 수연은 지난 설날에 부모님 얼굴을 보고 나서, 한동안 보지 못한지라 주말을 이용해 울산에 들르려고 하던 참에 화수로부터 연락이 와서 화수도 보고 부모님도 찾아뵙고 할 수 있어서 만나자고 회신을 해주었었다.


옅은 핑크 원피스에다 버버리 코트를 걸치고 앞서가던 수연이 보폭을 줄이며 화수와 나란히 서게 되자, 수연이 질문을 건넸다.


"울산은 처음이라고 그랬나요?"


". 울산은 딱히 아는 사람도 없었고 올 일도 없어서...,

저희 센터에서 아주 가끔, 울산으로의 지원 공고가 있었지만 제게는 왠지 낯선 도시여서 저는 지원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랬었군요. 그러면 지난번에는 화수씨가 수고해주었으니 오늘은 제가 울산 토박이로서, 확실하게 화수씨를 안내하겠습니다.

어디로 모실까요?

, 참 화수씨가 아는 곳이 없다고 했지. 호호.

그럼 내가 알아서...

우선 이곳 거리를 함께 걸으며 전체적인 분위기를 한번 볼까요?

이렇게 팔짱도 끼고..."


수연은 자신의 말을 끝맺기도 전에 예고도 없이 갑자기 화수의 팔짱을 꼈고, 화수는 깜짝 놀라 수연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녀의 행동이 갑작스러워 놀라기는 했지만, 속으로 화수는 너무 기뻐 가슴이 콩닥거렸다.


"오늘 부산에서 이곳으로 오는 고속버스 안에서 생각했었죠.

이번 만남이 화수씨와의 세 번째 만남인데, 지난 두 번째 만남에서는 화수씨가 제게 장미꽃다발을 선물로 주었으니 난 이 팔짱을 선물로 주어야지 하고...,

우리 둘 다 대학을 졸업한 사회인이기도 하고, 세 번째 만남에서도 서로가 어색하게 떨어져 걷기보다는 나중에 우리 두 사람이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팔짱 정도는 괜찮겠다 하고 생각했어요.

어때요? 화수씨도 괜찮죠?"


수연이 화수에게 팔짱 선물의 이유와 정당성을 설명했지만, 화수로서는 수연이 어떻게 생각할까를 고민하며 아직 자신이 제안하지 못했던 일을 수연이 스스럼없이 해준 것이 고마웠고, 세 번째 만남에서 그녀와의 관계에 진전이 있었다는 것에 속으로 감사히 생각했다.


"근데 사실은 이건 제게 주는 선물이기도 해요.

저 역시 처음으로 아빠가 아닌, 남자에게 하는 팔짱이니까...

다른 커플들이 팔짱을 끼고 나란히 걷는 것을 보면서 제가 내심 부러워했었나 봐요. 호호"


수연이 자신을 바라보는 화수가 어색해하지 않도록 고개를 돌려 마주 바라보며 유쾌하게 웃었다.



타인과 타인의

만남을 이어주는 것

낯섬과 어색함의

관계를 깨뜨려주는 것


너와 나 사이의

빈 공간을 채워주는 것

서로 다른 시선을 묶어

같은 곳을 바라보게 해주는 것


서로의 체온으로

마음까지도 연결해주는 것


- 팔짱 -

 

 

거리는 늦은 오후랄까, 아직 이른 저녁 시간인데도 불구하고 <불금>을 보내려는 젊은 사람들로 제법 북적거렸다.


길거리 버스킹을 준비하고 있는 한 밴드 주위에는 시작도 전에 십여 명의 사람들이 둘러서 있었고, 카페거리에는 태화강에서 불어오는 강바람으로 인해 시원하다기보다는 아직 차가운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창밖의 야외 데크까지 사람들이 나와서 앉아있기도 했다.


화수는 자신의 팔짱을 끼고 옆에서 나란히 걷고 있는 수연과 이 길이 끝나는 곳까지 하염없이 걷고 싶었지만, 자신을 만나려고 일부러 오후 반차 휴가를 내서 번거롭게 고속버스를 타고 부산에서 울산까지 오느라 수고해준 수연이 피곤할 것 같아, 어디 들어가 쉴만한 곳을 눈대중으로 탐색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저녁 식사를 하기에는 아직 이른 시간이라 즐비하게 들어선 식당은 그냥 지나치고, 이어 나타난 카페 골목에 있는 한 카페를 골라 그곳에서 우선 따뜻한 차를 한 잔씩 마시며 앉아서 쉬는 게 어떤지를 수연에게 물었다.


"어머! 여기는 제 관리구역이라 오늘은 제가 모신다고 했잖아요.

제가 아는 곳이 있으니 조금만 더 저를 믿고 따라오세요.

지금 우리 모습이 남들 보기에는 제가 화수씨를 납치해서 어딘가로 끌고 가는 것 같긴 하지만, 일단 믿어보세요."


수연이 팔짱을 낀 자신의 손에 힘을 주며 화수의 팔을 꽉 붙들어 끄는 시늉을 했다.

그러더니 한참을 그 상태로 더 걷다가 어느 한 골목길로 접어들며 말했다.


"바로 여기예요. 제가 화수씨를 데려오고 싶었던 곳이."



내게 말을 거는 이 바람이

어디에서 불어오는지

당신은 아시나요?


친구들은 다 떠나고

혼자 남은 샛별과 소근대는

갈대 이야기를 싣고 온 강바람일까요?


떠나온 남녘 산천 꽃소식을

자랑하고파 집 나선

민들레 이야기를 담은 산들바람일까요?


바람에 부딪히며

전율하는 온몸이

바로 당신이라고 말하네요


차갑고 매서운 바람이어도

당신을 거쳐 내게 닿는 이 바람에

따스한 온기가 담겼어요


당신은 참 따뜻한 사람이군요


- 바람이 불어오는 곳 -




1 Comments
l인디고l 2021.10.28 09:16  
시, 소설 모두 재미있게 읽고 갑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