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완식 연재 詩소설 - 달맞이꽃(11)

수필, 소설

정완식 연재 詩소설 - 달맞이꽃(11)

방아 1 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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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두 번째 이별

 

 

두 사람은 화수의 차를 세워둔 대학 정문 근처의 공용주차장으로 갔다.


"이 차가 출퇴근용으로 타고 다니는 제 애마입니다.

비록 경차이긴 하지만 날렵해서 어디든 가지 못하는 곳이 없는 제 소중한 발이죠.

그래서 제가 <소발이>라고 이름도 붙여주었어요."


"이름이 재밌네요.

대발이, 소발이 할 때 그 소발이인가요?"


"아니, 그런 느낌이 있긴 하지만 소중한 내 발이란 뜻으로..., 하하"


둘은 가볍게 웃으며 차에 올라탔다.


차는 주택과 상가 건물들이 즐비한 동네를 빠져나와 외곽순환로로 접어들고 다시 국도를 달리다 어느새 호수를 끼고 반 바퀴를 더 돌아 카페처럼 생긴 어느 한 레스토랑 앞에 멈춰 섰다.


"수연씨 마음에 들지는 모르겠지만, 이곳이 제가 인터넷을 검색해서, 예약해놓은 식당입니다.

하룻밤을 묵고 가면 시간적 여유가 좀 있을 텐데, 내일 출근을 하신다니 KTX 역사에서 멀지 않은 곳으로 정했습니다.

어차피 저녁 식사도 하셔야 할 듯하고, 그리고 식사 후에는 잠깐 바람도 쐬며 여기 호수 주위를 산책도 할 수 있어서..."


". 오면서 창밖으로 보고 왔는데, 호수 주변에 조경을 잘해놓아서 예쁜 것 같아요. 너무 마음에 들어요!"


화수는 예약해 둔 식당을 수연이 마음에 들어 하지 않으면 어쩌나 내심 걱정하고 있었는데, 다행히 수연도 마음에 들어 하는 것 같았다.


카페레스토랑은 3층으로 된 회색의 콘크리트 건물이었는데, 실내는 에폭시 공법으로 바닥은 매끈하게 처리한 대신에 벽과 천장은 거친 회색 콘크리트가 그대로 노출되게 인테리어를 해놓아 약간 모던하면서도 빈티지한 느낌을 주었다.


두 사람은 종업원의 안내를 받아 조금은 멀리 호수가 보이는 창가의 예약석으로 가서 마주 앉았다.


오후의 봄 햇살이 호수 위를 사선으로 비추고 잔바람에 살랑이는 호수는 노랗게 물들어가고 있고, 색 바랜 갈대밭이 바람에 출렁이며 마치 가을 들판의 황금 물결이 일렁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여기서 호수를 내려다보니 더 예쁘고 평화롭게 보여서 좋네요.

제가 사는 해운대의 바다와 이곳의 호수를 비교하기는 좀 그렇지만 주변 경관이 좀 정적靜的이어서 그런지, 확실히 마음이 차분해지는 것이 느껴져요."


". 수연씨 마음에 든다니 다행입니다.

제가 지금 거주하고 있는 곳 근처에도 여기 호수보다는 작지만 아담한 호수가 하나 있어서 저도 그곳을 산책하며 사색하는 것을 즐기고 있는데, 수연씨가 얘기한 것처럼 잔잔한 호수는 마음에 고요와 평화를 가져다주는 것 같습니다."


", 알아요.

화수씨가 카톡으로 보내주는 시에 자주 등장하는 그 호수 말이죠?"


". 맞아요... 하하"


두 사람은 다시 기분 좋게 웃으며 각자의 앞에 놓인 메뉴판을 집어 들어 메뉴를 고르고, 음료는 수연은 하우스 와인 중 화이트로 그리고 화수는 운전을 해야 해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 잔 주문했다.


그리고는 둘은 식사를 하며 오늘 있었던 컨퍼런스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첫 만남 이후 살아온 소소한 이야기를 묻고 답하며 서로의 생활과 생각을 조금씩 알아갔다.


그러는 사이 시간은 쏜살같이 흘러가고 어느덧 두 사람은 조금은 이른 저녁 식사를 마쳐가고 있었다.



잔인한 사월의 해 짧은 오후는

지구의 자전 속도에 맞추어

서산으로 달리고


갈대숲 속의 해오라기

젖은 햇살을 물질하는

호수에 밤이 내리면


헤어짐이 아쉬운 사람들은

시간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뜀박질을 포기하고


해잡이 자맥질하던 오리배가

흔들리는 물결이 잠들기를 기다리지만

먼저 침몰해버린 햇살에 갈 길 바쁜 낚시를 거둔다


- 해잡이 낚시 -

 

 

흘러가는 시간이 야속한 두 사람이 식사를 마치고 호수의 산책길로 들어섰을 때는 4월의 짧은 해는, 거의 서산에 닿을 듯했고, 땅거미가 길게 짙은 그림자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산책길은 호수 가장자리를 따라 3,4킬로미터 정도의 도보다리나 데크 둘레길을 만들어 놓았는데 둘이 나란히 걸어도 제법 넉넉하게 여유가 있을 만큼 넓어서, 걸으며 대화를 하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이렇게 걸으니 레스토랑 2층 통창으로 멀리 보이던 호수와는 또 다른 느낌을 주네요.

화수씨가 호수를 걸으며 써 보내준 시를 읽으며, 화수씨는 어떤 느낌으로 이 시를 썼을까 궁금하기도 했는데, 이제 조금은 알 것도 같아요.

저도 혼자서 해운대 해변을 자주 걷는 편인데 확실히 바닷가와 호숫가의 느낌이 다르네요.

혼자가 아니라 화수씨랑 같이 걸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 그리고 화수씨가 보내주는 카톡에 일일이 답을 해주지 못해서 미안해요.

화수씨의 정이 듬뿍 담긴 카톡 내용에 고맙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또 한편으론 아직 제 감정을 확실히 알 수 없어서 화수씨의 카톡 내용에 맞추어 회신하기 어려운 적도 많아서...

어찌 되었든, 화수씨가 보내주는 카톡에 좋은 느낌을 받았다는 것은 말씀드릴 수 있어요."


수연은 호숫길을 걸으며 그녀의 감정과 느낌을 그때그때 충실히 표현하며 그녀의 기분을 전달해 주었다.


"여기 호수 이름이 반윌호인데, 저는 여기에 오면서 줄곧 수연씨와 같이 해운대의 카페, 루프탑에서 보았던 반달을 생각했습니다.

해운대 앞바다에 떠있던, 시리도록 푸른 반달을 지금 여기서 보지는 못하지만, 수연씨와 같이 이 반월호를 걷고 있는 것이 꿈만 같습니다.

그때 보았던 반달이 상현 반월이었으니까, 점차 커지고 밝아져서 보름달이 되는 것처럼 우리 두 사람 사이도 그렇게 보름달처럼 둥글고 큰 사랑을 하게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화수의 이야기 속에서 툭 튀어나온, <사랑>이란 표현이 수연에게 조금은 낯설고 어색하게 들렸지만, 수연은 화수의 감정에 끼어들거나 방해하고 싶지 않아서 대꾸는 하지 않고 그냥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걷는 중간중간에 장식 표지판처럼 <같이 걸어요>, <변치말자> 등의 글귀를 새겨서 걸어놓은 곳도 있어 이 길이 커플들의 산책길로 많이 이용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 이곳이 반월호라는 곳이군요.

듣고 보니 뭔가 묘한 기분이 들긴 하네요."


둘레길의 중간 정도에 다다르니 호수를 반으로 가로지르는 데크 갈림길이 나오고 호수를 건너 멀리 KTX 남행열차가 빠른 속도로 달리고 있는 풍경도 보였다.


"수연씨! 여기 호수를 반으로 가로질러 가는 길과 한바퀴를 다 도는 길이 있는데 어디로 갈까요?

다리가 아프시다거나 피곤하시면 여기 빠른 길로 가도 되는데..."


수연의 부산행 열차 탑승시간이 광명역을 기준으로 830분이어서 그때까지는 아직 시간이 여유가 있었지만, 수연이  굽이 낮은 구두를 신고 있긴 했지만 화수는 혹시 모를 수연의 상태를 염려해 그녀의 의견을 물었다.


"선택의 기로에 서면 늘 고민이 돼요.

이 길도 가고 싶고, 저 길도 가고 싶고...,

그렇지 않으면 이 길도 가고 싶지 않고저 길도 가고 싶지 않고...,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이란 시처럼 우리 삶은 늘 선택을 해야 하는 순간에 직면하는데, 저는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쉽지 않거나 좀 더 먼 길을 선택한 것 같아요.

지금은 화수씨랑 좀 더 이 길을 걷고 싶으니 당연히 이쪽 길이겠죠? 호호."



노랗게 물든 숲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

(중략)

그리고는 다른 쪽 길을 택했다


가지 않은 길 못지않게 아름답고

어쩌면 더 나은 듯도 싶었다

(중략)


가지않은 길은 다른 날로 미루리라 생각했다


길은 하나로 이어지는 것이기에

다시 돌아오기 어려우리라 알고 있었지만


먼 먼 훗날 어디에선가

나는 한숨지으며 이야기할 것이다


숲속에 두 갈래 길이 있어

나는 사람이 덜 다닌 길을 선택했다고


그리고

그것이 내 인생을 이처럼 바꾸어 놓았다고


- 가지 않은 길 / 로버트 프로스트 -



수연이 지름길이 아닌 먼 길을 선택하며, 화수와 좀 더 같이 걷고 싶다는 말을 했다.


화수는 지난주 수연에게서 카톡 연락을 받고 나서, 데이트 코스와 식당 예약 등 꼼꼼히 시간 계획을 짜고 동선을 확인해보는 수고를 했었는데, 수연의 이 한 마디로 다 보상을 받은 것 같았다.


"감사합니다. 그렇게 얘기해 주셔서...,

KTX 탑승시간까지는 시간 여유가 있어서 좀 더 걸어도 괜찮을 것 같아요.

여기서 광명역까지는 그리 멀지 않으니 아직 한 시간 이상 이곳에 머물러도 되거든요."


"그렇군요. 그런데 화수씨는 여기에 자주 왔었나 봐요?

지난번 해운대에서 여자한테 대시한 경우는 제가 처음이라고 했으니, 데이트하러 여기에 와본 것 같지는 않고, 집이 여기서 가까울 것 같지도 않은데..."


", . 자주는 아니고 아주 오래전에, 이곳이 이렇게 공원과 산책길로 조성되기 전에 낚시를 좋아하던 친구와 와본 적은 있는데, 이렇게 바뀌고 나서는 사실은 지난 주말에 처음 와봤어요.

수연씨가 서울에 오는 길에 저를 만나주신다니 이런 영광이 또 없잖아요?

그래서 여기 식당도 예약하고 소요시간도 체크해 보려고..."


"역시 그랬었군요. 그렇게까지 수고를 해주셨다니 감동이어요. 고마워요."


두 사람은 다시 나란히 서서 데크길을 천천히 걸었다.


산책길의 중간중간에 전망대를 만들어 놓은 곳에서는 걸음을 멈춰 평화로운 호수풍경을 한참 동안 바라보기도 하고,

둘이 걷는 길 가까이 잉어나 숭어 같은 제법 큰 물고기가 떼를 지어 유유히 헤엄치며 청둥오리나 물오리와 신경전을 펼치는 연출을 할 때는, 저들에 잡아먹히지 않고 작은 물고기에서 용케 다 커버린 물고기들을 응원하기도 하고,

들고 있던 장미꽃다발에서 진홍의 꽃잎을 하나 따서 호수 위에 떨어뜨리고 호수의 잔물결을 따라 꽃잎이 밀려나는 걸 보며, 두 사람은 서로를 보고 웃기도 했다.  


그러는 사이 멀리 보이는 수리산을 제외하고는, 사방이 야트막한 산으로 둘러싸인 호수에 황혼의 일몰이 시작되고 있었다.

어느덧 이동할 시간이 된 것이다.


두 사람은 이제 막 아름다운 일몰이 시작되는 호수를 뒤로하고 아쉬움을 남긴 채 화수의 차를 타고 어둠이 깔리고 있는 국도를 따라 광명역으로 향했다.


8시가 갓 지난 비교적 이른 시간에 KTX 광명역에 도착한 두 사람은 차를 주차장에 주차한 다음, 역사 안으로 들어서 카페에서 음료도 한 잔씩 사고 천천히 열차가 들어올 플랫폼으로 계단을 따라 내려갔다.


언제 어느 곳에서든, 사람마다 시간의 속도에 대한 느낌의 차이는 있겠지만 시간은 멈추지 않고 흐른다.


시간에 맞추어 KTX 고속열차가 플랫폼으로 들어서고, 여지없이 두 사람에게도 이제 헤어져야 할 시간이 왔다.



뉘시기에 이렇게

나 몰래 내 마음속에 비집고 들어와

순수했던 마른 가슴에 불씨를 던졌나요


뉘시기에 이렇게

달 밝은 새벽 철렁 내려앉은

봄바람 같은 여린 가슴 적시나요


뉘시기에 이렇게

새벽녘 잠든 꿈을 깨트리듯

텅 빈 가슴 생채기만 내고 떠나시나요


뉘시기에 이렇게

꽃샘바람 같은 매정한 이별로

애달픈 가슴 시리게 하시나요


- 누구세요 -  




1 Comments
l인디고l 2021.10.21 13:26  
예쁜사랑 이루길 바랍니다~~즐독하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