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완식 연재 詩소설 - 달맞이꽃(10)

수필, 소설

정완식 연재 詩소설 - 달맞이꽃(10)

방아 1 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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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두 번째 만남



기다리고 기다리던 수연과의 두 번째 만남은 의외로, 수연과의 첫 만남과 이별이 있고 나서, 채 한 달이 되지 않아서 수연이 먼저 잠깐 만날 수 있는 시간이 되니 자신을 만나줄 수 있냐며 카톡으로 연락을 해오면서 이루어졌다.


국공립대학교 협의회 주관으로 서울의 한 국립대학교에서 요즘 이슈가 되고 있는 ESG를 주제로 컨퍼런스가 열리는데, 거기에 수연이 속한 학교에서도 직원이 참가해야 한다고 해서 수연이 직원대표로 참가한다는 것이었다.


당연히 화수가 수연의 만남 제안을 거절할 이유는 전혀 없었다.


수연으로부터 그런 내용의 카톡을 받기까지 화수는 거의 하루가 멀다며 수연에게 카톡을 보냈었다.


수연을 처음 보았을 때의 그의 느낌과 감정을 적어 보내기도 하고, 수연과의 작별 다음 날인 일요일 집으로 올라오기 전에 한 번 더 만나기로 약속을 했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해서 무척 후회했다는, 본인의 실수를 탓하는 내용을 적어 보내기도 하고,


수연의 모습을 잊지 않기 위해 매일 수연의 모습을 떠올리려 노력하고 있다는 등 화수의 수연에 대한 솔직한 마음을 숨김없이 적어 보내기도 했었다.


화수는 수연과의 약속에 늦지 않기 위해 다른 날보다 일찍 서둘러 일을 마치고, 자신의 원룸에 들러 정장으로 옷을 갈아입고 탁송 장비차량 대신, 출퇴근용 흰색 경차를 끌고 나와 꽃집에 들러 수연에게 선물로 줄 꽃다발도 산 다음 약속장소로 향했다.



네가 보고플 때면 언제나

난 네게로 간다


넌 보이지 않겠지만

넌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네가 있었던 곳

네가 앉았던 자리, 거기에


언제나 네가 있는

흔들리는 내 마음속으로 간다


- 네게로 간다 -


바둑판 모양의 정사각형 보도블록이 일렬종대로 정갈하게 깔린 캠퍼스 중앙로 인도에는 젊은 남녀의 학생들이 삼삼오오 떼를 지어 나오고 있었다.


화수와는 불과 몇 년의 나이 차이도 나지 않았지만, 그의 눈에는 한결같이 풋풋하고 생기가 넘치는 얼굴이었다.


화수는 그것이 학생과 직장인의 차이, 배우고 있는 자와 배움을 멈춘 자의 차이, 돈을 쓰는 자와 돈을 버는 자의 차이가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아마 저들도 얼마 지나지 않아 취업과 생활을 걱정해야 하고 연애와 결혼을 고민해야 하고 육아와 가정을 준비하며 각자의 많은 고난을 맞닥뜨리게 될 것이었다.


그리고 그들 중 누군가는 지금도 그런 고민을 하고 있을 터였다.


정도의 차이만이 있을 뿐 아마도 이 땅에 태어난 과거의 젊은이들도 그랬었고 미래의 젊은이들도 그럴 것이다.


아니, 이 땅이 아니라 이 세상 대부분의 나라에 있는 다른 젊은이들도 같은 욕심, 같은 욕구, 같은 가치를 추구하는 한, 아마 똑같은 고민을 하며 살고 있을 것이다.


화수가 그런 상념에 빠져있는 사이 어느새 젊은 남녀학생들 틈에서 화수가 그토록 그려오던 수연의 모습이 거짓말처럼 저 멀리서부터 또렷이 보였다.


그녀와의 첫 만남이 있었던 다음 날부터 화수는 행여나 그녀의 모습을 잃어버릴까 염려해 마음속으로 수연의 모습을 그리고 또 그렸었다.


화수는 그가 초등학교에 막 입학했을 때 화수의 등굣길을 동행하다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신 그의 어머니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해 많이 괴로워했던 적이 있었는데, 혹시나 수연의 모습도 자신의 어머니 얼굴처럼 기억하지 못해 또 낭패를 겪으면 어쩌나 하는 우려를 했었다.


그러면서 자신의 잠재의식 속에 어떤 압박감 같은 것이 자신에게 남아있다는 것을 이번에 알았다.


유치원을 다닐 때 화수의 손을 잡고 등원했던 기억이나, 부모님과 화수의 누나, 그리고 화수까지 가족 전체가 같이 갔던 놀이동산에서의 어머니의 모습이 어렴풋이 기억날 듯하다가도 머릿속에서 지워지고, 다시 기억날 듯하다가도 사라져버려 결국은 기억해내지 못한 그의 어머니 얼굴은 가족 앨범 속에 남아있는 사진 몇 장 속의 얼굴로만 남아있었고,


이것은 화수에게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어머니를 기억하지 못하는 죄스러움이 같이 공존해서 어린 화수에게 마음의 상처 같은 것이 되었다.


그런데 그런 화수가 수연을 처음 보고 그녀의 모습에 강렬한 인상을 받고 그녀에게 빠져들었던 것은 화수 자신이 생각해도 신기하기도 하고, 이상하기도 하다고 생각했는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수연은 그토록 화수가 기억해내려 애썼던 그의 어머니 모습과 너무도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화수는 그런 생각을 하게 되자, 부산에서 올라와 그의 원룸으로 들어서자마자 책상 서랍에 간직해 두었던 어머니 사진을 꺼내어 보았었다.


화수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던 날, 입학 기념으로 찍은 사진이었다.


그러나 수연이 그의 어머니를 닮았다고 생각했던 것은 그만의 착각이었다.


그냥 전체적인 분위기만 비슷했을 뿐 수연은 화수의 옛날 어머니 사진 모습과는 달랐다.


그런데도 화수는 왠지 모르게 수연이 그의 어머니와 흡사한 모습이라고 계속 생각했다.



작은 날개를 가진 흰 나비

가냘프게 손 내민 개망초 위에서

나래를 접었다 폈다 수줍게 눈치 보다

마침내 가는 손가락 끝에 앉는다


금계국이 황금빛으로 유혹해도

외롭게 홀로 선 개망초에

저절로 시선을 빼앗기고

외로운 엄마는 늘 그 옆에 서 있다


그녀는 기억하지 못하는 얼굴로

스스로를 가두어놓고

나풀나풀 손 흔들며

작은 미소만 보내었다


자신의 외로움으로

자식의 그리움을 보듬어주려는

개망초는 홀로 있어도 둘이다


- 홀로 개망초 -


멀리서부터 화수의 눈에 들어왔던 수연이 차츰 화수의 눈동자 속으로 점점 크게 들어서고, 화수가 수연을 향해 손을 번쩍 들어 흔들자 수연은 밝은 미소와 함께 약간은 수줍은 얼굴을 하며 그녀를 기다리고 있는 화수의 앞으로 다가왔다.


그녀와의 두 번째 만남이었다.


"어머! 다른 데서 봤으면 화수씨를 못 알아볼 뻔했어요.

한 달 사이에 이렇게 멋있어져도 괜찮은 거예요?

하여튼 멋진 화수씨를 다시 만나서 반가워요!"


등산복 비슷한 복장에다 배낭까지 매고 있던 모습에서 멋진 진청색 슈트로 바뀐 모습으로 교문 앞에 서 있는 화수를 보고는 수연이 농반진반으로 반가운 마음을 전했다.


여전히 수연의 얼굴 표정은 밝았고, 음성은 맑았으며 몸짓에는 여유가 있어 보였다.


"반갑습니다! 수연씨도 더 아름다워졌는걸요.

여기 이 오월의 장미보다도 더."


화수가 들고 있던 장미꽃다발을 수연에게 내밀며 화답했다.


수연은 격식을 갖춘 컨퍼런스에 참석하는 다른 여느 사람들처럼 정장 차림이었는데, 미색 블라우스에 검정 투피스 정장을 입고 있어서 지난달 첫 만남때, 주말의 간편복 차림으로 가볍게 동네 카페에 노을과 달을 보러 나왔을 때와는 또 다른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어머!, 꽃을 다 살 줄도 아시고 화수씨한테 이런 면이 있을 줄 몰랐는데, 오늘 여러모로 화수씨의 새로운 모습을 보게 되네요.

이 장미꽃, 너무 예뻐요. 감사해요!"


높아진 톤의 목소리로 감사를 전하는 수연의 환한 얼굴이 장미꽃다발 위로 밝게 빛났다




1 Comments
l인디고l 2021.10.13 09:05  
짧은 미소를 짓게 합니다~재미있게 읽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