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금선 시인의 말하는 수필 22

수필, 소설

박금선 시인의 말하는 수필 22

소하 0 24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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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금선 사진 作



혼자 먹는 밥은 슬프다


              박금선


녹색 옷을 입은

간호사 서너 명이 바쁘게 몸을 움직인다


내 팔과 다리를 수술대에 묶였다


팔에

무언가 서서히 조여드는 느낌이 들더니 스르르 잠이 들었다


잠에서

깨어나니

가족들이 뺑 둘러서서 내 손을 잡았다 희미하게 보였다


귀신이

날 데리러 왔을까


내 몸은

비와 함께 공중으로 솟아오르더니 마당에 납작하게

사정없이 내동댕이 처졌다


긴 장마에

마당이 미끄러웠다

낡은 슬리퍼가 문제였다


입원을 해 다리에 쇠를 박았다

오늘 아침 의사가 말한다


"어머니 수술 잘 되었습니다

박아 둔 쇠는 1년 후에 빼내면

됩니다.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손이 뽀얀 박 속 같다


얼굴이

반지르르한 명주 고름 같은

담당 의사의 서울 말씨에 힘이 난다


"살았다 안심이다."


그런데

우리 집에  가짜배기  경상도 의사가  미간을 찌푸리며 퉁명스럽게 말한다


"하체보다 상체가 무거우니

넘어질 수 밖에,  살을 좀 빼든지 하소."


의사 면허증도 없는 사람이

의사보다 더 세게 말한다.


그 목소리 참 밉다


식사 왔습니다

상쾌한 목소리다


아침 7시면

어김없이 빨간 입술에

하얀 모자를 쓴 아주머니가 밥상을 들고 온다.


사자 머리를 하고 밥상머리에 앉는다


우리 방의 식구는

할머니와 나 두 명이다

할머니는 죽이고 난 밥이다


밥인지

모래인지 꾸역꾸역 입으로 간다

태생에 남기는 법은 없다


오늘도

할머니가 새댁, 하고 부른다


그런데 기분이 좋아진다

계속 들어도 듣기 좋다


새댁 아니라고

말 하고 싶지만 그대로 둔다


오래오래 새댁으로 남고 싶다


그렇지만 혼자 먹는 밥은

늘 슬프다


집에 가고 싶다

전화기 달력을 본다


손가락으로

퇴원 날짜를 세워 본다

하나둘 셋,



(2,000년 7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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