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병식의 사랑 에세이 13

수필, 소설

민병식의 사랑 에세이 13

제임스 0 2851

2021 제23회 교산허균문화제 온라인전국백일장 은상 수상작 


[에세이] 가로등
민병식

위 아랫니가 따닥 부딪힐 정도로 추운 계절이다. 한 겨울 속에 들어와 있음이 피부로 느껴지는 요즘, 원하지 않는 손님인 고뿔이 제멋대로 찾아오더니 아예 주인행세를 하며 나가지않는다. 최근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그런지 종일 우울할 때가 많다. 책상 위에는 그치지않는 업무, 그 외에도 잡다한 것 들, 뭐가 이리도 챙겨야할 것이 많은지, 이것 저것에 시달려 여기저기 관심을 가져달라는 내 몸의 부분 들까지, 집 안 대소사는 물론, 자녀문제, 가정경제, 사회생활 등 50의 나이를 넘어선 중년의 몸은 세월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는 느낌이다.

언젠가부터 무언가 계속 짜증이나고, 축 쳐진 어깨에 매달려있는 상실감 , 속에서 끓어오르는 알수없는 분노감이 나를 지배할 때가 있어서 심리적으로 지쳐있거나 우울감이 있다는 것을 스스로 느끼게 되었다. 문제는 나이를 먹어가면서 이런 날이 점점 잦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동안 누구보다도 열심히 살아왔는데, 이젠 매일 기계처럼 계속 맞물려 돌아가는 삶에 부대끼고 지치는 것인지..

혹자들은

''요즘같이 어려운 세상에 일할 수 있는 것을 고맙게 생각해''

라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몸과 마음은 춥고, 일에는 계속 치이고 좀 쉬고도 싶은데
이러다가는 끊임없이 쉬지 않고 돌아가던 모터가 열을 받아 나사가 하나 튕겨나가 빵 터지면서 순간 작동을 멈출 것같은 기분이 들어 착잡해지기도 한다. 이런 마음을 누구에게 보여줄런지 난감할때도 있고, 가슴에 뭉쳐있는 덩어리를 풀어 해치려고 하소연을 하고 싶은데 주위에 누군가 받아줄 사람이 필요한데, 어찌보면 오갈 때 없는 심리적 방황상태일지도, 정신분석학자들이 흔히 일컫는 남성호르몬의 감소로인한 여성성의 증가인지도 모르겠다.

나를 비롯한 이 시대의 중년 남성은 여러 가지의 위기에 몰려 있어 보인다. 가장으로써의 책임감위에 덧붙여진 아버지로써의 역할, 남편으로써의 책무, 회사에서의 압박 등에 맞딱뜨리다 어느날 뒤를 돌아보면 '나'는 온데간데 없다. 더군다나 가부장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으면 젊은 감각에 따라가지 못하는 쉰 세대 취급을 받는다. 우리 아버지들의 삶을 보면서 교보재로 삼아 살아왔던 경직된 모습을 신속히 바꾸어야 가정 안팎에서 살아남을 수 있고, 시대는 초침처럼 변화해가는데 거기에 발맞추어 따라가기가 어렵다. 그렇기에 늘 평정심을 유지하며 자신의 내면을 다독이면서 살아가기란 말처럼 간단하고 쉬운일이 아니다.

깊어가는 밤, 한 잔의 차와 함께 차분한 마음으로 사유의 시간을 가져본다. 지금까지 앞만보고 살아온 인생, 돌이켜보면 인생은 잠시 들렸다 떠나는 몇 개의 간이역같다라는 생각을 해본다. 뒤돌아 보면, 금방 출발했는데 언제 여기까지왔는지 싶게 벌써 여러 개의 간이역을 지났고, 현실에 쫒기어 시간과 물질의 허상에 얽매이지 않고 조금은 천천히 가고싶은데, 웃음을 잃지 않고 여유롭게 가고픈데, 차창 밖으로 펼쳐진 주변의 아름다운 경치를 볼 여유도 없이 열차는 삶의 고단함에 떠밀려 간이역을 떠나 종점을 향하고 있다.

삶은 페르소나(persona)의 가면을 영원히 벗지 못하고 마치
수없이 얼굴을 바꾸며 살고 있는 것이라면 이 시대를 살아가는 고단한 중년들의 모습이 모두 이와 같지 않을까?

네온싸인 불빛 반짝거리는 모습이 청년들이라면 중년은 깜깜한 어둠을 은은히 빛내주는 가로등일 듯 하다. 비록 환하게 어둠을 밝히는 형광등 정도의 밝기는 없을 지라도 꼭 필요할 어둠의 공간에 있어야할 극히 소중한 가치, 나이를 든다는 것은 회상할 추억거리와 그리워할 것들이 점점 많아진다는 것이지만 그만큼 겪은 경험이 많고 연륜이 있다는 뜻도 되기에 숯불처럼 빨갛게 익은 원숙함으로 다가올 미래에 대해 차분히 준비하는 삶, 청년시절보다 훨씬 잘 할 수있는 것도 있고 해야할 것이 많이 남아있기에 내게 주어진 삶을 후회하지 않도록 하루하루를 값지게 살아야겠다는 의지를 다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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