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금선의 말하는 수필 21
박금선 사진 作
범띠 가시내
박금선
"사내 마음 울려 놓고 싶은
범띠 가시내."
초등
4학년 때 마산가포
해수욕장에 가수 양미란이 왔다
내 키 무릎쯤 오는
굽이 높은 통 구두에
성냥개비
열 개를 얹어도 될 긴 속눈썹에
노란
나팔바지에 선글라스를 낀
양미란이 범띠 가시내를
불러 어린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너무 멋지고 신이 났다
시골에서
가설극장은 몇 번 가 봤지만
가수들이 쇼하는 무대는
처음 봤다
천정에서
오색 번갯불이 번쩍번쩍
왔다 갔다
촌뜨기 내 눈을 사로잡았다
노래와 춤을
잠을 자지 않고 꼬박 일주일을 연습했다
소죽
솥에 불을 지피며 솥뚜껑을
탕탕
부지깽이로 두들기며 목이 찢어지라 춤과 노래 연습을 했다
춤은
좀 부끄러워 뒤꼍에서 했다
솥뚜껑에
금이 간다고 아버지 지게 작대기에 혼날 때도 많았다
사실은 내가 두드리기 전에도
금이 가 있었다
제일
처음 선을 보인 곳은
5학년 수학여행 때
배 위에서 열창했다
친구들은
재미있고 우스워 배를 잡고
돌돌 구르며 쓰러졌다
대 히트를 쳤다
50년을 우려먹었다
쓴 물
단물 다 빨아 먹었다
내 별명은
범띠 가시내가 되었다
등하굣길에
남학생들이
"야, 범띠 가시내 저기 간다."
하고 손짓을 하고 놀렸다
그럴 때마다
나는 어깨가 으쓱으쓱 올라가며
더 폼을 쫙 잡고 걸었다
잔칫집마다
불러 다니며 사람 3명만 모이며
범띠 가시내를 불렀다
노래가
끝나면 많은 박수와 돈 5원을 얻는 재미로
있는 힘을 다해 열심히 500원어치는 불렀다
마암면에
사는 면서기 형부는 통이 커
늘 오백 원이나 천 원을 주시고
앙코르를 청했다
조례대 위에서도
학예회
결혼식
할아버지 제삿날도
마당에서 범띠 가시내를 불렀다
그러나
이제는 싫어졌다
폭 삭 망했다
막걸리 한잔에 밀려났다
막걸리 한잔,
이 노래가 더 좋다
범띠 가시내는 한물갔다
제1장 막을 내렸다
그러나
요새는 모임을 못 하니 써먹을 때가 없다
춤과 노래를 열심히 익혀두었지만
장롱 속에 썩어 가고 있다
마스크
집어 던지고 노래할 그 날,
폼
쫙 잡고 노래할
그날을 기다려 본다
"황소처럼 일만 하셔도
살림살이 마냥 그 자리"
"막걸리 한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