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금선의 말하는 수필 21

수필, 소설

박금선의 말하는 수필 21

소하 0 4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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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금선 사진 作


범띠 가시내


       박금선


"사내  마음 울려 놓고 싶은

범띠 가시내."



초등

4학년 때 마산가포

해수욕장에 가수 양미란이 왔다


내 키 무릎쯤  오는

굽이 높은 통 구두에


성냥개비

열 개를 얹어도 될 긴 속눈썹에


노란

나팔바지에 선글라스를 낀


양미란이 범띠 가시내를

불러 어린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너무 멋지고 신이 났다


시골에서

가설극장은 몇 번 가 봤지만

가수들이 쇼하는 무대는

처음 봤다


천정에서

오색 번갯불이 번쩍번쩍

왔다 갔다


촌뜨기 내 눈을 사로잡았다

노래와 춤을

잠을 자지 않고 꼬박 일주일을 연습했다


소죽

솥에 불을 지피며 솥뚜껑을

탕탕

부지깽이로 두들기며 목이 찢어지라 춤과 노래  연습을 했다


춤은

좀 부끄러워 뒤꼍에서 했다


솥뚜껑에

금이 간다고 아버지 지게 작대기에 혼날 때도 많았다


사실은 내가 두드리기 전에도

금이 가 있었다


제일

처음 선을 보인 곳은

5학년 수학여행 때

배 위에서 열창했다


친구들은

재미있고 우스워  배를 잡고

돌돌 구르며 쓰러졌다


대 히트를 쳤다


50년을 우려먹었다


쓴 물

단물 다 빨아 먹었다


내 별명은

범띠 가시내가 되었다


등하굣길에

남학생들이


"야,  범띠 가시내 저기 간다."


하고 손짓을 하고 놀렸다


그럴 때마다

나는 어깨가 으쓱으쓱 올라가며

더 폼을 쫙 잡고 걸었다


잔칫집마다

불러 다니며 사람 3명만 모이며

범띠 가시내를 불렀다


노래가

끝나면 많은 박수와 돈 5원을 얻는 재미로

있는 힘을 다해 열심히 500원어치는 불렀다


마암면에

사는 면서기 형부는 통이 커

늘 오백 원이나 천 원을 주시고

앙코르를 청했다


조례대 위에서도

학예회

결혼식

할아버지 제삿날도

마당에서 범띠 가시내를 불렀다


그러나

이제는 싫어졌다

폭 삭 망했다


막걸리 한잔에 밀려났다


막걸리 한잔,

이 노래가 더 좋다


범띠 가시내는 한물갔다


제1장 막을 내렸다


그러나

요새는 모임을 못 하니 써먹을 때가 없다


춤과 노래를 열심히 익혀두었지만

장롱 속에 썩어 가고 있다


마스크

집어 던지고 노래할 그 날,


쫙 잡고 노래할

그날을 기다려 본다


"황소처럼 일만 하셔도

살림살이 마냥 그 자리"


"막걸리 한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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