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완식 연재 詩소설 - 달맞이꽃(9)

수필, 소설

정완식 연재 詩소설 - 달맞이꽃(9)

방아 1 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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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첫 만남과 이별의 단상



노을이 머무는 곳

달빛을 쫓아

달빛 속으로 걸어간 그녀가

마른 가슴에 봄을 남겨주었다


검붉은 해초가 살았던

고향 내음이 허공에 공존하고

하늘과 바다의 모호한 경계에서

보름달이 된 두 개의 반달


본능을 따라간 여행의 끝에

벼락같은 번개가 일고

전신이 마비된 몸뚱아리로

그녀를 기억하게 되었다


다른 만남도 다 그런 것인지

그녀와의 첫 만남은

그렇게 요란하게 시작했고

또 다른 내가 있었음을 알았다


- 첫 만남과 이별의 단상 -


 

집으로 돌아오는 KTX 안에서 화수는 내내 후회를 하고 있었다.


아니, 어제 저녁나절부터 후회하고 있었다.


수연과 작별의 인사를 건네기 전에 오늘 집으로 오는 열차 편을 늦춰서라도 다시 그녀와 만날 약속을 했었어야 했다.


수연이 약속때문에 바빠서 시간이 나지 않는다고 하면 그녀의 집 문 앞에서라도 잠깐 그녀의 얼굴을 보고, 다시 한번 그녀의 모습을 머릿속에 새겨넣었어야 했다.


그러나 화수는 수연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화수가 지금 하는 일이 마음에 들지는 않은지, 그녀도 자신처럼 이렇게 돌아서면 또 보고 싶은 건지 등을 머릿속으로 생각하며 머뭇거리다 기회를 놓쳤다.



주저하다 생각하다

시간만 지나가네


이해타산 고민하다

세월이 흘러가네


흐르는

시간 속에서

아쉬움만 쌓이네


고독은 짧다하고

기다림은 길다지만


꽃은 피고 또 지고

달은 차고 또 기울고


그 사이 그리움조차

주름살이 접혔네


- 머뭇거리다 -

 

 

그나마 화수는 수연으로부터 그녀의 전화번호를 얻어내었고,


"오늘 수연씨를 만나게 된 것은 제가 비록 얼마 되지 않는 삶을 살았지만, 제 인생사에서 가장 기념비적인 역사가 될 것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수연씨를 언제 다시 뵐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자주 연락드리겠습니다."라는, 작별인사를 전하며 이후에도 계속 그녀와 만날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놓은 것에 만족해야 했다.


화수는 KTX의 차창 밖에서 빠른 속도로 지나가는 풍경들이 마치 어제 일어났던 일이 활동사진이 되어 상영되고 있다는 착각을 했다.


그중에서도 달맞이길 언덕 위의 카페, 루프탑에서의 붉은 노을과 대비된 수연의 모습은 지금도 바로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것처럼 너무나 선명해서 화수는 결코 잊을 수가 없을 것 같았다.


어제 저녁 수연과 작별하고, 예약해두었던 해운대 인근의 숙소까지 찾아가며 바라본 하늘은 도심의 네온사인 불빛에 가려 별들은 보이지 않았었지만,

여전히 수연과 바라보았던 반달이 중천을 가로질러 초저녁 수연과 바라보았던 붉은 노을이 넘어갔던 서산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고,

얼추 취기가 사라진 화수는 달리는 반달의 보폭을 따라잡으려 큰 걸음으로 뛰다시피 숙소로 향했었다.


그리고는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마치 꿈을 꾼 것 같은 하루를 다시 마음속으로 복기했었다.


고속열차는 빠른 속도로 산허리를 뚫고 달리기도 하고 제법 파릇파릇해진 들판을 가로지르기도 하고 깊은 터널 속으로 하염없이 빠져들어 가며 목적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지만,


화수의 마음은 아직도 해파랑길의 파도가 넘실대는 어느 해안가 평평바위 위와 광안리의 모래사장 위, 이제 막 몽우리가 지기 시작한 달맞이고개의 벚나무 아래, 또는 온통 붉은 노을을 유리 벽 안에 가두어놓은 카페의 루프탑 위에 서 있었다.



당신도 이렇게 가슴 벅찬가요


처음 느끼는 눈부신 현기증

형언하지 못하는 설렘

언제나가 허용하는 시간

어디나가 허락하는 공간


경험해보기 전에는

믿지 않았어요


그녀만을 보고

그녀만을 들어요

가슴은 부풀어 오르고

머릿속은 하얗게 비었어요


이 세상 빛을 처음 본 순간

내 눈에 눈 맞추며 나만 보았을

그녀가 그랬던 것처럼

또 다른 그녀가 내게로 왔어요


- 또 다른 그녀 -




1 Comments
l인디고l 2021.10.06 14:20  
오늘도 잘 읽고 갑니다~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