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금선 시인의 말하는 수필 20
소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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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0.04 16:21
쌀자루
박금선
어머니가
직접 방아로 찧어 주신 쌀자루를 푼다
쌀자루가
반쯤 굴어 갈 땐
어김없이 쌀 속에는
까만 비닐봉지가 하나 나온다
깨와 참기름이 있다
깨 봉지 속에는
깨알을 둘러쓴
꼬깃꼬깃
손때 묻은 돈 2만 원이 나온다
깨알을
둘러쓴 돈,
머리를
털털 틀고 허허, 웃고 나온다
모서리가
허옇게 바래진
파란빛을 잃어 가는 돈 2만 원
어머니가
큰 올케 몰래
살짝 넣어 둔 것이다
쌀은
올케가 주는 걸 알지만
참기름과 깨는 모른다
늘
쌀자루 속에 숨겨서 주신다
말씀도 안 하셨다
쌀이 반쯤 굴어야 안다
그날은 눈물로 밥을 안쳤다
그땐
내가 23살
튼튼한 직장도 다녔다
사는 데는 전혀 어려움이 없었다
그런데
왜
어머니는
왜
쌀자루 속에
늘
돈 2만 원을 넣어 두셨을까?
쌀은
어머니의 눈물이다.
그리고 피다
오늘은 사랑채
처마 끝에서 실파를 깐다
기분
좋은 가을바람이 분다
이 바람은
어머니 허리로 만든 바람이다
어머니는
봄가을은 없었다
여름
겨울 뿐이었다
가만히
파를 바라본다
잔잔한 파가 웃는다
작은 실눈과 하얀 이로
어머니가 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