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금선 시인의 말하는 수필 20

수필, 소설

박금선 시인의 말하는 수필 20

소하 0 2480

ccf0d12ff8826f2ef309b760f51d8a39_1633331923_76.png


쌀자루

                

    박금선


어머니가

직접 방아로 찧어 주신 쌀자루를 푼다


쌀자루가

반쯤 굴어 갈 땐

어김없이 쌀 속에는

까만 비닐봉지가 하나 나온다


깨와 참기름이 있다


깨 봉지 속에는

깨알을 둘러쓴

꼬깃꼬깃

손때 묻은 돈 2만 원이 나온다


깨알을

둘러쓴 돈,


머리를

털털 틀고 허허, 웃고 나온다


모서리가

허옇게 바래진

파란빛을 잃어 가는 돈 2만 원


어머니가

큰 올케 몰래

살짝 넣어 둔 것이다


쌀은

올케가 주는 걸 알지만

참기름과 깨는 모른다


쌀자루 속에 숨겨서 주신다


말씀도 안 하셨다


쌀이 반쯤 굴어야  안다


그날은 눈물로 밥을 안쳤다


그땐

내가 23살

튼튼한 직장도 다녔다


사는 데는 전혀 어려움이 없었다


그런데


어머니는


쌀자루 속에

돈 2만 원을 넣어 두셨을까?


쌀은

어머니의 눈물이다.

그리고 피다


오늘은 사랑채

처마 끝에서 실파를 깐다


기분

좋은 가을바람이 분다


이 바람은

어머니 허리로 만든 바람이다


어머니는

봄가을은 없었다


여름

겨울 뿐이었다


가만히

파를 바라본다


잔잔한 파가 웃는다

작은 실눈과 하얀 이로


어머니가 웃는다.


ccf0d12ff8826f2ef309b760f51d8a39_1633332014_92.png 




0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