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랜컬쳐 연재시 - 창식이형, 임상근 시집
창식이형 -임상근 시집, 표지글: 조기종 컬리그라퍼 표지사진: 이정휘 포토에세이작가作
창식이 형 1
오십 년 전 비포장 자갈길 삼십 리
덜커덩거리는 자전거로 통학하던 중학교 시절
한 살 위인 창식이 형 문득 보고 싶다
어디서 무얼 하며 살고 있을까
자전거를 타고는 올라갈 수 없어 끌고 올라가며 나눈 이야기
지금은 기억의 페이지에 꾸겨져 가물거린다
내리막길에 자전거 브레이크 듣지 않으면
눕혀 고운 모래 넣고 오줌 싸 다시 타던 자전거
벌겋게 녹슬어 추억의 기슭에 버려져 있다
닳아서 바닥이 구멍 난 운동화
흙먼지 날리는 신작로 옆 미루나무 그늘 에서
고추장 섞어 흔들어 비벼 먹던 양은 도시락
한 숟가락씩 나눠 먹었던 기억을
창식이 형은 지금도 기억하려나 모르겠다
보고 싶다
창식이 형
그저 까만 밤하늘에 눈물이 고인다
창식이 형 2
지금도 기억하시나요
천리천 둑길에 기대선
최 영감네 만화방 가게
아침에 비 오면 오십 원 들고
합승 타고 학교 갔다가
하교할 때 남은 돈 이십오 원으로
통 양파 몇 개에다 대파 반으로 뚝 잘라 넣고
청양고추 몇 개 잘라 넣어 연탄불로 끓인
한나절 퉁퉁 불어 터진 어묵 몇 개 사 먹고
그 어묵 국물 대여섯 그릇 퍼먹던
그 만화방 말이요
비 그친 하늘에 저녁놀이 물들기 시작하면
차비는 만화책 보고 어묵 사 먹고 없으니
삼십 리 길 터덜터덜 걸어오다가
장돌뱅이 박 영감 소달구지 얻어 타고
삐걱삐걱 어둠에 밀려 돌아오던 길
창식이 형
오늘 문득 형이 보고 싶어
깜깜한 밤하늘 쳐다보고
혼자 씩 웃어봅니다
창식이 형 3
창식이 형
아직도 가슴속에 고이 접어둔
그 손수건 간직하고 계시나요
사십오 년 전 어느 봄날
선돌 배기 돌머리에서 한규 누나 책가방 손잡이에
돌돌 말아 다니던 하얀 손수건 가져오면
이십 원 준다 하기에
한규 누나에게 얻어다 준
그 하얀 손수건 말입니다
선돌배기 돌머리 뒤 우신대(友信臺) 바위 위에서
이십 원 받고 넘긴 그 하얀 손수건
아마도 아직 가슴 한편에 고이 접어 두고 있겠죠
지난봄에도 우신대 바위의 봄볕은 따사로웠어요
창식이 형
재작년 동창회 모임에서 한규 누나가 한 말인데
그때 그 손수건 못이긴 척 사실은 나에게 준거라 하더군요
창식이 형
어느 하늘 아래서 살고 계시나요
그저 잘 계시리라 믿어봅니다
창식이 형 4
창식이 형
아득한 기억 저편에 잠들어 있는
그 소나무봇살 기억하시나요
전날 저녁에 무섭도록 내린 여름 소나기에
작은 개울에 황토 물이 넘치고
소나무 말목 박아 솔가지 걸쳐 만든 봇살 밑에
웅덩이 생기면 하굣길에 발가벗고 멱 감던
그 웅덩이 기억하시나요
지금 고향의 개울은
하천 정비로 콘크리트 보 허옇게 누워있고
그 많던 개울가 버들강아지도 앙상한 석축에 추방 되었네요
창식이 형
솔가지 봇살 아래서
피리 만들어 불던 버들강아지
그냥 가슴에 묻고
그 향기 그리워 오늘 형을 나직이 불러봅니다
창식이 형 5
오늘 이른 아침 햇살에 까투리 한 마리
집 앞 논에 내려앉네요
창식이 형
사십 몇 년 전 까투리 알 기억하나요
복숭아꽃이 흐드러지게 핀
어느 토요일 정오쯤 자전거 끌고 안막재 오르다
복숭아꽃 그늘에서 점심 도시락 먹으려다
화들짝 놀라 날아가던 까투리
그 자리에 품고 있던 꿩 알 열 개 주워
다섯 개씩 나누었던 일
창식이 형 기억하시나요
대파 대롱 잘라 꿩 알 깨 넣고
굵은 소금 몇 개 넣어 밥솥에 쪄서
월요일 도시락 반찬으로
해주시던 울 엄마
지난봄에도 올봄에도
까투리는 복숭아꽃 그늘에 둥지를 틀 것인데
나 홀로 늙어 귀밑머리 하얗게 물드네요
창식이 형
까투리 한 마리로 형을 오늘 다시 소환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