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호 시인의 바다 우체국으로 보내는 글

김재호 시인의 바다 우체국으로 보내는 글

소하 0 3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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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재호 시인



그러니까 


      김재호 


뒷굽이 닳은 구두의 안색이 편안합니다


그가 떠난 후 오롯이 현관 구석에서 남은 열기와

따스했던 순간을 추억한다는 것은 감사한 일입니다


번쩍번쩍한 구두는 사내의 두텁고 갈라진 뒤꿈치와 데면데면합니다

그저 낡았지만 가볍고

편안하게 감싸주는 수더분한 그가 좋습니다

 

하이든의 종달새 마냥

총총총

상큼한 아침이 반갑습니다


거리로 나서면 우측으로 통通합니다

만나는 사람들의 말이 말馬이 되어

또각또각 사라지지 않을 지층을 형성하는데 그 끝이 페가수소*로 내달립니다


길거리를 청소하는 미화원의 눈길을 피해

지난, 지지난 계절에 뿌려진 씨앗이 보도블록 틈새에 뿌리를 내리면서

바닥에 납작 엎드린 채

찰나의 엑스터시에 떨고 있습니다


도시의 속도는 마하**입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안드로메다에 이르지요

심장은 집안에 잘 모셔두었답니다

가끔 잊은 척 

외출은 껍데기와의 속 깊은 대화입니다

 

우리 밥 한번 먹어요

차 한 잔 합시다

아니, 지금 당장 만나요.


*전설의 백마

**속도의 단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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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강 


         김재호 


다 퍼주고

빈 쭉정이만 남아

훅, 불면 날아갈까

허, 허, 수세미 같은 세월

언제까지 이 땅에 발 딛고 있을까

한 짐 지고 땅만 보며 가는

부지깽이 같이 

검게 그을린 삶이여

단 한순간인들

자신을 위해 살았던가

태산 같던 등

반으로 접은 채

자꾸 땅과 가까워지는데

언제 한번

연지곤지 곱게 찍어 바르고

마실 나설까.





첫눈


    김재호 


새벽길 가지런히

별들이 내려왔네


발자국 남기려니

가슴이 젖어오네


사뿐히

내디딘 걸음

보드라운 별자리





중년 보고서


       김재호 


희끗희끗

서리 내린

민둥산 마루턱에


헐거운 망태 하나

덩그러니 걸터앉아


청청한 세월이 남긴 나이테 헤아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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