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곤 시인의 생활속의 詩꽃 나누기

이형곤 시인의 생활속의 詩꽃 나누기

소하 0 151

5e690c90da3196044fd1bd417aba2e23_1673952459_78.png

                 이형곤 시인




첫사랑 


    이형곤


떠난 너는

가벼운 고뿔 같았는지 몰라도


남겨진 나는

평생을 콜록이고 있다.




고드름


     이형곤


이 악물고 키워온

날 선 각오도


날밤을 벼려온 번뜩이는

창날도


거꾸로 매달려 바라본

경직된 오기더라


세월 가면 잊혀질

한차례 고뿔이더라


한 줌 햇살에 녹아내릴

방울방울 물이더라.




장독 


     이형곤

                        

만고풍상 모진 세월

군소리 없이 살아왔소


소태보다 쓰고 짜도

내색 않고 보듬었소


보름달 거푸 이지러져도

드나든 적 한번 없고


감은 듯 뜬 듯 숨죽인 세월

내 나이도 잊었다오


바람 자고 청명한 날

매화향기 어여쁠 때


삭았는지 썩었는지

이 마음

한 번 들여다보소.




호박꽃 


     이형곤


손 크고

후덕하신

우리 외할매 같은 꽃


다 주고도

더 못 줘서 안쓰러워하는

울 엄마 같은 꽃


수더분하다면서도

거울 앞을 떠날 줄 모르는

내 누이 같은 꽃


현모양처 유전자가

황금 사슬로 이어지는


어질고 인정 많은

꽃 중의 꽃.




빈병


    이형곤


남산동 새벽 시장 앞

해장국 집 처마에는

빈 막걸리병 주둥이를 묶어

만든 커다란 파꽃같이 생긴

간판 아닌 간판이 걸려있다

홍등처럼

조등처럼

흔들리는 묵시의 간판이다

바람이 불면

요상한 소리를 내는데

휘파람 소리 같기도 하고

다 쏟아 낸 뒤의 허전함에 깊은

한숨소리 같기도 하다

그렇게 살라는 것 같기도 하고

그렇게 된다는 것 같기도 하다

매달려 흔들리는 빈병,

내용물이 무엇이든 간에

담겨있을 때 대접받는 법,

다 내려놓은 뒤의 가뿐함에

절로 터져 나오는 휘파람 소리

라고 우기는 이도 있겠지만.




0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