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곤 시인의 생활속의 詩꽃 나누기
소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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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17 19:50
이형곤 시인
첫사랑
이형곤
떠난 너는
가벼운 고뿔 같았는지 몰라도
남겨진 나는
평생을 콜록이고 있다.
고드름
이형곤
이 악물고 키워온
날 선 각오도
날밤을 벼려온 번뜩이는
창날도
거꾸로 매달려 바라본
경직된 오기더라
세월 가면 잊혀질
한차례 고뿔이더라
한 줌 햇살에 녹아내릴
방울방울 물이더라.
장독
이형곤
만고풍상 모진 세월
군소리 없이 살아왔소
소태보다 쓰고 짜도
내색 않고 보듬었소
보름달 거푸 이지러져도
드나든 적 한번 없고
감은 듯 뜬 듯 숨죽인 세월
내 나이도 잊었다오
바람 자고 청명한 날
매화향기 어여쁠 때
삭았는지 썩었는지
이 마음
한 번 들여다보소.
호박꽃
이형곤
손 크고
후덕하신
우리 외할매 같은 꽃
다 주고도
더 못 줘서 안쓰러워하는
울 엄마 같은 꽃
수더분하다면서도
거울 앞을 떠날 줄 모르는
내 누이 같은 꽃
현모양처 유전자가
황금 사슬로 이어지는
어질고 인정 많은
꽃 중의 꽃.
빈병
이형곤
남산동 새벽 시장 앞
해장국 집 처마에는
빈 막걸리병 주둥이를 묶어
만든 커다란 파꽃같이 생긴
간판 아닌 간판이 걸려있다
홍등처럼
조등처럼
흔들리는 묵시의 간판이다
바람이 불면
요상한 소리를 내는데
휘파람 소리 같기도 하고
다 쏟아 낸 뒤의 허전함에 깊은
한숨소리 같기도 하다
그렇게 살라는 것 같기도 하고
그렇게 된다는 것 같기도 하다
매달려 흔들리는 빈병,
내용물이 무엇이든 간에
담겨있을 때 대접받는 법,
다 내려놓은 뒤의 가뿐함에
절로 터져 나오는 휘파람 소리
라고 우기는 이도 있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