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묘년 유중근 시인이 만난 토끼

계묘년 유중근 시인이 만난 토끼

소하 0 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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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중근 시인


토끼 이야기


              유중근


계묘년 새해를 맞고 보니 

토끼 키우던 어린시절이 생각나네


고모에게 잿빛토끼 한쌍을 분양받아

사과 궤짝에 얼기설기 철사를 엮고

허술하기 짝이 없는 토끼집을 지어

습기에 약해 비 오면 비 맞을세라

추운 겨울이면 얼어 죽을세라


재미로 시작한 토끼 두 마리가

한 달이 멀다 하고 새끼를 낳더니

쓰러질 듯 초가집 담 한쪽을

늘어 난 토끼집들이 점령했지


사료가 없던 엄동설한 그 시절

홍두산을 돌아 태봉산 자락으로

토끼가 먹을 풀을 구하러 다녔는데

겨울날 푸른빛 띠는 풀 구하기는

나무 한 짐보다 더 큰 숙제였지

칡넝쿨을 걷어 빻아 먹이기도 하고

토끼는 내 발목을 묶는 상전이었지


그 많던 토끼는 다 어디로 갔을까

비료포대 한 개씩 들고 할머니와

풀 뜯으러 다니던 기억만이 생생한데

아파트 같은 멋진 토끼집을 지어

눈망울 맑은 토끼를 키우고 싶네

문득


그 시절 함께 하던 사람들과

같이하던 것들이 그리운 것은

세월따라 나이를 먹는 탓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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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 남이섬에서 만난 토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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