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신작 시모음집 -낭송대회자료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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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랜컬쳐 0 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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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골무 / 홍영숙

 

 

여기 어머니가 지켜본다

 

반달 빛에 실려 온 반짇고리 안에서

눈썹이 하얘지도록 신열 잠재우며

행여 세상 가시에 찔릴까

십 리 밖 발걸음 주저앉을까

시집간 딸을 바라본다

 

빈 수수깡 같은 기나긴 통로에 바람이 인다

된바람은 제 품 속에 끌어안고

딸아이 걸음보다 한 발짝 앞서가며

세상 방패막이가 되어 주고 싶었을까

 

풀 먹인 무명천에 색색 덧대어 속정이 배어든

하나뿐인 어머니의 골무

정겨운 목소리 만져보려 했는데

무디어져만 가던 어머니의 손끝 사라져간다

 

당신을 잊고 비워놓은 자리에 밀쳐놓은

몸에 걸치는 옷 중에 가장 작은 갑옷

한 생애 피었다가 멈춰선 꽃자리는

골골이 따가운 상처 자국이다

문득 정든 골무를 손바닥에 올려보니

어머니의 눈

어머니의 귀

어머니의 손

그 뜨거운 가슴이 나를 감싸 준다   

어머니 전언 / 정태운


서러워 말거라

인생이란

그렇게 가고 오는거란다

내 자식으로

태어나 줘서 너무 고마웠구나

너희로 인해

사는 것에 행복했단다

어느

인연에 또 너희를 만나

이토록 큰 행복이 있을까

'나 떠난다고 너무 울지는 말거라'

꽃이 피듯 꽃이 지듯

계절의 순리는 그렇고 그럼을 알지 않느냐

한때의 행복과 웃음

너희로 얻고 너희로 복되었단다

가난에

찌 들렸어도 너희가 버팀목이 되었고

너희가 위안이 되었기에

어미의 한 평생은 어려웠으면서도

쉽게 살았고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른다

너희는

보약처럼 언제나 나의 힘이 되었단다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지만

너희들이 있어

줄기가 버티고 부딪혀도 나에겐 의지가 되었단다

참 행복한 삶이었단다

어느 세월에 또 너희를 만날

어느 인연에 또 너희와

부모 자식의 인연을 맺을꼬

나는 그러고 싶다만

너희에겐 미안하구나

사랑하는 나의 아들딸들아

어미는 이렇게 가지만

다시 만나고 싶구나

너희에겐 못난 어미지만

다시

인연의 끈을 놓고 싶지 않구나

사랑했다

사랑한다

그리고 영원히 사랑한단다

안 좋았던 모든 기억은 버리고

나의 사랑만 기억해다오

나의 삶이

너희들로 하여 결코 누추하지 않았단다

그러기에

나는 이렇게 웃으며 떠날 수 있겠다

바람이 불어온다





마침표 없는 오월 / 홍영숙

 

 

침묵의 언어는 아직도 남아 있어요

 

뉴스 특보도 없이 화산이 폭발한 무등산

식지 않는 사연들 굴욕의 역사로 반복되고

빛고을은 송두리째 풍장을 합니다

 

참혹한 슬픔이 얼어붙었던 오월

금남로 보도블록 외침에 벙어리는 누구인가요

이승의 휘모리장단이 만가로 이어지던 영령 앞에

마지막 인사는 끝내 죄짓는 일이었지요

어머니 품속 같은 이불 덮인 시루에서

물 한 박 마시러 나온 사이 푸른 멍울 배인 채

머리 잘린 콩나물의 못다 피운 꿈은 눈감지 못합니다

휩쓸려 곡기 끊어진 몸부림의 생채기는

숨조차 쉴 수 없는 거리에 오열하며 흐릅니다

 

폭동이라는 누명으로 탕진한 세월, 무엇으로 대신할까요

마침표 없이 달력에 찍어 놓은 화인

묻혀온 잿빛 털어내니 소망의 빛 더해가네요

 

침묵은 말을 열게 하는 소통이라지만

그들은 말이 없습니다

망월동에 내린 뿌리는

산산이 흩어지지 말고 다시는 묻히지 말자며

무성한 민주의 숲으로 자랍니다

 

언젠가 킬링 광장에 들어설 백골 탑, 다문 입 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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