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시인의 꽃으로 오는 소리, 봉숭아 꽃물

조선의 시인의 꽃으로 오는 소리, 봉숭아 꽃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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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시인



봉숭아 꽃물


           조선의


울 밑에 봉숭아꽃 피어나면

어머니 손톱에는 붉은 강이 흘렀습니다


홀로 견뎌야 하는 세상에서

남모르는 눈물을 손등으로 눌러야 했습니다

오래된 꿈 밖에서

가난은 산짐승처럼 웅크린 채 으르렁거렸습니다


새들도 마음껏 노래할 수 없었던 시기에

배곯은 오후를 지나온 도둑 같은 밤이

장독대 소금항아리를 뒤덮으면

따사로운 별빛이 손톱 깊이 잦아들었습니다

 

‘새날을 꿈꾸어야 한다

반드시 새날은 오고야 말 것이다’

독하게 뱉어낸 말을 상기하듯

빈 가마솥을 닥닥 긁어대며 당신은 울고 또 울었지요


제 살 도려내는 고통을 모르는 달처럼

단 한 번 확 풀어내지 못한 가슴속 응어리


긴 한숨으로 모든 근심을 까맣게 태우고도

우르르 몰려드는 달빛마저 삭혀내야 했습니다


무희의 춤이 손톱에 꽁꽁 동여질 때에도

수천 번 바튼 숨을 조였다 풀어냈을 어머니


수런대는 꽃물의 방향으로

열리고 닫히는 손톱의 시간


장독대의 조용한 소란과 은밀한 언약이

다시 그 시절의 여명을 맞이할 수 없어도

손톱에서 톡톡

가슴 아리도록 톡톡

봉숭아 꽃물이 피어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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