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미영 시인의 시 이야기, 시처럼

서미영 시인의 시 이야기, 시처럼

소하 0 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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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처럼   


       서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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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쓸 때 나는 왼손을 꼭 쥐고 있다

내 허물과 내 어리석음을 움켜쥐고서

봄이면 꽃이 필 거라고 겨울이면 눈이 올 거라고

그러다 나만 억울한 것 같아 세상 탓하느라 바쁘다


하늘이 맑은 날 굳이 시를 쓰겠다고 벼를 때면

손바닥으로 땅을 짚고 장난질하듯

하늘을 발로 툭툭 차고 있는 바람도 귀엽고

새 치마를 두른 구름의 뒤태도 참 곱다


아침이면  안개를 저으며 날아가는 새처럼

잿빛 그림자를 쓸고 가는 폐지 실은 리어카 위에

쓸만한 거라고 걸러진 맥주캔 자루 같은 인생

덜거덩거릴 때마다 같이 흔들리던 내 머릿속


비가 내리면 계단 청소를 하던 버릇이 있어

치매가 걸리면 비 오는 날은 계단을 닦을 테고

흰 눈이 내리면 옛사랑을 지워보겠다고

소주 한 병을 인질로 잡고 시를 쓸 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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