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추천하는 좋은 시, 달팽이 사내 / 최계순

시인이 추천하는 좋은 시, 달팽이 사내 / 최계순

포랜컬쳐 0 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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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 사내 / 최계순


고무옷이 달팽이처럼 기어간다

봄을 맞는 들판이나 냇가에서 느릿느릿하게 기며 노는 달팽이를

걸레조각 같은 시장 난전에서 만날 줄이야

팔을 허공에 휘젓는다

때수건이나 수세미 좀약들을 팔아 주세요

힘을 다해 외치며 그는 알고 있다

한뼘씩 기어가는 거리가 그에게는 천리 만리인 것을

땅에 엎드려 땅처럼 사는 것이 겸손이라고 배웠지만

달팽이는 자기를 낮추는 법을 모른다

달팽이는 자기를 높이는 것도 모른다

고무옷을 질질 끌면 등이 부풀었다 내려앉곤 한다

달팽이가 내 눈에서 멀어져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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