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완식 시인의 송년 작가노트

정완식 시인의 송년 작가노트

소하 0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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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식 시인



숟가락의 무게


               정완식


숟가락 들 힘이 없다는 건

세상 떠날 때 되었다는 말에

일백 그램 남짓의 무게로

한 평생을 거는 것이 억울하지만


숟가락 한 수저에 담을 수 있는 것이

어디 밥 한 숟가락이나

국물 한 숟가락 뿐이랴


패여진 작은 웅덩이 하나 채우는 일이

평생의 업이 되어

처진 어깨에 너무 많은 것을 쌓고

두 눈에선 또 얼마나 많은 눈물을 쏟았는지


젖은 숟가락이 마를 새도 없이

매 끼니는 어김없이 찾아오고

밥짓는 소리가 들리지 않으면

뻥 뚫린 가슴에선 쇳소리가 났지


신새벽에 눈 떠 서녘 하늘 닿을 때까지

종일 뜀박질하다 저문 해가

발 아프다 신음하는 시간이면

웅크렸던 빈 주먹 펴기가 두려워

가슴 졸였던 날은 더 많았지


이제 삶의 여백이 아무리 크다 해도

공간을 메꿀 걱정보다는

넘쳐나는 욕심을 끊어내지 못하는 나이지만


식탁 위 가지런한 빈 숟가락에서

눈길을 수이 뗄 수 없는 것은

과거는 떠나갔어도

철부지 소년은 그대로 남아

희망을 덧대며 버티고 있기 때문이지


♣작가노트♣

다난多亂하기만 했던 신축년이 어느덧 저물어 간다.

매년 이맘 때면 한 해를 정리하며 새해를 계획하게 되는데.

올 년말은 다가올 임인년이 새롭고 희망에 차보인다기 보다는 차라리 암울해 보이기만 하다.

무심히 아내가 차려준 밥상에 가지런히 놓인 수젓가락을 보다가 문득 암울했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참 모질고 힝겹게 사시던 부모님, 그 밑에서 자식들도 평탄할 리가 없던 시절이었다.

고생만 하시던 아버지가 세상을 뜨신지도 벌써 여덟 해가 지났고 이제 입에 풀칠할 걱정도 많이 사라졌다.

그렇지만 지나간 추억이 아름답게 여겨지지 않고

아프게 와닿는 것은 다가오는 임인년 새해가 만만할 것 같지가 않아서이고,

그래도 예전에 그랬듯 희망의 끈은 결코 내팽개치면 안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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