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일규 시인의 수묵화 한점의 풍경은 시다詩多 4
소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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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0.21 12:22
백토 조일규 시인
어매꽃
백토
꽃, 그대는 슬퍼 할 새도
지쳐 누울 새도 없이 웃기만 했습니다
여름 한낮 땡볕아래
입술이 찢어지고 허리가 휘도록
싫은 내색 한 번 없이
그늘 한 조각 없는 밭두렁에 걸터앉아
흙 묻은 손 터는 둥 만 둥 머릿수건에 땀을 닦으시고
적삼고름 풀어 젖가슴을 내주시던
사랑의 꽃이셨습니다
땀으로 눈물로 호밋자루가 다 닳도록
죽을 힘을 다해가면서도
나는 괜찮다, 나는 됐다
물 한 모금까지도 자식에게 먼저 주시던
희생의 꽃으로 사셨습니다
세상 어떤 꽃에도 없는 젖내음 밥내음
땀내음까지도
아침 꿀향기로
배고픔을 달래 주시던
생명의 꽃이셨습니다
비 오는 어느 날엔
바람결에 흩날리듯 흥얼거리시던 타령은
자식 먼저 가슴에 묻은 한맺힌 기도였으며
남모를 설움이 서렸던
한송이 눈물 꽃이셨습니다
끝내는 마지막 가시던 날
자식 생각에
눈마저도 고이 감지 못하셨던
죽어도 살아 계신
불사불멸의 꽃이십니다
이제 어매꽃은
나의 고향이 되고 별이 되어서
남은 날 모두
따라 닮아 갈 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