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정임 시인의 무채색으로 오는 시詩
소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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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9.03 18:38
배정임 시인. 가죽 공예가
나방은 부유하고
예솜
오늘도 오후 세시
너무도 그리워
시계 없는 나방은
살랑살랑 부유하고
또르르 구르는
방울 토마토 한 소쿠리 씻어 놓으니
별꽃이 한가득히 내려앉네
마음을 받아온 날
두 눈에서 그대라는 글자가
끝없이 흘러 내리고 가슴까지 들어차서
눈물없이 그대 생각하고 나니
참꽃같은 허기가 진다
선득선득한 이른 봄은
애기민들레로 연애를 하고
한 줌 참꽃은 눈물로 배부르다
고백
예솜
답해주니 좋더라
온 마음에 너를 담고
떨리는 손 끝
방황하는 눈동자 감추며
너에게 묻던
그 날에
잠자리 휘이휘이 도는 하늘
들꽃 춤추는 바람
네 목소리로
답해주니 좋더라
못 들은 척 해주던
떨리는 목소리
우르르 소낙비 되고
후두둑 메뚜기 날아
파다닥 내가 놀라도
답해주니 좋더라
그날
비밀
예솜
뽀얗고 미끄덩거리는
두부를
반으로 또
반으로 반으로
쑹덩 쑹덩 잘라넣고
전기밥솥 뜨거운 김
싹싹 쏘아대고
젖은 나무도마
맛 보던 숟가락 하나
얹어 놓고 나니
마주앉아 먹을
그가
들어온다
마음 한쪽
기다리던 소식
찌개 속 두부처럼
먹어 치웠다
〔비밀〕작가노트
사랑하는 사람과 같은 시간을 오래도록 살아가다보면
나만 품게 되는 한 두 가지 비밀이 생기기도 하죠.
이런 마음을 담아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