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희목 시인의 안부시詩, 그대 잘 있나요? 1
신희목 시인
잊혀져 가는 것들
신희목
하얀 눈 고깔 동그랗게 쓴
옛날 흙벽돌 창고 안에는
상큼한 여름 향기가 익어가고
푸르른 국광의 살결이 달콤한 과육으로
지난 청춘을 곱십으며 왕겨 속에서 살았다
한 모퉁이에는 눈길 끌던 홍옥이
붉은 상념이 아른거리는 기억으로
마지막 향을 사르며 뒹굴고
귀퉁이에 잡다하게 섞여서 잡담하던
골덴 인도 스타킹 이젠 이름마저 감감하다
눈이 녹고 비가 내리고
햇살이 눅눅해지는 날 오면
마지막 이사를 준비하고는 이별 의식을
수없이 많은 날 세월이 흐른 뒤
기억 속에 희미하게 한 올 차지하고 있다
지금은 그 이름들 하나 둘 잊혀지고
어디를 가나 모두가 하나뿐인 부사
이렇게 눈 쌓이고 고드름 녹는 날이면
야물딱진 국광의 그 진득한 향기와
진홍색 홍옥의 때깔이 그리웁다
당신은 그렇게 왔습니다
신희목
호젓이 당신이 오신 길
아름아름 비치는
새 움이 돋는 벌판 아지랑이 따라
끊어질 듯 이어지는 허밍으로
무지한 우격다짐에
거칠어진 호흡과 어지러운 몸부림
벌거벗은 허약한 육체를 적시고
흔들흔들 바람 따라
옷 갈아입은 가을 허수아비 닮은
약간은 어설픈 스웨그로
삼한사온 간데없이
지나는 길목에서 목을 죄는 동풍
입과 코 막고서 다시 동여매고
당신은 그렇게 왔습니다
#시조
겨울 강가에서
신희목
그날은
비가 왔어
두 사람 한 우산에
강 언덕
버드나무
약속을 새겨두고
하얀 눈
겨울 강가에
소식 한 줄 없어라
#시조
등대 섬
신희목
바위 섬
등대하나
홀로서 살아간다
비바람
쏟아지고
눈보라 몰아쳐도
언제나
가물거리는
눈에 담은 등대 섬
#시조
아시나요
신희목
그대여
곱게 여민
이 마음 아시나요
하루가
지쳐 와도
꿈으로 살아가오
분홍빛
봄바람 올 제
사랑으로 가리다
#시조
삶
신희목
물결 위
흘러 가는
나뭇잎 한 장인 걸
간혹은 부딪혀서
생채기 나기도 해
인생길
지난 길에는
더 한 일도 많았소
달빛에
눈 흘겨도
다 지난 일인 걸요
불거진 돌부리에
멍든 적 많았더라
이만큼
감당해 온 삶
훌륭했다 말하오
물레야
신희목
누구 신가요
생각 없는 겨울에 토라진 창
뿌옇게 서린 성애는 달빛을 가리는데
눈가에 내려앉은 잠결에 들리는
누구를 찾는 소리 하나 있어
하늘나라 그 먼 곳에 계신 어머니
애린 밤 자식 걱정에 예 오셨나요
아, 겨울이 내뱉는 바람 소리였구나
잠은 달아나고
하릴없는 밤 시간 덩그러니
뭉클해진 가슴으로 강물이 흐르는데
애써 입술 깨물면서 귀를 밝히니
어렴풋이 귀에 익은 소리였어
코흘리개 재워 놓고 밤새우신 어머니
감기 들라 배앓이 할까 걱정하시었소
아, 그 밤에 듣던 물레 소리 닮았구나
오늘을 박제하다
신희목
눈물 많을 나이란다
심연에 일렁이는 그림자
슬픔이 좀비처럼 흐느적이고
불뚝 일어서는 그리움이란 괴물
이렇게 못 잊어 아픈 날에도
남자라서 소리치지 못하고
어둠을 찾아 하늘만 쳐다보더라
마음대로 부르지 못한 노래
잠시 멈추기도 싶은 발걸음
쉴 정거장이 없는 인생길
자꾸만 재촉하는 중년의 하루
고독한 남자의 외로움은
하얀 겨울에도 싹트는가 보다
오늘을 박제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