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랜컬쳐 이 달의 시평 * 봄이 오는 소리 / 이승해 시인편
포랜컬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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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1 16:42
봄이 오는 소리
이승해
아무도 몰래 아주 작은 숨결로 봄이 다가온다
아직 겨울의 잔잔한 기운이 창문 틈에 남아 있지만
어느새 바람이 조금 다정해졌다
목 끝에 닿는 공기가 어제보다 부드럽고
별이 마음 한 구석을 슬쩍 쓰다듬고 간다
거리의 나무들은 여전히 앙상하지만
가지 끝에 달린 작은 꽃눈들이 조용히 말을 건다
"곧이야 조금만 더"
아침을 여는 빛이 달라졌다는 걸
사람들은 말하지 않아도 안다
해가 뜨는 속도가 살짝 빨라졌고
바닥에 내려앉은 그림자의 온도도 더 따뜻해졌고
그 변화는 아주 조심스럽고 느리고 또 아름답다
마치 사랑에 빠지는 순간처럼
처음에는 눈치채지 못하다가
어느 날 문득 온몸으로 느껴지는 그런 변화
세탁줄에 걸린 겨울 옷들이 하나 둘 옷장에서 사라지고
유리창 너머로 고양이 한 마리가 졸린 눈으로 햇살을 쬔다
아이들은 모래밭에 쪼그리고 앉아
이름 모를 풀을 만지작거리고
동네 어귀 개나리 덤불은 아직도 피지 않았지만
곧 노랗게 터질 준비를 한다
세상이 조금씩 살아나는 이 조용한 소란을
우리는"봄"이라 부른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는
발라드가 유난히 따뜻하게 들리는 날
향긋한 커피 한 모금이 평소보다 부드럽게 느껴지는 날
이유 없이 누군가에게 안부를 묻고 싶은 그런 순간
그 모든 감정 뒤에는 봄이 있다
들리지 않지만 마음으로 느끼는 소리
바로 봄이 오는 소리
어쩌면 봄은 계절이 아니라
마음의 상태인지 모른다
누군가를 다시 그리워 하고
나를 조금 더 사랑하고 싶어지는 그런 순간
그럴 땐 꼭 눈을 감고
가만히 귀를 기울여본다
지금 봄이 너에게로 가고 있는 중이니까.
[시평] -한실문예창작 지도 교수 박덕은 (박덕은 미술관 관장, 문학박사, 문학평론가)
이 시에서의 시적 화자는 봄이 오는 소리를 시적 형상화해 놓고 있다. 봄을 '세상이 조금씩 살아나는
조용한 소란'이라고 정의 내리고 있다. 멋진 해석이다. 그래서 봄이 오면 우리의 귓속이 그리
소란스러웠나 보다. 마음을 귀울여야 들리는 소란이 봄을 아름답게 한다. 우리의 귀는 편식이 심해
봄의 소란을 좋아한다. 꽃빛으로 말을 걸어오고 향기가 귀바퀴에 쌓이는 그 봄이 아름답다.
꽃망울이 터지는 그 소리에 세상의 모든 소리는 짓눌린다. 입꼬리가 올라간 개나리가 제 그리움을 켜
노랗게 환해지고, 그 노란 속엣말들을 우리는 귀로 듣는다. 또 시적 화자는 '봄은 계절이 아니라/
마음의 상태인지 모른'다고 말한다. 맞다. 봄은 마음의 상태다. 새로운 해석이 빛을 발하고 있다.
시는 이처럼 새로운 해석, 새로운 관점이 있어야 한다. 화자는 '누군가를 다시 그리워 하고/ 나를
조금 더 사랑하고 싶어지는 그런 순간/ 그럴 땐 꼭 눈을 감고/ 가만히 귀를 기울'이고 있다.
생의 봄날이 오고 있는 것이다. 기다림으로 벙그는 봄날이 웅크린 잠 속에서 깨어나 다시 만개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발랄한 감성이 움찔움찔 살아나고 갓 태어난 여린 그리움들이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순진무구한 그 봄의 눈망울들을 맞이하러 가자. 우리의 봄날을 다시 꽃피우자.
작은 꽃눈들이 조용히 말을 건다. 세탁줄에 걸린 겨울 옷들이 옷장에서 사라진다. 고양이는 졸린
눈으로 햇살을 쬔다. 아이들은 모래밭에 쪼그리고 앉아 풀을 만지막거리고, 동네 어귀 개나리는
꽃망울 터뜨릴 준비를 한다. 라디오에선 발라드가 따뜻하게 흘러나오고, 향긋한 커피 한 모금은
유달리 부드럽다. 마음으로 느껴지는 소리, 마음속에 들려오는 소리, 그 봄의 소리에 귀기울인다.
이 소리, 이 조용한 소란을 봄이라 부른다. 봄이 오는 소리에 집중하면서, 생생한 이미지 구현을
해놓고 있어, 눈길을 끈다.
이처럼, 이승해 시인의 시들은 시의 특질을 바탕에 깔고, 이미지 구현에 최선을 다하고 있어,
독자의 눈길을 끈다. 시는 찰나의 예술이다. 길고 긴 인생살이보다는 어느 한 순간의 감성을
이미지로 포착해 내어 독자의 가슴에 파고드는 문학 장르이다. 따라서 시는 보다 선명한
이미지로 그림을 그릴수록 더 좋다. 다채로운 감성 중 하나를 발굴하여 독자 앞에 내놓고,
이왕이면 신선하게 새로운 해석, 즉 낯설게 하기를 해놓을수록 싱그럽고 완성도가 높아진다.
그 기반이 치열한 현실인식일수록 감명도가 높아진다. 주제를 노출하지 않고, 가급적 에둘러
표현하여, 감동의 전율을 등줄기에 흐르게 하는 기법이 함께하면 더 좋다.
이승해 시인이 여생 동안 꾸준히 시의 특질을 기반으로 완성도 높은 작품들을 발표하여,
꾸준히 시집을 펴내고, 이따금 시선집도 챙겨가기를 바란다. 창조하는 삶이 가장 아름답다는
인생관을 가지고 날마다 새로운 인생을 꾸려가기를 소망한다.
- 사방천지에 피어나는 아름다운 꽃들에 취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