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 동행 * 포랜컬쳐 문학상 * 수건 * 박덕은 작가

문화예술 동행 * 포랜컬쳐 문학상 * 수건 * 박덕은 작가

포랜컬쳐 0 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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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제2회 - 1월
#시 부문

수건 

    박덕은

수건은 온몸이 귀다
작고 동그런 올이 귀 모양 같다
저 수만의 귀가 물소리에 붙어산다
어둑컴컴한 청력의 한밤중에도 
수건은 철썩이는 물의 꽃에 눈뜬다

온몸으로 물의 악보를 쓰는 날
새벽을 철썩이는 물의 후음이
풍경 속으로 뛰어든다
그때 어둠의 수압으로 봉인된 아침이
깨어난다

수건을 각 잡아 개는 것으로 하루를 연다
수건의 어긋한 각들이 
둥근 물방울체 문장을 온전히 읽지 못할까 봐
반듯하게 각을 잡는다
한 번 읽은 물의 일대기는 
다시 읽을 수 없기에
수건에 물기 스며들기 전에
각이 잡힌 반듯한 태도가 필요하다
수건은 칼각의 준비된 자세로 바구니에 놓여진다

멀고 가까운 물의 말들을 가슴으로 받아준 수건은
그 어떤 울음 섞인 사연도 
서러워 짙은 하루도 다 품어 준다
수만의 귀를 가진 수건은 
닦아 주고 또 닦아 주는 방식으로 경청한다
몸을 닦고 발까지 닦은 후에는 
바구니에 던져지는 방식으로 
마지막 경청을 마무리 한다
그때 바람은 개운하다고 말한다

수건은 귀를 열어
둥근 입술들에 에워싸인 말의 빈집들이
환하게 불 켤 수 있도록 도와준다
상대의 입술이 길게 넓은 말들을
과격하게 팔랑거려도
끝없이 기다리는 방식으로 경청한다
팔랑팔랑 말의 체온이 올라가
자유롭게 떠들 수 있도록 멍석을 깔아 준다

엉덩이에 눌린 뒷면의 수다가
한 바가지의 따뜻한 물에 긴장을 푼다
손끝은 아무져 복숭아뼈에 붙어 있는
말의 속살 같은 하얀 실비듬까지도 귀기울인다

마당으로 나갔더니
빨랫줄에는 수건이 
수만의 귀로 바람을 입고 있다
야무진 손끝 같은 햇살이
수건의 등을 쓱쓱 밀어 줬는지
뽀송뽀송하다
아침 저녁으로 물의 말을 과식한 수건이
이제는 제 안의 속엣말을 다 꺼내놓았는지
개운해 한다

때론 수건은 
추스르기 힘든 분노처럼 구겨져 있다
그때는 수건 끝을 팽팽히 잡아당긴 후 갠다
수건의 등을 밀어 줬던 
야무진 햇살의 손자국들도 반듯하게 개어
선반에 차곡차곡 쌓아올린다
그제서야 경청하는 자세로 수건들이 
일제히 귀를 열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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