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 동행 * 포랜컬쳐 이 달의 詩 * 다시가 있다면 몇번이라도/안진경 시인
포랜컬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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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5 11:26
다시가 있다면 몇번이라도
안진경
흰 작약 속,
입을 닫은 꿀벌 한 마리
누구도 깨우지 않는 꽃의 정적
노란 접시꽃은 아직
피는 법을 망설인다
정원은 바람이 불어야 말문을 연다
넝쿨은 몇 번이고 고개를 끄덕이며
무엇이든 품는 쪽을 택한다
뿌리는 말없이 깊어진다
자기보다 작은 풀잎 하나에게
하루 햇살을 나눠주기 위해
우거지는 일, 정원의 배움은 바람을 타고 온다
녹슨 철사 꾸러미가
처마 말뚝에 매달려 물기를 쥐어짜고
나는
말이 되기 전의 통증처럼
손톱 밑 오래된 가시 하나를
천천히 빼어낸다
팔랑거리며 나비 한 마리,
논둑을 건너고
저편에서 개구리 울음은
잠시 세상을 키운다
말라붙은 도룡뇽의 형상,
보도블럭 위에 눌러쓴 '나중'이라는 단어
햇빛에 스며 휘발된 약속들
끈끈이대나물 위에 앉아
바람이 묵은 말을 털어놓고 간 자리를 듣는다
화기(火氣) 없이 저무는 저녁놀
저기, 저 콩벌레 혼자 길을 묻는다
그래,
다시가 있다면
나는 몇번이고
저 풍경을 눈에 담는
마음이 가난한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