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讀者조용현 시인의 단수필, 아름다운 시절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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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讀者조용현 시인의 단수필, 아름다운 시절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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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용현 시인


남녘 나의 고향에서는


             조용현


계절이 가을로 접어들면서 오늘은

까마득히 잊혀져가는

그 옛날의 고향 생각이 스멀스멀 떠오르고 있습니다.


우리 집 마당 감나무에 걸려있는 대봉감은

어린아이 혀끝을 널름거리게 하고,

초가집 지붕 위에 위태롭게 매달려 있는

큰 호박을 보면 밥을 안 먹어도 배가 불렀 지요.


알밤 주우러 가는 철없는 개구쟁이를

강아지도 뒤따라 나서고

어미 소 따라 나온 송아지는

포동포동 살찌는 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곡식들이 익어가는 들녘은 황금 물결이 넘실거리고,

참새를 쫓는 허수아비는

새벽부터 저녁까지

소맷자락 펄럭이며 중노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해거름 마중 나온 고추잠자리는

공중제비를 돌고 땅거미가 내려오면

석양은 어김없이 저물어가고 있었지요.


초가집 굴뚝에선 하얀 연기,

몽글몽글 피어오르고, 

뱃속에서 시냇물 소리가 들려 오면

가마솥에 밥 익어가는 냄새가  아이들을 집으로 불러들였습니다.

건넌방 아랫목에 자리 잡은,

막걸리 독에선 밤이 새도록 빗방울 소리가 들려오고,

누룩 향기가 집안 가득히 퍼저나오면

우리 아버지 흥얼거리는 콧노래는 낮은 울타리를 넘어갔지요.


그때 그 시절이 다시 온다면 소죽 끓이는 아궁이에 불을 지펴서

이글거리는 불덩이에 서대 몇 마리 구워, 대가리부터 꼬리까지 쭉 쭉 찢어서.

어릴 적 나의 까까머리 친구 불러 걸쭉한 막걸리 한 잔에 촉촉하게 목을 적시고 싶네요.

보름달이 뜨는 한가위가 며칠 앞으로 다가오면 이내 몸은,

고향으로 가고 싶어 들썩들썩 몸서리를 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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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용현 사진 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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